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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나뭇잎집 ㅣ 징검다리 3.4.5 8
소야 키요시 지음, 하야시 아키코 그림 / 한림출판사 / 1999년 10월
평점 :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81
풀빛을 먹고 꽃내음을 마시며
― 숲 속의 나뭇잎집
하야시 아키코 그림
소야 키요시 글
한림출판사 펴냄, 1999.10.25.
우리 집 큰아이가 길에서 벌한테 몇 방 쏘인 뒤부터 마당에서 놀 생각을 안 합니다. 벌한테 쏘이기 앞서까지는 아이 스스로 마당으로 내려가서 놀 뿐 아니라, 동생을 데리고 온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놀았습니다. 말없이 마을 빨래터까지 가서 옷을 옴팡 적시도록 물놀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벌은 꽃이 핀 데를 찾아다닙니다. 꽃이 핀 데가 있으면 벌은 웅웅거리면서 꿀을 찾거나 꽃가루를 모읍니다. 우리 집은 농약을 하나도 안 치고 풀을 함부로 뽑거나 베거나 죽이지 않습니다. 우리 집 마당에는 후박나무가 크게 자랍니다. 우리 집 옆밭에 갓꽃과 유채꽃이 그득하고, 사월에 후박꽃이랑 초피꽃이 환합니다. 벌이 모이기에 좋은 터전입니다. 후박꽃과 초피꽃과 갓꽃과 유채꽃뿐 아니라, 제비꽃이랑 민들레꽃도 많이 피고, 봄까지꽃은 아직 피며, 뒤꼍에는 살갈퀴꽃이 피어요. 곧 돌나물꽃이 필 테고, 갈퀴덩굴꽃도 핍니다. 동백꽃은 차츰 지지만 장미꽃이 피려 해요. 장미꽃이 환하게 빛나고 나면 붓꽃도 피겠지요.
우리 식구가 심은 꽃보다 흙밭에서 풀이 스스로 틔우는 꽃이 훨씬 많습니다. 아니, 우리 식구는 꽃을 따로 안 심는다고 할 만합니다. 풀밭을 이루면 풀이 스스로 꽃을 피웁니다. 사람이 심어서 키우는 꽃 못지않게, 어쩌면 사람이 심어서 키우는 꽃보다, 들꽃과 풀꽃과 나무꽃이 한결 싱그러우면서 짙은 내음을 퍼뜨린다고 할 만합니다.

.. 은아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볼에 빗방울이 똑 하고 떨어졌습니다. “아이, 차가워!” .. (2쪽)
우리 집은 언제나 꽃빛입니다. 꽃을 보려고 심은 꽃은 없어도, 봄부터 가을까지 꽃내음이 흐르고 풀내음이 짙습니다. 겨울을 앞둔 십일월 끝무렵까지 까마중꽃이 핍니다. 고들빼기꽃도 십일월까지 핍니다. 그러니, 아이가 벌을 무서워한다면 더는 놀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른봄부터 늦가을까지 온통 꽃내음이니 벌과 나비가 십일월까지 있어요. 벌과 나비하고 동무를 하지 않는다면 시골에서 놀지 못합니다. 벌과 나비를 살가이 사귀지 못하면 시골에서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시골에서 뱀을 무서워해도 지내지 못해요. 시골에서 벌레를 무서워해도 지내지 못합니다. 시골에서 밤을 무서워해도 지내지 못하지요.
가만히 보면, 시골에서는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도깨비를 무서워할 일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무서울 것이 없어요. 다만 한 가지는 무서워할 만해요. 무엇이냐 하면 농약입니다. 모든 목숨을 다 죽이는 농약 한 가지만큼은 무서워할 만합니다.

.. “비가 와도 괜찮아. 나에게는 비를 피할 수 있는 멋진 집이 있으니까.” .. (6쪽)
하야시 아키코 님 그림하고 소야 키요시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숲 속의 나뭇잎집》(한림출판사,1999)을 읽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집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아이가 혼자서 신나게 노는 ‘나뭇잎집’입니다. 다른 하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저를 아끼고 사랑하는 ‘보금자리’입니다.
아이는 마당에서도 놀고 나뭇잎집에서도 놀며 보금자리에서도 놉니다. 아이는 어디에서나 걱정하지 않고 놉니다. 아이는 어디에서나 푸른 숨결을 마시면서 놀아요. 풀빛을 먹고 꽃내음을 마십니다. 하늘빛을 먹고 흙빛을 마십니다.
.. “비가 그쳤어. 이제 엄마가 기다리는 집으로 모두 돌아가자.” .. (24쪽)
모든 아이들이 즐겁게 뛰놀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아이들이 입시지옥에 안 갇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흙을 만지고 풀을 뜯으며 꽃을 아끼면서 자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들어선 뒤에도 교과서와 문제집만 옆구리에 끼지 말고, 들꽃으로 목걸이를 하고 팔찌를 하며 놀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버들피리를 부르고 바람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바라요.
아이들한테 대학교는 대수롭지 않아요. 대학교에 가도 되고 안 가도 됩니다. 돈 잘 버는 일자리를 얻어도 되고, 돈 안 벌며 시골에서 흙을 만져도 돼요. 아이들이 저마다 스스로 삶을 가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살가이 어깨동무하는 마음씨를 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제 보금자리를 아끼고, 우리 마을을 아끼며, 이 지구별을 아끼는 따사로운 사랑을 가슴속에 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4.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