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연립주택
오영진 글.그림 / 창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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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35



함께 살아가는 나라

― 수상한 연립주택

 오영진 글·그림

 창비 펴냄, 2008.12.12.



  신문배달을 하며 살림을 꾸리던 지난날을 가만히 떠올립니다. 신문배달을 하면서 가장 짜증스러운 일은 신문도둑입니다. 신문사지국에 새벽에 몰래 기어들어서 신문을 훔치는 이웃이 있고, 신문배달을 할 적에 자전거를 세우고 아파트에서 돌리면 자전거 바구니에 있는 신문을 훔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 온갖 ‘놈’들이 신문을 훔칩니다. 무엇보다, 신문을 훔치는 이들은 돈이 있습니다. 돈이 있는 이들이 신문을 훔칩니다.


  가장 어이없는 신문도둑은 경찰입니다. 새벽에 동네를 지켜 주니 신문 한 부쯤 으레 가져가도 되겠거니 여깁니다. 아파트에서 새벽바람으로 운동을 하는 아저씨나 할배가 자전거 바구니 신문을 슬쩍하기 일쑤입니다. 어떤 아저씨는 여러 배달부 신문을 골고루 훔쳐서 웃옷 안쪽에 숨깁니다. 바구니에서 신문이 사라진 줄 깨닫고 부랴부랴 뒤를 좇으면 이녁 옷자락에서 여러 신문이 우수수 떨어져요. 어떤 이는 ‘나는 안 훔쳤다. 빈 자전거만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그냥 가져가서 배달부가 오기를 기다렸다’고 둘러댑니다. 그러면서 그 새벽에 만 원짜리를 내밀며 돈을 거슬러 달라 합니다. 만 원짜리 아닌 천 원짜리를 내밀어도 어느 배달부가 새벽에 잔돈을 챙겨서 신문을 돌릴까요.




- “어디 할 짓이 없어서 젊은 쉐끼가 남의 집 신문이나 훔쳐! 내놔!” “아무리 집주인이지만 거 말씀이 지나치시네. 훔치다니요! 아저씨 예의를 좀 갖추고 말씀하세요!” “야! 훔치지 않았으면 니가 지금 들고 있는 건 뭔데?” “한집에 같이 살면서 이 정도 정보공유도 못한단 말입니까?” (21쪽)

- “당신이 세입자들을 선동하고 다닌다면서?” “그래요, 훗.”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웬 개수작이야!” “절은 좋은데 굴러들어온 땡중이 문제죠!” (33쪽)



  신문배달부는 신문 한 부 도둑맞으면, 그 한 부 때문에 다시 지국까지 돌아가서 신문을 챙겨서 와야 합니다. 배달부 자전거나 오토바이 바구니에 담긴 신문은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됩니다. 돌리는 부수에 맞추어 챙겨서 나오니까요.


  신문이야 도둑맞은 뒤에 다시 갖다 주면 되지만, 우유는 참 큰일입니다. 돈이 없는 사람이 신문과 우유를 훔치지 않아요. 돈이 있는 사람이 우유와 신문을 슬쩍하기 일쑤입니다. 신문사에서는 지국에 조금 넉넉히 신문을 갖다 주기에 ‘도둑맞은 신문’을 아침에 다시 갖다 주지만, 우유회사에서는 배달부한테 맞돈으로 우유를 줍니다. 작은 우유팩 하나라도 도둑맞으면 배달부 주머니에서 물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전거도 아무렇지 않게 훔칩니다. 누군가 너무 바쁜 나머지 자전거에 자물쇠를 안 채우고 화장실에 들른다든지 가게에 들를 적에, 고 몇 분이나 몇 초 사이에 슬쩍하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자전거 동아리 사람들을 만나면 으레 ‘자전거 도둑맞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참말 누가 자전거를 훔칠까요? 훔친 자전거는 누가 탈까요? 자전거 한 대 훔쳐서 돈을 얼마나 벌까요? 자전거 한 대 훔치면 부자가 될까요?


  자물쇠를 채우지 않았더라도 훔쳐서는 안 될 일입니다. 내 자전거가 아니니까요. 책방에 가서 책을 훔쳐도 될까요? 책에 자물쇠를 안 채웠으니 슬쩍 가져가도 될까요?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말은 말이 될 수 없어요. 책도둑도 도둑일 뿐 아니라, 아주 못된 괘씸한 도둑입니다. 책이 무엇이겠어요. 마음을 살찌우고 생각을 북돋우는 이야기밭인데, 마음을 살찌우는 이야기를 훔쳐서 어떤 마음을 살찌우겠습니까. 인문책을 훔치든 사전을 훔치든, 책을 훔치는 이는 마음그릇이 아주 글러먹은 못된 ‘놈’일 뿐입니다.




- “행복이란 이런 거야. 여보, 당신은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이제부터 나만 믿고 따라오면 돼. 알아? 음, 좋아 좋아. 저 현수막(황금동 재개발 확정) 하나로 이 동네가 이처럼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는 게 정말 놀라워.” (100쪽)

- “뭘 좀 여쭤 볼게 있는데 이 집 앞에 있는 황금비둘기들이 다 뒈져버리면 누가 가장 좋아라 할까요? 아무래도 집주인이 제일 좋아하겠지요.” “이봐, 소설 함부로 쓰지 마! 나는 죽어가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야! 감히 내 앞에서 시답잖게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나불대지 말란 말야!” (161쪽)



  오영진 님 만화책 《수상한 연립주택》(창비,2008)을 읽습니다. 연립주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만화로 담습니다. 연립주택 집임자와 세입자 사이에 툭탁거리는 이야기를 만화로 옮깁니다.


  이 만화에 나오는 이야기는 참일까요 거짓일까요. 이 만화에 나오는 이야기는 이 나라에서 있을 법할까요 없을 법할까요.




- ‘한여름의 아이콘. 나무 그늘 아래 평상, 단돈 천원으로 두 세대 모두에게 만족을 제공한 쮸쮸바에게 별 세 개를 주고 싶다.’ (234쪽)



  함께 살아가는 나라입니다. 대통령 하나가 잘난 나라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사랑스럽게 살아갈 나라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마을입니다. 시장이나 군수나 국회의원이나 무슨무슨 머시기가 잘난 마을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서로 아끼고 돌볼 마을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집입니다. 사내는 하늘이고 가시내는 땅이 아닙니다. 집일은 가시내가 해야 하지 않고, 아이도 가시내가 돌봐야 하지 않습니다. 한집 사람은 서로를 어루만지고 보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는 아이 스스로 클 뿐 아니라, 어버이가 다 함께 따사롭게 보살필 노릇입니다.


  길에는 건널목이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길을 건너야 할 사람이 있으면 자동차가 스르르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아이와 할매가 느릿느릿 건너더라도 기쁘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자전거도 사람도 자동차도 함께 사이좋게 어울릴 만한 길이어야 길입니다. 자동차만 싱싱 내달리는 곳에는 사람내음과 살내음도 사랑내음도 없습니다.


  풀벌레가 노래하지 않으면 들도 숲도 아닙니다. 새가 찾아들지 않으면 밭도 나무도 아닙니다. 무지개가 드리우지 못하면 하늘이 아닙니다. 별빛이 초롱하지 않다면 밤이 아닙니다. 물고기와 가재와 다슬기가 어우러지지 않는다면 냇물이 아닙니다. 잠자리와 제비와 박쥐와 나비와 벌이 한데 얼크러져 춤추지 않는다면 ‘우리가 마실 바람’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일까요. 4347.4.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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