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코 2
쿄우 마치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34



즐겁구나, 내 하루

― 미카코 2

 쿄우 마치코 글·그림

 한나리 옮김

 미우 펴냄, 2011.3.30.



  아침에 똥을 누러 뒷간에 가서 앉는데, 엊그제 우리 집으로 돌아온 큰 제비 한 마리가 뒷간 바로 위에 드리운 전깃줄에 앉아서 한참 노래합니다. 열어 둔 뒷간 문으로 제비 꽁지를 올려다보면서 노래를 듣습니다. 제비는 찌찌찌찌 찌르르르찌르르째르르르째르르르 무척 빠른 가락으로 노래를 합니다. 노래를 할 적에 주둥이 아래쪽 턱이 떨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제비는 시골집 처마 밑에 둥지를 짓거나 고쳐서 살지만, 사람이 가까이 다가서면 휙 하고 날아가는데, 내가 뒷간에 있는 줄 모르고 요 위에 앉아서 노래합니다. 이리하여 제비가 노래하는 모습을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봅니다.


  뒷간이 바깥에 있는 시골집은 이래서 참 좋다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똥을 누면서 바람소리를 듣고 구름빛을 보며 새노래를 만납니다.



- “이치무라! 굉장한 거 보여줄게.” (10쪽)

- ‘15분 지각했더니 정문이 닫혀 있었다. 그대로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 건 내가 아니라 발 때문이었다.’ (13쪽)

- ‘어서 여기를 뜨지 않으면 발톱이 초록으로 물들 것 같다.’ (16쪽)





  올해에는 마을에 제비가 몇 마리 안 돌아왔습니다. 제비가 깃드는 집도 몇 안 되겠구나 싶습니다. 올해에 우리 마을에 돌아온 제비를 보면 덩치가 꽤 큰 아이가 하나이고, 작은 제비가 여럿입니다. 어제 자전거를 타고 마실을 하다가 우리 집 제비보다 덩치가 더 큰 제비를 한 마리 보았어요. 되게 큰 제비도 있구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했습니다. 워낙 큰 제비일까요, 여러 해 살아서 덩치가 커졌을까요.


  제비 깃털을 가만히 바라보면 새까만 빛이 반들반들 빛납니다. 짙은파랑과 짙은보라가 섞여 거의 새까맣다 싶은 빛깔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제비를 그림으로 그린다면 까망과 하양 두 가지 빛깔로 그리되 짙은파랑이나 짙은보라를 살짝 곁들이면 잘 어울리리라 느낍니다.


  제비가 우리 집에 돌아오면서, 겨우내 봄내 제비집에 조용히 깃들던 참새와 딱새는 처마 밑에서 떠납니다. 집임자가 돌아왔으니 떠나야겠지요. 그래도 참새와 딱새는 우리 집 처마 밑 둥지에서만 떠날 뿐, 우리 집 둘레에서 맴돕니다. 후박나무 가지에 앉고 초피나무 가지에 앉습니다. 전깃줄에 앉고, 가끔 빨래줄에 앉습니다. 이불을 말리려고 바깥에 내놓아 해바라기를 시키는데, 어제는 제비가 그만 이불에 똥을 한 차례 질렀습니다. 녀석아, 똥 눌 자리는 많은데 왜 이불에다가 똥을 지르니. 저기 갓꽃밭이나 유채꽃밭에다가 똥을 질러야지.



- “반년밖에 안 남았어. 최소한 이과냐 문과냐는 정해야지. 안 그러냐? 언제까지 이럴래? 그럼 곤란하다고.” ‘반년 뒤에도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31쪽)

- ‘부러웠던 건 아니다.’ (52쪽)

- ‘아무거나 상관없지만, 새로운 접시는 절대 안 깨지는 것으로 보내 주세요.’ (67∼68쪽)





  우리 집 옆밭에 갓꽃이 한창입니다. 일곱 살 큰아이보다 웃자란 갓꽃은 하늘하늘 춤을 춥니다. 갓꽃밭 옆에 서면 갓꽃내음이 확 끼칩니다. 갓꽃내음은 유채꽃내음과 거의 같습니다. 갓잎은 유채잎보다 쓴맛이 센데, 꽃내음은 둘이 거의 같아요. 꽃빛도 꽃잎도 둘은 거의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배추꽃도 유채꽃이나 갓꽃하고 많이 닮았어요. 세 가지 꽃은 빛깔이며 잎사귀며 냄새며 동무입니다. 한식구랄까요, 이웃이랄까요. 저마다 이름은 다르지만, 빛이며 무늬이며 모양은 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제비와 참새와 딱새는 저마다 다른 숨결입니다. 다 다른 가락으로 노래하고, 다 다른 먹이를 즐깁니다. 그렇지만 이 새들은 똑같은 사랑이요 숨결이며 목숨이에요.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가는 새입니다. 사람과 함께 지구별에서 노래하는 빛입니다.



- ‘이 통이 가득 찰 일은 없을 것 같다.’ “뭐? 그게 뭐야? 그럼 쓸쓸하잖아. 잠깐만 기다려.” (76∼77쪽)

- ‘빨간 페디큐어를 지우고, 난 아직 아이인 채로 있기로 했다.’ (112쪽)

- ‘늦가을에 내리는 비는 차가웠다.’ (120쪽)





  쿄우 마치코 님 만화책 《미카코》(미우,2011) 둘째 권을 읽습니다. 물빛이 흐르는 만화입니다. 물빛처럼 물내음이 나고 물노래가 흐르는 만화입니다. 냇물이랄까요, 도랑물이랄까요, 샘물이랄까요, 골짝물이랄까요. 조용하면서 차분하게 흐르는 물빛이 감도는 만화책을 읽는 동안 내 삶이 어떠한 빛인가 하고 스스로 되새깁니다. 내 삶은 어떤 빛으로 물들며 고운 냄새를 피우는가 하고 가만히 돌아봅니다. 내 삶은 어떤 빛이 꿈과 사랑으로 자라면서 이웃들한테 즐겁게 웃음꽃을 베풀 만한가 하나하나 곱씹습니다.


  노래하기에 삶입니다. 노래하기에 사랑입니다. 노래하기에 꿈입니다. 노래하지 않으면 삶이 아니요 사랑이 아니며 꿈이 아닙니다. 노래하는 하루일 때에 즐겁습니다. 노래하는 하루를 밝히면서 다 같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어요. 이야기는 꽃이 되고 잎이 되며 열매가 됩니다. 이야기는 한들한들 춤을 추면서 마음속으로 스며듭니다. 이야기는 어디에서나 고운 손길로 어루만지는 착한 꽃내음입니다. 4347.4.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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