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4.3.28.
: 앵두도 개나리도 활짝
- 어쩐지 나들이를 가고 싶은 날이다. 엊그제 면소재지 앵두나무집에서 앵두꽃망울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틀 지난 오늘쯤 활짝 벌어졌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집에는 아직 앵두나무가 없으니 아이들한테 앵두꽃을 보여주고 싶다.
- 서재도서관에 살짝 들른다. 소포로 부칠 책을 꾸린다. 이러는 사이 군내버스가 슥 지나간다. 작은아이가 코를 싸쥐며 “아이, 버스 냄새.” 한다. 버스가 지나갈 적에 배기가스 냄새하고 기름 타는 냄새가 나니까 이런다. 그런데 말이야, 도시에서는 어마어마한 자동차가 물결치면서 이런 냄새가 어디에나 그득하단다. 너희들은 도시에서 살자고 하면 어째 살겠니. 하루 내내 코를 싸쥐어도 냄새가 끊이지 않을 텐데.
- 소포를 부치고 돌아오는 길에 앵두꽃을 바라본다. 자전거를 세우고 바라본다. 앵두꽃을 본 뒤에는 면소재지 끝자락 개나리밭에 선다. 큰아이는 저 앞까지 혼자 걸어가서 개나리가 어디까지 피었는가 살핀다. 큰아이는 자전거 타기도 좋아하고 걷기도 좋아한다. 퍽 멀다 싶은 길을 걸어가면서 힘들다는 소리를 않는다. 샛자전거에 앉히고 다시 길을 나서려다가 개나리꽃에 손이 닿는지 뻗어 보라 말한다. 아직 팔이 짧구나. 더 자라면 자전거에 앉아서도 손이 닿을 테지.
- 발포 바닷가에 광주교육청에서 청소년수련관을 짓는다. 발포마을 사람들 뜻은 깡그리 짓밟으면서 짓는다. 잘 들여다보면 발포사람 뜻뿐 아니라 고흥사람 뜻에다가 숲넋까지 모두 짓밟는 꼴이다. 중장비와 큰 짐차가 끊이지 않고 좁은 길을 지나다닌다. 왜 이렇게 미친 짓을 하면서 시골 삶자락을 시골 군청 스스로 무너뜨리려 할까. 이렇게 해서 돈을 얼마나 벌 수 있을까. 이런 막개발 돈벌이를 일삼는 짓이 앞으로 이 땅 아이들한테 무슨 도움이 될까. 큰 짐차가 다 지나갈 때까지 한참 기다린다. 먼지바람과 시끄러운 소리가 가라앉고 나서 다시 자전거를 달린다.
- 호덕마을을 벗어날 무렵 길가에 핀 제비꽃을 본다. 어라, 이런 틈에 너희들이 돋아서 꽃까지 피웠네. 그냥 지나갈 수 없다. 자전거를 세운다. 작은아이는 벌써 잠들어 고개까지 꺾였다. 큰아이와 함께 길가 제비꽃을 들여다본다. 아주 조그마한 잎사귀를 내밀고 아주 자그마한 꽃송이를 내미는 제비꽃이다. 마을 어른들은 이 제비꽃조차 꽃으로 여기지 않고 뽑아낼는지 모른다. 뽑기 거석하다 싶으면 약을 쳐서 태워 죽이리라 느낀다. 제비꽃 씨앗이 논이나 밭에 퍼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리라.
- 제비꽃은 언제부터 ‘잡풀’이 되었을까. 시골 할매와 할배가 제비꽃을 곱게 바라보면서 쓰다듬을 날은 언제쯤일까. 가만히 보면, 참나리꽃이 피어도 마을 어른들은 성가시다가 꽃이 지기 무섭게 베어 없앤다. 참나리꽃 피는 자리에 해마다 두 차례 농약을 뿌린다. 그래도 참나리꽃은 해마다 용케 그 자리에서 씩씩하게 다시 줄기를 올리고 잎을 벌리며 꽃을 내놓는다. 지구별 숲과 들은 언제까지 어리석은 사람들 농약을 견디어 줄까. 지구별 사람들은 언제까지 농약에 찌든 곡식과 열매를 먹으며 살 생각일까.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