곯아떨어졌다가 일어난 아침
신안마실을 다녀왔다. 우리 ‘사진책도서관’과 ‘살림집’을 앞으로 어떻게 가꾸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는 마실길이었다. 지난 2011년에는 춘천시에서 우리더러 오라 했고, 올 2014년에는 신안군이 우리더러 오라고 이야기한다. 지난 2011년에는 춘천시로 갈 뻔하다가 우리 식구끼리 ‘도서관숲’과 ‘집숲’을 가꾸어 보자고 생각하며 고흥에 왔다. 고흥에서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네 해째 되는 올해에 곰곰이 돌아본다. 고흥에서 네 해만에 ‘숲을 말하는 책(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을 선보였다. 고흥군에서는 우리 도서관이나 살림집을 놓고 눈길조차 두지 않는다. 군청에서 눈길을 받으려고 이곳에 오지 않았으니 대수로울 일이 없는데, 다시금 다른 지자체에서 ‘숲으로 가꾸는 도서관과 집’에 눈길을 보내니 요즈음 이모저모 생각이 늘어난다.
아주 마땅한 노릇으로, 사람은 숲이 있어야 살고, 숲은 사람이 사랑으로 돌볼 적에 빛난다. 우리는 우리 땅이 아직 없어도, 집터와 도서관 둘레에서 숲과 나무와 풀을 사랑하는 길을 헤아리면서 지낸다. 고흥군 행정이 앞으로도 시멘트 막공사에만 눈길을 둔다 하더라도 이곳에서 씩씩하게 숲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으리라. 차마 볼 수 없는 나머지 훌훌 털고 새로운 터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느끼지 않는다. 더 낫거나 덜 나쁜 쪽은 없다. 어디에서든 숲을 가꾸면 우리 삶은 아름다우니까.
고흥군을 돌아보면,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 할 만큼 숲이 예쁘지만, 정작 고흥군수나 고흥군 공무원은 이를 눈꼽만큼도 못 깨닫고는 마구 파헤치기에 바쁘다. 신안군을 헤아리면, 하늘이 내린 메마른 터를 예쁘게 가꾸려는 손길이 눈부시지만, 나무와 풀과 숲을 마주하는 눈썰미는 아직 모자라다. 숲은 사람이 가꿀 수는 없다. 숲은 숲 스스로 가꾼다. 사람은 숲한테 사랑을 보낼 뿐이다. 아직 신안군에서는 이 대목까지 바라보지는 못하는데 앞으로 어찌 될는지 모를 노릇이다. 그러면 춘천시는? 춘천시는 이럭저럭 하늘선물을 잘 누리고, 사람이 할 몫도 어느 만큼 잘 건사한다고 본다. 그런데, 군부대와 골프장과 아파트가 지나치게 많다. 이들을 어찌해야 할까? 술에 찌들은 관광객이 너무 많은 모습은 어떻게 해야 할까? 신안군도 무척 아름다운 바다이지만, 이 아름다운 바다로 찾아오는 도시내기는 쓰레기를 어마어마하게 퍼붓는다. 신안 바다와 갯벌을 살피다가 관광객이 버린 쓰레기를 쳐다보며 가슴이 아프다. 신안 고기잡이 아재가 바다에 버린 소주병이 안쓰럽다.
신안마실을 빠듯하게 다녀오면서 잠을 한숨도 이루지 못한 탓에 고흥으로 돌아와서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쓰고 싶었으나 몸이 너무 무거워 눈만 뜨고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새벽 다섯 시에 겨우 일어났다. 새벽 다섯 시에 겨우 일어나서 맨 처음 쓴 글은 ‘신안에서 본 아픈 후박나무’ 이야기이다. 나는 도서관을 가꾸면서, 게다가 사진책도서관을 가꾸면서, 언제나 내 글을 ‘숲과 나무와 풀과 꽃과 흙과 바람과 햇볕과 냇물과 아이들’ 이야기로 채운다. 이러한 빛을 읽어야 삶을 말하면서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4347.4.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