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240) 한 1 : 한 스포츠 기자

 

나는 친러시아적 〈뉴스 클로니클〉 지에 근무하는 한 스포츠 담당 기자가 반러시아적 성향을 갖고 있는 아스날 팀이 영국을 대표하는 팀이 아니라고 주장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조지 오웰/박경서 옮김-코끼리를 쏘다》(실천문학사,2003) 224쪽

 

 한 스포츠 담당 기자
→ 스포츠 담당 기자
→ 스포츠 담당 기자 한 사람
→ 스포츠 담당 기자 하나
 …


   어느 날부터 번역책에서 아주 자주 보일 뿐 아니라 창작책에서까지 쉽게 만날 수 있는 말투 가운데 ‘한’이라는 얹음씨(관사)가 있습니다. 보기글에 나오는 ‘한’은 무엇을 받을까요? “한 스포츠”가 아니고 “한 담당”이 아닌 “한 기자”일 테지요.


  예부터 한국사람은 “여자가 있다”처럼 말했습니다. “한 여자가 있다”처럼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중노래에까지 “한 여자가 있어”나 “한 남자가 있어”처럼 이야기해요. 이런 대중노래는 어른과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파고듭니다. 열대여섯 살 푸름이도 이런 말투에 길들고, 예닐곱 살 어린이도 이런 말투에 젖어듭니다.


  옛날과 달리 오늘날에는 ‘한’을 붙일 때와 붙이지 않을 때에 뜻이나 느낌이 살몃살몃 다르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일부러 ‘한’을 붙여서 남다르다 싶은 뜻이나 느낌을 실으려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 뜻이 없이 붙이지는 않을 테니까요.


  서양말에서는 관사와 정관사가 따로 있기까지 합니다. 영어에서 ‘a’를 붙일 때와 ‘the’를 붙일 때에는 뜻이나 느낌이 다르다 할 만해요. 그러면 한국말에서는 어떻게 할까요?


  한국말에서는 “그 여자”나 “내 여자”나 “이런 여자”나 “좋은 여자”처럼 꾸미는 말을 붙입니다. “여기에 남자가 있어”나 “네 곁에 남자가 있어”나 “멋진 남자가 있어”처럼 말합니다.


  서양 말씨를 흉내내어 ‘한’을 붙이면 끝이 없습니다. 한국 말씨를 버리면 한국 말씨는 앞으로도 헝클어집니다. 잘 생각해 보셔요. 서양 말씨는 한국 말씨 때문에 뒤틀리거나 바뀌지 않습니다. 새로운 낱말을 다른 나라에서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말투나 말씨를 뒤틀거나 바꾸지 않아요.


  한국말에서는 얹음씨를 쓰지 않아도, ‘아무개 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쓰는 말투가 우리 말법이자 말투요 말삶입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옳게 바라보지 못하면 생각을 옳게 가다듬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생각을 옳게 가다듬지 못하면 넋이 흔들리고 얼이 흔들리며 삶까지 흔들립니다. 4337.6.13.해/4347.3.3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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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러시아 편을 드는 〈뉴스 클로니클〉 지에서 일하는 스포츠 담당 기자가 러시아를 안 좋아하는 아스날 구단이 영국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는 줄 알았다

 

‘친(親)러시아적(-的)’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러시아 편을 드는”이나 “러시아 쪽으로 기울어진”이나 “러시아를 좋게 보는”으로 다듬으면 될까요. ‘근무(勤務)하는’은 ‘일하는’으로 다듬고, “반(反)러시아적(-的) 성향(性向)을 갖고 있는”은 “러시아를 안 좋아하는”으로 다듬습니다. “아스날 팀(team)”은 그대로 쓸 수 있으나 “아스날 구단”으로 손볼 만하고, “주장(主張)했다는 사실(事實)을 알았다” 또한 그대로 둘 만하지만 “말한 줄 알았다”나 “얘기한 일을 알았다”로 손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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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253) 한 2 : 한편견

 

며칠 전 신문에서 본 《태백산맥》의 광고 덕에 나는 묵은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좀더 정확히 말해서 나는 리얼리즘에 대한 한 ‘편견’을 마련함으로써 내 속을 다스릴 수 있었다
《김규항-비급 좌파》(야간비행,2001) 21쪽

 

 한 편견을 마련함으로써
→ 편견을 마련하면서
→ 어떤 편견을 마련하면서
→ 한 가지 편견을 마련하면서
 …


  이 글월에서는 ‘한’을 넣을 까닭이 없습니다. “편견을 마련하면서”라 적으면 됩니다. 그렇지만 이 글월에는 ‘한’이 나타납니다. 글월을 곰곰이 살피면 여러모로 번역 말투가 나타납니다. 아무래도 번역 말투를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서 글을 쓰기에 “한 편견”처럼 글을 쓰는구나 싶습니다. ‘편견’이라는 낱말에 따옴표를 치는 만큼 무언가 힘을 주어 말하고 싶다면, ‘어떤’이나 ‘한 가지’를 앞에 넣을 수 있습니다. 4337.6.22.불/4347.3.3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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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앞서 신문에서 본 《태백산맥》 광고 때문에 나는 묵은 궁금함을 풀 수 있었다. 좀더 낱낱이 말해서 나는 리얼리즘과 얽혀 한 가지 ‘편견’을 마련하면서 내 속을 다스릴 수 있었다

 

“며칠 전(前)”은 “며칠 앞서”로 다듬고, “《태백산맥》의 광고 덕(德)에”는 “《태백산맥》 광고 때문에”로 다듬으며, ‘의문(疑問)’은 ‘궁금함’으로 다듬습니다. ‘정확(正確)히’는 ‘제대로’나 ‘바르게’나 ‘뚜렷이’나 ‘낱낱이’나 ‘꼼꼼히’로 손볼 낱말이고, “리얼리즘에 대(對)한”은 “리얼리즘과 얽힌”이나 “리얼리즘과 얽혀”나 “리얼리즘을 바라보는”이나 “리얼리즘을 다루는”으로 손봅니다. ‘마련함으로써’는 ‘마련하면서’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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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366) 한 3 : 한 외딴 목장

 

아칸소 분수령의 북쪽 기슭 높은 곳에 위치한 한 외딴 목장에서 태어났다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권영주 옮김-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씨앗을뿌리는사람,2004) 11쪽

 

 한 외딴 목장에서
→ 어느 외딴 목장에서
→ 외딴 목장에서
 …

 

  ‘한’을 “외딴 목장” 앞에 붙이고 싶다면, “북쪽 기슭” 앞에도 붙여서 “한 북쪽 기슭”이라고 적어야 올바를 테지요. 그렇지만, 한국말은 아무 데에도 ‘한’을 붙이지 않습니다. 외국말을 한국말로 옮기는 분들은 한국말을 슬기롭게 살펴서 알맞고 올바르게 다루시면 고맙겠습니다. 4337.10.27.물/4347.3.3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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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칸소 분수령 북쪽 기슭 높은 곳에 있는 외딴 목장에서 태어났다

“아칸소 분수령의 북쪽 기슭”은 “아칸소 분수령 북쪽 기슭”으로 다듬습니다. 굳이 ‘-의’를 안 넣어도 됩니다. ‘위치(位置)한’은 ‘있는’으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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