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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 추억
백승종 / 효형출판 / 2000년 6월
평점 :
품절
찾아 읽는 사진책 163
사진은 ‘분단’도 ‘통일’도 안 바란다
― 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 추억
에리히 레셀 사진
백승종 글
효형출판 펴냄, 2000.6.5.
《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 추억》(효형출판,2000)이라는 사진책이 있습니다. 책이름 그대로 ‘동독 도편수’인 ‘에리히 레셀’ 님이 1950년대에 북녘으로 가서 건물을 새로 짓는 일을 거들면서 찍은 북녘 모습을 담은 책입니다. 에리히 레셀 님은 북녘을 ‘추억’하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에리히 레셀 님 둘째 아들은, 이 책을 한국말로 옮긴 백승종 교수와 만난 자리에서 “집에 손님이 오면 북한에서 손수 찍어 온 필름을 환등기로 함께 보았어요. 필름 한 장 한 장을 기계에 일일이 넣었다 뺐다 하는 게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을 텐데, 아버지는 그걸 너무나도 즐기셨어요 …… 가난하고 온통 전쟁의 상처투성이였던 나라, 어디를 가나 도로가 제대로 닦이지 않은 그런 곳. 하지만 산천이 빼어나게 아름답고, 사람들이 몹시 점잖고 친절한 나라. 신기하고 아름다운 문화가 보존되어 있는 나라, 북한(23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숲과 사람이 아름답던 ‘한겨레’를 떠올리면서 이녁이 찍은 사진을 모두 한국(남녘)에 기증했다고 해요.
1950년대에 북녘에서 제 나라 모습을 꾸밈없이 바라보면서 사진으로 담은 사람이 몇이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북녘땅 곳곳을 홀가분하게 누비면서 북녘사람 여느 삶을 수수하게 사진으로 담는 일을 누군가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거꾸로 보면, 1950년대 남녘에서 이 나라 모습을 꾸밈없이 바라보면서 사진으로 담은 사람은 몇이나 있었을까요. 예술사진이나 보도사진이 아니라, 이 나라 사람들 여느 삶을 수수하게 바라보고 이웃으로 어깨동무하면서 찍은 사진은 얼마나 있었는가요. 남녘에서도 남녘땅 곳곳을 홀가분하게 누비면서 남녘사람 여느 삶을 넓고 깊이 사진으로 담는 일은 아무도 못하지 않았나 싶어요. 북녘에서는 북녘대로 사상과 자유와 정치를 억눌렀고, 남녘에서는 남녘대로 사상과 자유와 정치를 억눌렀거든요.
북녘에서나 남녘에서나 ‘자유롭게 살아가려는 사람’은 모두 ‘간첩’이라는 딱지를 받습니다. 남북녘 모두 자유롭고 평화로운 사람을 꽁꽁 옥죄거나 주리를 틀거나 목숨까지 앗았습니다. 남녘이 북녘을 나무랄 수 없고, 북녘이 남녘을 꾸짖을 수 없습니다. 서로 총부리를 겨눈 곳에서는 자유도 평화도 없습니다.
- 이렇게 깊숙하고 험한 산속까지도 길을 뚫어 철길을 깔았으니, 그 힘의 반의 반만으로도 그까짓 철조망으로 두 동강 난 국토는 쉽게 이을 수 있을 텐데. (39쪽)
- 전쟁, 그 단어만 지울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인가. (41쪽)
- 장난기 가득한 몇몇 아이들도 귀엽지만, 그저 선량하다고 할밖에 달리 뭐라 이를 수 없는 우리네 아이들이다. 그냥 이렇게 타고난 모습 그대로 살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될 일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126쪽)
- 나무꾼이나 소달구지는 모두 변두리 마을에서 도시로 들어가고 있다. 하나는 누군가의 아궁이를 지피려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의 마음을 울려 주려고. 이렇듯 도시는 시골을 먹고 산다. 여기서나 거기서나. (182쪽)
- 군인은 무장을 풀었을 때가 보기에 좋다. 도무지 누구를 향해 총질을 하겠다고 무장을 갖추는가. 어딘가 총칼을 내려놓고 웃는 군인은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240쪽)
사진책 《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 추억》을 읽습니다. 사진마다 애틋한 이야기가 묻어납니다. 한국땅 모습이요 한국사람 모습이지만, 정작 한국사람은 스스로 사진으로 찍을 수 없는 모습입니다. 이런 자리에 동독사람이 북녘에서 사진을 찍었으니 몹시 고맙습니다. 동독사람 아닌 북녘사람이 찍은 사진이라면 남아날 수 있었을까요. 남녘에서도 웬만한 신문사 기자가 아니라면 남녘땅 곳곳을 찍은 사진이 남아나기 어려웠습니다. 남녘을 찾아온 일본 사진작가나 서양 사진작가가 남긴 사진이 곧잘 책으로 묶이기에, 이런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네 예전 삶자락을 가만히 돌아보곤 합니다.
그런데, 사진책 《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 추억》에 글을 붙인 백승종 교수는 어딘가 살짝 어긋났지 싶습니다. 전쟁을 멀리하고 평화를 바라는 길을 얼마나 슬기롭게 바라보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전쟁, 그 단어만 지울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인가(41쪽).” 하고 외치는 말은 맞습니다. 그러면, 전쟁이라는 낱말을 어떻게 지울 수 있을까요? 북녘 사회를 그저 깎아내리기만 해서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까요?
- 인적이 끊어진 곳에 시멘트 다리라니, 생뚱하지 않나. (43쪽)
- 북한 당국은 그들의 취향에 맞는 휴양시설을 풍광이 수려한 동해안 바닷가에 지어 놓았다. (70쪽)
- 사려는 사람도 팔려는 사람도 다 힘없고 굶주리기는 매일반. 힘없이 땅바닥에 주저앉았든지, 빈들에 수숫대마냥 서 있든지 얼굴에는 그저 수심만 가득하다. (112쪽)
- 북쪽에서는 이른바 출산장려금까지 지급하면서 애낳기를 적극 권장했다. 인구증가는 장차 노동력의 증대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119쪽)
- 이들 새 건물이 완성되면 누가 여기서 살게 될까. 사진에 보이는 평범한 노동자 농민들의 차지는 아닐 듯하다. (175쪽)
- 지나가는 차라곤 하나도 없이 휑한 큰길을 건너고 있는 젊은 남자와 여자도 따지고 보면 무슨 귀족이나 별로 다를 게 없는 높은 동무가 아닐까. (181쪽)
- 이게 학예회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분에 넘치게도 아이들은 지금 정치적 연극의 한 대목을 맡고 있다. (251쪽)
남녘에서도 ‘출산장려금’을 줍니다. 남녘에서 하는 ‘애낳기 정책’은 무엇이라 말하면 좋을까 아리송합니다. 남녘에서도 아이들은 “정치적 연극의 한 대목(251쪽)”을 아직도 맡습니다. 아직도 남녘 어른들은 아이들을 끌어들어 마스게임을 합니다. 남이나 북이나 서로 똑같습니다. 나도 19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엄청난 행사에 엄청나게 끌려다니면서 ‘정치 연극 꼬맹이’ 노릇을 해야 했고 ‘반공 웅변’으로 목에서 피가 나와야 했습니다.
애써 북녘 사회를 깎아내린대서 남녘 사회가 올라가지 않습니다. 굳이 북녘 사회를 비아냥거리는 말을 한대서 남녘 사회가 더 훌륭해 보이지 않습니다.
꾸밈없이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를 바랍니다. 비판받을 대목은 남이나 북이나 서로 똑같습니다. 북녘에서 금강산 언저리에 ‘시멘트 다리’를 놓은 모습이 거북한가요? 남녘은 그렇게 안 하나요? 남녘은 설악산 국립공원에 하늘차(케이블카)를 함부로 놓습니다. 남녘도 국립공원 곳곳에 시멘트 다리뿐 아니라 아스팔트 찻길을 엄청나게 냈어요. 남녘은 국립공원 멧자락에 구멍 뻥뻥 뚫고 고속도로를 놓았습니다. 요즈음은 국립공원 구역을 몰래 해제하면서 온갖 공사를 벌이는데, 4대강사업처럼 무시무시한 시멘트공사를 엄청나게 저질러요. 밀양에 송전탑 박겠다고 하는 짓을 생각해 봐요(밀양은 이 책이 나오고 나서 한참 뒤인 요즈음 일이지만, 2000년 언저리에도 이런 비슷한 일은 숱하게 많았습니다).
북녘에 자유와 민주가 없다고 말하지만, 남녘에는 얼마나 자유와 민주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북녘에 자유와 민주가 없어 북녘사람 수수한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기 어려웠다지만, 남녘에는 얼마나 자유와 민주가 있어 남녘사람 수수한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을 만한지 잘 모르겠어요.
- 그런 어설픈 집들이 이렇게 줄지어 늘어선 것이다. ‘위대한 당과 수령동무’의 도움 없이도 부시시 기지개 켜며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 이게 풀뿌리 백성의 강인한 힘, 그 생명력이다. (88쪽)
- 인민의 당이라는 조선노동당이 눈처럼 허연 기름진 쌀을 나누어 줄 리 없으니, 산동네 사람들은 애써 가꾼 옥수수를 갈무리하여 겨울을 무사히 넘기고자 한다. 그게 그네들이 이삼백 년 전부터 살아온 방법이다. (108쪽)
- 이제는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 된다고 하는 사회주의 세상이 되어 버렸다. 세상에서 잘 대접받기 위해서는 양반 조상을 무조건 부정해야 할, 그런 때가 온 것이다. (145쪽)
- 오토바이의 속도계는 시속 160킬로미터를 넘어서는, 아예 날아가는 현대판 페가수스를 꿈꾸는 중인 게다. 허망한 그 꿈을 비웃기라도 하듯 볼품없는 인민군 막사의 현관이 아가리를 떡 벌리고 서 있다. (154쪽)
- 기골이 장대한 노인. 호랑이를 두들겨 잡던 북도인의 강인함이 느껴지는데, 노인의 표정에는 어딘가 처량한 구석이, 한 가닥 불안한 마음이 깃들어 있다. (221쪽)
사진을 사진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진책 《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 추억》은 책이름처럼 ‘추억’입니다. ‘비방’이나 ‘비판’을 할 책이 아니라, 남북녘이 서로 아름답게 살아갈 이야기를 찾자는 ‘추억’입니다.
백승종 교수는 책 끝머리에 “동서 양 진영에서 세차게 불고 있던 냉전 바람은 레셀을 가만두지 않고 괴롭혔다. 서독으로 탈출하자마자 그는 북한 친구들과 연락이 완전히 두절되고 말았는데, 어느 날 미국의 유력한 정보기관이 그를 불렀다. 미국인 기관원은 레셀을 집중적으로 심문했다(270쪽).” 하고 덧붙입니다. 에리히 레셀 님은 동독을 떠나 서독으로 갔다지만, 서독에 가서는 미국 정보요원이 들볶았다고 해요.
자유란 무엇일까요. 민주란 무엇일까요. 평화란 무엇인가요. 통일이란 무엇인가요.
사진은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사진에 붙이는 글은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나요. 사진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사진에 붙이는 글로 어떤 이야기를 길어올리면 될까요.
북녘 저잣거리에서 사람들이 북적거리면서 물건을 사고파는 모습이 사진으로 있는데, 백승종 교수는 이런 사진조차 ‘사람이 없어 썰렁하다’는 투로 글을 붙입니다. 사진과 글이 어긋납니다. 활짝 웃는 개구진 북녘 아이들 사진에 대고 ‘근심과 걱정과 아픔이 가득하다’는 투로 글을 붙입니다. 사진과 글이 동떨어집니다.
아무리 보아도 이건 아닙니다. 사진에 붙인 글을 모두 털어 주셔요. 사진책 앞뒤로 붙인 긴 글을 모두 물려 주셔요. 에리히 레셀 님 이야기를 실어 주고, 에리히 레셀 님 아들이 남긴 이야기를 담아 주셔요. 1950년대 북녘이 어떤 삶이었는지, 꾸밈없이 만날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아 주셔요. 1950년대를 지나 2000년대로 나아가는 북녘에서 그곳 여느 사람들이 어떤 웃음과 눈물과 이야기로 하루하루 삶을 지었는지 알 수 있도록 징검돌이 되어 주셔요. 백승종 교수가 소설을 쓰고 싶다면, 따로 소설책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애틋한 사진에 대고 소설을 쓰는 일은 삼가기를 바랍니다. 4347.3.3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