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것은 보석이 된다 - 김수남의 아시아 문화 탐험, 개정판
김수남 지음 / 석필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77

 


사진을 찍는 목소리
― 변하지 않는 것은 보석이 된다
 김수남 글·사진
 석필 펴냄, 1997.11.1.

 


  사진을 찍는 목소리를 듣습니다. 사진 한 장을 읽으면서 사진길 걷는 사진벗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습니다. 사진마다 사진벗이 노래하는 삶이 깃듭니다. 사진벗이 노래하는 삶이란 사진삶이고, 사진삶이란 사진노래이며, 사진노래란 사진빛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글 한 줄에 노래를 담습니다. 글 한 줄에 담는 노래란 글삶이고 글노래이며 글빛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그림 하나에 노래를 담아요. 그림 하나에 담는 노래란 그림삶이고 그림노래이며 그림빛입니다.


  우리 삶은 어디에서나 늘 노래이고 빛입니다. 집에서 살림을 가꾸는 사람은 살림노래와 살림빛입니다. 저잣거리에서 장사하는 할매는 저잣노래와 저잣빛입니다. 바다에서 고기를 낚는 사람은 바다노래와 바다빛입니다. 하늘을 꿈꾸는 아이들은 하늘노래와 하늘빛입니다.


.. 때로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그 오지의 정보를 갖게 되었느냐고 말이다. 방법을 알려준다 한들 그들이 나처럼 미련한 길을 택할지는 미지수이지만, 한 지역의 문화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좀더 고지식해질 필요가 있다 … 그곳에 들어가 석 달이 되든 넉 달이 되든 시간을 갖고 어린 시절 보물찾기 하는 심정으로 그 지역의 삶의 순수한 풍경을 찾아낸다 … 수천 수만 년을 전해 내려온 정신 문화를 직접 접하는 즐거움을 어떻게 과학 문명이 주는 즐거움에 비할 수 있을까? 이미 선배들이 다 작업을 끝내 영역이 너무나 비좁다고 한탄하는 후배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적어도 문화의 영역이란 그리 단순하거나, 얕은 우물 같은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  (17∼18쪽)

 

 


  김수남 님은 《변하지 않는 것은 보석이 된다》(석필 펴냄)라는 책을 써낸 적이 있습니다. 1997년입니다. 아시아 여러 나라를 돌면서 소수부족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가 책 한 권으로 태어났습니다. 293쪽에 이르는 책이고 글씨가 깨알같습니다. 큼지막하게 들어간 사진이 있으나, 이 책에 넣은 사진은 거의 다 조그맣습니다.


  그동안 김수남 님은 이녁 사진으로만 책을 선보였습니다. 《한국의 굿》(열화당) 스무 권과 《호미씻이》(평민사)라든지 《제주바다 潛嫂의 四界》(한길사)를 선보였습니다. ‘빛깔있는 책들’에 굿 사진과 전통문화 사진을 선보였고, 1995년에 《아시아의 하늘과 땅》(타임스페이스)을 내놓았습니다. 이 여러 책들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은 보석이 된다》는 사뭇 다른 빛을 보여줍니다. 사진 못지않게 글을 많이 실었고, 사진으로 들려주는 이야기 못지않게 글로 밝히는 눈빛이 곱습니다.


  사진을 바라보고 글을 읽으면서 생각에 젖습니다. 김수남 님이 두 다리로 천천히 거닐며 바라본 하늘과 땅을 마음속으로 그려 봅니다. 김수남 님이 사진기로 담은 빛과 사진기에 굳이 안 담은 빛을 가슴속으로 담아 봅니다.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를 바라보다가 아이들과 함께 소나기를 맞으면서 놀던 이야기를 읽고 사진을 보면서, ‘내 나라 문화’를 사진과 글로 담는 일이랑 ‘이웃 여러 나라 문화’를 사진과 글로 담는 일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주기에 문화가 될까요? 글로 적어서 책이나 논문으로 선보이면 역사가 될까요? 사진으로 찍지 않고 마음속에 담는 문화는 무엇일까요? 글로 쓰지 않고 책으로 엮지 않는 역사는 무엇일까요?


.. 사진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얼마나 많은 사진가들이 이런 기다림의 순간 속에서 자신을 소진하며 자신의 사진을 일구어 왔는가 … 사진은 사실의 재현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아니 당연히 찍는 사람의 사상과 생각이 들어간다. 나는 왜 사진을 찍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을 때가 있다. 가장 단순하게 말하자면, 나의 의사를 언어나 문자가 아닌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기 때문이다 …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을 받아들이고 천천히 사유하면서 느린 박자로 움직일 수 있는 상황 … 먀오족의 딸들은 다섯 살만 되면 바늘을 들고 자수를 배우기 시작하고, 열 살이 넘으면 숙련된 솜씨로 다양한 도안의 수를 놓을 수 있다고 한다 ..  (25, 43, 131쪽)

 

 


  김수남 님은 아시아 여러 겨레를 만나면서 ‘노래’를 늘 듣습니다. 아시아 여러 겨레는 저마다 ‘말’을 합니다. 겨레마다 말이 다릅니다. 겨레마다 ‘나라’가 있지만, ‘공식 국가 언어’보다는 ‘겨레말’을 씁니다. 우리로 치자면, 제주말이나 울릉말이라 할 만합니다. 전라말과 경상말과 함경말이라 할 만합니다. 전라말에서도 곡성말과 고흥말이라 할 만하고, 작은 시골 고흥에서도 읍내나 면소재지에서 쓰는 말이라 할 만하고, 면소재지에서도 더 들어간 두멧시골 조그마한 마을에서 쓰는 말이라 할 만합니다.


  김수남 님이 만난 아시아 여러 겨레는 텔레비전이 없습니다. 신문도 없고 책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오랜 나날 차근차근 삶을 잇습니다. 학교나 교사나 시험이나 문명은 없지만 밥짓기와 옷짓기와 집짓기를 입에서 입으로 물려주고 몸에서 몸으로 물려받습니다.


  책으로 밥짓기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론이나 학문으로 옷짓기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사회학자나 문화학자나 건축학자가 집짓기를 연구하거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느 겨레이든 모든 사람이 스스로 밥짓기와 옷짓기와 집짓기를 합니다. 겨레마다 서로 다른 빛과 숨결을 담아서 다 다른 옷을 지어서 입고, 다 다른 밥을 지어서 먹으며, 다 다른 집을 지어서 살아갑니다.


  오키나와에서 너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시를 읊은 김수남 님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겠지요. 제주에서 나고 자란 김수남 님 어린 나날을 떠올렸겠지요. 김수남 님을 낳은 어머니가 집살림을 가꾸면서 하던 밥짓기와 옷짓기와 집짓기를 그렸겠지요. 먼먼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보는 문화요 삶인 한편, 바로 김수남 님이 태어나고 자란 땅에서 먼먼 옛날부터 두고두고 누리거나 즐기거나 가꾸던 문화이면서 삶을 느꼈겠지요.


.. 발리의 여자들은 자신들이 항상 신을 생각하고 신을 모시고 살아가기 때문에 나쁜 일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 혼자 여행을 다닐 때는 정신과 육체 간에 대화를 해야만 한다. 너무 바빠서 당장 쉴 수가 없다면 몸을 달래야 한다 … 나를 가장 불안하게 한 것은 지금 내가 찍고 있는 사진이 우리 나라에서 받아들여질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었다. 앞으로 십 년 정도 지나면 사회가 많이 달라져 외국의 전통문화에도 관심을 기울일 것 같은데, 이삼 년 안에 내 사진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을 늘 달고 다녔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 작업을 정부나 공공기관, 문화단체에서 후원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52, 64, 73쪽)

 


  모든 겨레는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 겨레도 노래를 불렀습니다. 일하면서 일노래를 불렀습니다. 모내기를 하든 가을걷이를 하든 풀베기를 하든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른과 아이 모두 나물을 캐거나 뜯거나 꺾으면서 나물노래를 불렀습니다. 절구질을 하면서 절구노래를 불렀고, 방아를 찧으면서 방아노래를 불렀습니다. 베틀을 밟으면서 베틀노래를 불렀고, 다듬잇돌을 통통통 두들기면서 노래를 불렀어요.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노래입니다. 밥상에 수저를 얹으면서 노래입니다.


  아이들은 흙바닥에 돌멩이로 그림을 그리면서 노래입니다. 냇물에서 헤엄치면서 노래입니다. 도랑에서 가재를 잡고 다슬기를 주우면서 노래입니다. 나비를 잡고 잠자리를 좇으면서 노래입니다. 어깨동무 노래를 부르고 씨동무 노래를 부릅니다. 미나리밭에 앉는 노래를 부르며 해야 해야 잠꾸러기 해야 하고 노래를 부릅니다.


  그렇지만, 이제 이 나라에는 노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제 보금자리에서 부르던 노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서로서로 제 마을에서 오순도순 부르던 노래가 없습니다. 이제 이 나라에서는 텔레비전을 켜고 ‘가수’라는 사람이 ‘작곡가’가 지어 준 ‘대중노래’만 듣습니다. 제 삶에서 제 노래를 길어올리지 않고, 남들이 만든 문명에 따라 ‘문화를 소비하는 노래’만 듣고 외웁니다.


  대중노래가 나쁘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텔레비전이 나쁘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이제 이 나라에는 스스로 노래를 짓고 부르며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삶이 없다는 소리입니다. 이제 이 나라에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만 있을 뿐, 아이를 보살피면서 밥과 옷과 집을 손수 지어서 삶을 가꾸는 빛을 물려주는 어버이는 없다는 소리입니다.


.. 사진기를 들고 굿판을 헤매다 보면 불과 몇 년 전에 사진으로 담아냈던 것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일산 신도시가 그렇다. 일산의 정발산 정상에서 한 해 걸러 말머리굿이 벌어졌었다. 정발산에서 내려다보던 일산은 드넓은 논밭과 드문드문 들어선 가옥의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 제주도가 관광지로 개발되고 육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도둑 없는 순박한 고장이라는 말이 무색해져 버렸다 … 섬들 사이로 거대한 태양이 바다로 내려앉아 점점 그 모습을 지우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시인이 아니라도 한 줄 시를 쓰고 싶은, 아니면 남의 시라도 한 수 읊고픈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  (63, 70, 103쪽)

 


  김수남 님은 여행을 떠납니다. 김수남 님은 여러 나라 여러 겨레를 만나면서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찍으며 글을 씁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여행을 다니지 못합니다. 한국에서는 어느덧 문화도 삶도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도시문명만 넘치지, 시골문화와 시골삶이 없어요. 시골에서도 모두들 텔레비전을 켜서 연속극을 바라봅니다. 시골 할매와 할배 스스로 놀이문화나 노래문화를 누리지 않아요. 시골 할매와 할배 모두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노래만 따라 부르지, 이녁이 흙을 만지고 풀을 먹으면서 즐기는 노래는 깡그리 잊을 뿐 아니라, 새로 노래를 짓지 못해요.


  더군다나, 시골을 떠나도록 부추깁니다. 시골에 남은 할매와 할배는 이녁 아이들을 모조리 도시로 보냈습니다. 학교로 보낸다든지 ‘힘든 시골일’을 안 시키겠다는 뜻으로, 한국 어린이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 도시내기로 살고 시골에서 나고 자랐어도 도시내기가 됩니다. 시골내기는 사라지는 한국입니다. 시골내기가 사라지는 한국에서는 ‘고유한 한겨레 문화’가 사라집니다. 고유한 한겨레 문화가 사라지는 한국이니까, 한국에서는 이제 더 ‘한겨레 빛과 숨결’을 느끼도록 할 만한 사진을 찍기 어렵고 글을 쓰기 힘듭니다. 도시에서 넘치는 온갖 도시문명과 현대문명을 빗대거나 꼬집거나 뒤트는 행위예술은 있어요, 문화와 삶은 자취를 감춥니다.


  다시금 말하지만, 행위예술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행위예술은 있되 문화와 삶은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문명을 누리기만 할 뿐, 삶을 짓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삶을 짓지 못하니 노래가 없습니다. 삶을 짓지 못해 노래가 없으니 싱그러운 꿈과 사랑을 짓지 못합니다. 싱그러운 꿈과 사랑을 짓지 못하니, 이 나라에서 수수한 시골살이를 노래하는 사진을 찍는 이들도 나타날 수 없어요.


  외국으로는 나가지요. 한국에 없는, 아니 한국에서 사라진, 아니 한국에서 우리 스스로 없앤 삶을 외국에서 찾으려고, ‘지구별 오지(두멧시골)’를 찾아나섭니다. 티벳을 가고 몽골을 가요. 네팔을 가고 부탄을 가요.


  거듭 말하는데, 지구별 두멧시골을 찾아나서는 일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더 두멧시골을 찾을 수 없기에 외국으로 나가야 사진을 찍을 만하다고 느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외국에서도 한국으로 ‘사진을 찍으러 찾아올’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지난날 개화기라든지 일제강점기 무렵에는 외국 여러 나라에서 ‘고요한 아침 나라 조선’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글로 남기고 싶어 찾아왔어요. 그렇지만, 이제 이렇게 한국을 찾아오는 발걸음이 없어요. 한국다운 한국살이를 찾아보거나 느낄 수 없으니, ‘인기 연속극 무대’를 찾으려고 한국으로 오는 ‘한류 바람 관광객’은 있어도, ‘한국살이를 곱게 느끼며 새로운 사진과 글로 엮으려는 사람’은 나타날 수 없어요.


.. 오키나와는 대부분 산호초 섬들이므로 해안가는 산호초로 이루어져 있고, 산호초가 끝나는 지점부터는 검은색을 띤다 … 오키나와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화 중 많은 부분을 조선에서 받아들였다고 생각을 하는 반면, 일본은 자신들을 침략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 이곳 사람들에게 아리랑은 낯선 노래가 아니었다 … 마을에 들어서면서 당황스러움을 느낀다. 우리 나라의 새마을운동 같은 마을 근대화 운동을 벌여 전통적인 마을 모습을 많이 잃었기 때문이다 … 파도가 없는 뱃길은 너무도 평화롭다. 세상에 걱정이라고는 없다는 듯 태양이 빛나고,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 뒤편으로 멀리 야에야마 제도의 섬들이 흩어져 있다 ..  (79, 85∼86, 91쪽)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어떤 사진을 찍는지 생각할 일입니다. 우리 스스로 찍는 사진에 우리 스스로 어떤 목소리를 담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우리가 찍는 사진은 어떤 이야기인지 헤아릴 일입니다.


  사진은 무엇일까요. 사진은 왜 찍을까요. 사진을 찍는 즐거움은 무엇일까요. 사진을 나누는 사랑은 무엇일까요. 왜 사진으로 이야기를 빚고, 왜 사진으로 책을 엮으며, 왜 사진으로 목소리를 낼까요.


.. 외국어를 잘하는 젊은 친구들은 전통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기 때문에 통역에 오류가 생기기 쉽고, 문화를 잘 아는 지식인은 언어가 시원치 않아 답답할 때가 많다 … 설사 그 취재여행 자체가 수포로 돌아간다 해도 돈을 주고 그 상황을 재현시킨 사진은 찍지 않는다는 것이 포기할 수 없는 나의 자존심이다 … 동족은 자신들의 문자가 없는 까닭으로 자신들의 역사를 노래에 담아 구전해 왔다. 그들의 조상이 어디에서 기원해 어디를 거쳐 이곳으로 왔는지, 방대한 서사시를 노래로 면면히 이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세월이 달라졌나 보다. 청년들은 그들의 노래를 외우지 못하고 있었다 ..  (110, 115, 124쪽)


  김수남 님은 이녁 사진책에서 조곤조곤 속삭입니다. 혼자 다니는 사진여행에서 스스로 묻고 스스로 말하면서 하루하루 누립니다. 사진을 왜 찍는지 스스로 묻습니다. 이웃나라 문화를 찾아나서는 까닭을 스스로 묻습니다. 한국에서 겪은 새마을운동이 외국에서도 똑같이 일어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근대문명과 문화사업이란 무엇인가 하고 스스로 묻습니다.


  새삼스럽지만, 근대문명은 폭력입니다. 문화사업이란 독재입니다. 근대문명은 다 다른 겨레(소수부족) 삶을 짓밟습니다. 다 다른 겨레가 다 다른 고장에서 다 다른 삶을 일구면서 누리는 이야기를 짓밟는 근대문명이에요. 다 다른 겨레한테는 학교가 없지만, 아무도 걱정하거나 어렵지 않아요. 다 다른 겨레는 저마다 다 다른 노래를 부르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사랑하거든요. 그런데, 근대문명은 다 다른 겨레한테 자꾸 학교를 세워서 무언가 가르치려 들고, 자꾸 예배당을 세워서 무언가 믿으라고 윽박질러요. 다 다른 겨레 보금자리에 자꾸 병원을 짓고 자꾸 뭔가를 세우려 합니다. 다 다른 겨레는 스스로 삶을 짓고 이제껏 아름답게 사랑했는데, 다 다른 겨레를 찾아오는 근대문명은 다 다른 겨레가 어떤 꿈과 사랑인가를 읽지 않고 교육을 시키려 하고 문화사업을 들이댑니다.


  짚신 신던 한겨레가 고무신을 신어서 문명이 되었을까요? 고무신을 신던 한겨레가 플라스틱 인조화학소재로 된 운동화와 구두를 신어서 문명이 되었을까요? 모시와 삼베로 옷을 스스로 지어 입던 한겨레가 인조화학소재로 된 옷을 비싼값 치르고 사다 입어서 문명이 되었을까요? 두 다리로 걸어다니던 한겨레가 자가용을 싱싱 몰며 고속도로를 달리니 문명이 되엇을까요?


  조그맣고 가난한 골목동네를 찾아서 벽화사업이라든지 도보여행이라든지 문화탐방이라든지 하는 문화사업을 벌이니 문화가 꽃피우는지 궁금합니다. 다 다른 골목동네는 다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골목밭을 짓고 골목꽃을 심으며 골목나무를 가꾸었어요. 골목집 담벼락은 담벼락이면서 빨래를 너는 옷걸이 구실을 하고, 덩굴풀이 올라와서 살가운 무늬를 빚었는데, 이런 담벼락마다 페인트로 척척 무언가 바르면서 문화사업이라고 이름을 붙이곤 하는 공공기관이요 예술가입니다. 문화사업은 문화로 돈을 버는 사업일는지 모르지만, 삶이 아닙니다. 삶을 읽지 않고 껍데기로만 꾸미는 독재요 폭력입니다.

 


..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자신을 믿는다는 것이다 … 뜻밖에 차도 얻어 타고, 전통 의상을 입은 여인들의 사진도 찍고, 게다가 노래까지 곁들여진 아름다운 여정이었다 … 이곳의 반체제 지식인들은 여전히 옛 명칭인 버마와 랑군을 고집해서 쓴다. 지금도 계속되는 독재정권 하에서 모든 것이 퇴행해 버린 나라, 그래서 사람들은 미얀마를 ‘시간이 멈춰 버린 땅’이라고 부른다 … 우리의 신들은 거의 사라진 반면 미얀마의 신들은 아직도 현실 속에 그들의 생활 속에 생생히 살아 있다 ..  (134, 147, 170, 181쪽)


  벽화사업을 마친 골목동네를 찾아다니는 관광객이 늘어납니다. 벽그림이 예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벽그림이 예뻐 골목동네를 찾아가야 할까요? 벽그림이 없던 때에는 골목동네가 안 예쁘거나 꾀죄죄하거나 못났을까요? 동네를 이루는 자그마한 골목집이 하나둘 모였기에 예쁜 삶터이지 않나요? 작은 사람들이 작은 사랑으로 모여서 작은 골목동네를 이루었기에 이곳이 예쁜 보금자리이지 않나요?


  아시아 소수부족 마을에 학교가 서고 콜라를 마시고 햄버거를 먹으며 교복을 입고 운동화를 꿴 뒤 텔레비전을 쳐다보면 문명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텔레비전과 콜라와 햄버거와 학교와 병원과 자동차과 아스팔트길이 들어선 소수부족 마을은 얼마나 문화답고 문명다울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곳에는 어떤 이야기가 흐를는지 궁금합니다. 자가용 모는 소수부족 마을에 어떤 노래가 흐를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곳으로 찾아가서 ‘오랜 전통문화’를 마주하거나 지켜보거나 나눌 일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 마음과 마음이 가까워지면 자신의 가장 소중한 아이들까지 나눌 수 있는 정이 생기근 곳. 이렇게 아시아 곳곳에는 나의 딸, 조카가 있다. 그 아이들을 떠올리면 항상 행복해진다. 그들과 나누었던 시간들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 나의 쓸쓸함이야 내 선택의 몫이지만 갈수록 아이들에게 미안해진다. 함께 어른들께 세배를 다니고, 또 내 아이들에게 세배를 받고 다른 집 아버지들처럼 덕담도 한마디 해 주고 세뱃돈도 주어야 할 텐데 … 공해가 없는 곳이라 산성비도 아닐 터이니 이 비를 맞는다고 엉성해진 내 머리카락에 무슨 영향이 있겠는가. 처마 밑을 나와 벌거숭이 아이들과 어울린다. 비가 어찌나 굵은지 떨어지는 빗줄기에 살갗이 얼얼할 정도로 아프다  ..  (191, 224, 238쪽)


  김수남 님은 말합니다. “아시아의 소수민족들과 어울리는 동안에 내가 어느덧 무정부주의자가 된 것일까(256쪽).” 하고. 그래요. 김수남 님은 무정부주의자가 되었어요. 아니에요. 김수남 님은 ‘사랑이’가 되었어요. 사랑쟁이가 되고 사랑꾼이 되었어요. 사랑님이 되고 사랑빛이 되었어요. 무정부주의 아닌 사랑으로 이웃을 바라보았어요. 무정부주의를 넘어 사랑이 되면서 이웃과 어깨동무를 했어요. 이웃과 사랑스레 어깨동무를 하면서 저절로 사진을 얻고 글을 받았어요. 하늘이 내려준 사진이에요. 땅이 베푼 글이에요. 하늘이 선물한 사진이에요. 땅이 보내준 글이에요.


  김수남 책에 실린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이 빙그레 웃습니다. 사진에 찍히니 웃지 않습니다. 김수남 님이 빙그레 웃으니 마주보며 빙그레 웃습니다. 소수부족 사람들은 제 겨레를 빛내거나 알리고 싶어서 사진에 찍히지 않습니다. 소수부족 사람들은 김수남 님한테 사랑을 보여주고 나누면서 즐겁게 어깨동무하고 싶기에 웃습니다. 김수남 님도 어떤 ‘사명’이나 ‘의지’가 아닌, 살가운 이웃과 사랑을 꽃피우는 삶이 즐거우니까, 사진기를 내려놓고 웃습니다. 슬며시 사진기를 들고 웃습니다. 다시 사진기를 내려놓고 웃습니다. 새삼스레 사진기를 들고 웃습니다.


  제주섬에서 태어난 맑은 넋이 지구별을 두루 돌았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맑은 넋과 부산에서 태어난 맑은 넋은 오늘날 어느 곳을 두루 돌까요. 원주에서 태어난 밝은 넋과 밀양에서 태어난 맑은 넋은 오늘날 어느 마을을 두루 돌까요. 이 땅 모든 어린이와 어른이 즐겁게 웃기를 빕니다. 즐겁게 웃으면서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삶을 누리기를 빕니다. 즐겁게 웃으면 즐겁게 찍는 사진입니다. 맑게 노래하면 맑게 담는 사진입니다. 사랑스레 어깨동무하면 사랑스럽게 빚는 사진입니다. 4347.3.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