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년 1
박흥용 지음 / 김영사on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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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28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에서
― 영년 1
 박흥용 글·그림
 김영사 펴냄, 2013.8.13.

 


  우리들은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에서 살아갑니다. 한국이 전쟁을 일으킨다구,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할 분이 있을 텐데, 틀림없이 한국은 전쟁을 일으킵니다. 수십만에 이르는 군인을 거느리고, 전쟁무기를 만들며, 끝없이 새 무기를 첨단으로 갈고닦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평화에는 품과 돈과 땀을 얼마 들이지 않습니다. 아니, 한국이라는 나라는 전쟁에 엄청난 품과 돈과 땀을 들입니다. 게다가 애국주의라는 이름을 내걸어 전쟁주의로 치닫습니다.


  전쟁을 막으려고 전쟁무기를 갖춘다고 핑계를 대지만, 전쟁무기는 전쟁을 하려고 갖춥니다. 이쪽에서 먼저 치고 들어가든, 저쪽에서 한 방 쳤을 때 곧바로 쳐들어가서 때려부수려고 하든, 전쟁무기는 전쟁을 벌여 이웃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려고 하는 얕은 꿍꿍이입니다.


- ‘일본산 구리나 공기총을 메고 나타난 아저씨. 사냥꾼은 아니란다.’ (32쪽)
- “하하, 사실 나는 박판주 씨를 전혀 모릅니다. 당신 손에 끼어 있는 대학 졸업반지를 보고 이런 시골에서 도회지로 대학을 보낼 수 있는 재력가라면 박판주 씨밖에 없을 것 같아서 눈치로 때려잡은 거죠. 어떻습니까, 내 직관력이?” “당신 가방 속에 있는 사냥총은 무엇인가를 가리기 위한 위장용인 것 같고, 비밀스런 일 때문에 이 동네에 들어오신 것 같은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43쪽)

 

 

 

 

 

 


  전쟁에는 ‘방어’가 없습니다. 방어란 전쟁에서 죽음입니다. 저쪽에서 미사일을 쏘는데 어떻게 ‘방어’를 하겠어요? 죽겠지요. 전쟁에서는 방어가 아니라 ‘총알받이’입니다. 이른바 ‘전방 군부대’는 전쟁통 총알받이 구실입니다.


  나는 군대에서 ‘총알받이 보병부대’에 있었기에 이 같은 이야기를 몸소 잘 겪었습니다. 내가 있던 군부대는 저쪽에서 미사일을 쏘아대고 치고 들어올 적에 2분 30초 동안 총알받이 구실을 하면서 버티는 노릇을 해야 합니다. 목숨을 내걸고 2분 30초를 버티면, 바로 뒤에 있는 군부대에서 저쪽으로 훨씬 무시무시한 미사일 포격을 해대면서 싹쓸이를 한다는 작전이 바로, 한국 군대 ‘평화주의’입니다. 내가 있던 부대와 이웃 부대를 아울러 얼추 5만∼10만, 또는 10만∼20만 젊은이를 총알받이로 삼아서, 바로 뒤에 있는 부대가 한꺼번에 물밀듯이 올라가서 박살을 낸다는 작전이 바로 한국 군대 ‘평화주의’예요.


  그런데, 이런 ‘평화주의 작전’을 놓고 정작 군대 간부라든지 후방 부대 간부들은 ‘거짓말’이라고 느낍니다. 저쪽에서는 2분 30초만 포격을 하고 끝낼 수 없어요. 그 뒤에 무시무시한 포격을 받으면 저쪽 스스로도 끝장날 줄 아니까 한 번 밀려면 한꺼번에 싹쓸이를 할 작전을 짭니다. 이쪽도 똑같아요. 저쪽이 먼저 한 방 쳤다는 구실이나 빌미가 있어야 나중에 ‘평화가 찾아온 때’에 핑곗거리가 있어요. 최전방부대에서 총알받이로 몇 백이건 몇 천이건 몇 만이건 죽어 주어야, 이를 빌미로 저쪽을 싹 쓸어서 죽일 수 있고, 이렇게 죽여도 ‘평화를 지키는 전쟁’이라고 내세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쪽이든 이쪽이든, 미사일은 국경 너머만 겨누지 않습니다. 이쪽에 있는 후방 포대에서 겨누는 미사일은 저쪽뿐 아니라 저쪽하고 맞닿은 ‘이쪽 총알받이 부대’한테도 겨눕니다. 총알받이 부대가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게끔 모두 쓸어넘길 수 있도록 겨누어요. 저쪽에서도 저쪽 나라 총알받이 부대는 전쟁이 터지면 모두 개죽음을 해야 하도록 미사일을 겨눕니다.


- “더 큰 어머니를 버려 두고 술장사를 하겠다는 거야?” “술장사?” “넌 무엇이 중요한지 몰라? 이제 가치 혼란까지 생겼어?” “그래, 술장사하려고 하니까 벌써 취했나 보다. 어머니보다 더 큰 어머니가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67쪽)
- ‘때를 기다렸다는듯이 미군 폭격기가 폭탄을 쏟아부었다. 탱크 바퀴에 뭉개지고 비행기 폭격에 찢겨져 날아간 것은 아버지의 논이 아니라 아버지 자신 같았다.’ (82쪽)

 

 

 


  평화로운 나라가 있으면, 이 나라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전쟁 미치광이 나라라 한들, 평화로운 나라를 무너뜨려서는 아무런 이득이 없습니다. 전쟁을 벌여 이득을 거두려면, 평화로운 나라에 있는 돈이나 곡식이나 사람을 사로잡아야겠지요. 그러니, 전쟁무기로 서로 치고받을 적에는 서로 피해만 볼 뿐 아무것도 얻지 못해요. 평화로운 나라롤 거머쥐고 싶은 전쟁 미치광이 나라는 평화로운 나라를 정갈하게 지켜야 합니다. 논밭에 폭탄이 떨어지면 이 논밭을 쓸 수 없어요. 숲에 폭탄이 떨어지면 숲에서 나무를 벨 수 없어요. 바다를 폭탄으로 망가뜨리면 바다에서 물고기를 낚지 못하고 갯벌도 무너지겠지요. 전쟁을 일으켜 이웃나라 사람들을 죽이면 ‘노예’로 부리지도 못해요.


  평화를 지키는 길은 오직 평화입니다. 평화롭게 살아가는 나라에 전쟁무기를 들이대어 ‘모두 내놔!’라 한들, 평화로운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가만히 앉아서 아무 일도 안 하면, 전쟁무기를 든 나라 사람들은 모두 굶어서 죽어야 합니다. 평화로운 나라 사람을 전쟁무기 든 나라 사람들이 두들겨팰 수 없어요. 왜냐하면, 노예로 부리려고 두들겨팬대서 모내기를 하거나 가을걷이를 하겠어요? 가만히 기다리면서 지켜보면, 전쟁무기를 든 이들은 전쟁무기를 내려놓을밖에 없습니다. 전쟁무기 아닌 삽과 호미와 괭이와 낫을 들어야겠지요. 전쟁무기로는 아무것도 살리지 못하고 아무것도 빼앗지 못하며 아무것도 거머쥐쥐 못해요. 전쟁무기로는 윽박지를 수도 없으며 가로채거나 괴롭히지도 못해요.


- “넌 어느 편이냐? 북이냐? 남이냐?” (105쪽)
- “이 나라는, 일제강점기로 주권을 빼앗기면서 나라가 무엇인지 새삼 깨달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럴 즈음에 소련과 미국의 팽창주의까지 밀려들어 오게 되어, 공유와 사유라는 구체적인 내용으로 나라의 틀까지 고민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죠.” (119쪽)

 

 

 


  가장 어리석은 짓이 싸움입니다. 가장 못난 마음이 미움입니다. 가장 바보스러운 연장이 전쟁무기입니다. 칼은 무나 배추를 썰라고 만듭니다. 사람 목아지를 따라고 만드는 칼이 아닙니다. 무나 배추를 썰어서 목숨을 살리라고 만드는 칼입니다. 이웃을 살리고 동무를 아끼며 식구를 사랑하라는 뜻에서 만들어 쓰는 칼입니다.


  모든 전쟁무기는 언제나 전쟁을 부릅니다. 모든 전쟁무기는 사회에 계급과 신분과 위계를 만들어 ‘사람이 사람을 누르는 틀’을 세웁니다. 그러니까, 학벌과 재산도 전쟁무기입니다. 자격증과 신분증도 전쟁무기입니다. 사랑만이 평화입니다. 믿음만이 평화예요. 꿈만이 평화로 나아갑니다.


  밥 한 그릇에서 평화가 태어납니다. 씨앗 한 톨에서 평화가 자랍니다. 풀 한 포기에서 평화가 퍼집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평화가 뿌리내립니다.


  참답게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라면 전쟁을 가르치는 꼴입니다. 참답게 얼크러지는 사회가 아니라면 도시이든 시골이든 정치와 경제는 전쟁을 부추기는 꼴입니다. 아이들은 초·중·고등학교에서 입시지옥이 아니라 ‘입시전쟁’을 해요. 어른들은 사회에서 ‘취업전쟁’을 할 뿐 아니라 회사끼리 ‘매출전쟁’을 해요. 모두 전쟁입니다. 총칼을 든 전쟁이 있는 옆에 ‘총칼이 아닌 무기’를 움켜쥐고 싸우는 바보짓을 벌입니다.

 

 

 


- “이건 사고야. 넌 괴물이 아니야. 나를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돌팔매질을 한 것이라구. 살인이 목적이 아니었잖아. 사고야. 어쩔 수 없었던 사고.” ‘내가 던진 돌은 그놈 이마에 박혔지만, 그 죽은 놈 얼굴은 내 망막에 박혔어.’ (245쪽)


  박흥용 님 만화책 《영년》(김영사,2013) 첫째 권을 읽습니다. 박흥용 님이 겪고 느끼고 치르며 생각한 삶을 만화책으로 풀어냅니다. 박흥용 님이 바라본 ‘전쟁’과 ‘평화’를 새로운 이야기로 엮어 만화책 하나에 싣습니다.


  삶이란 무엇인가요. 사랑이란 어떤 빛인가요. 전쟁은 무엇인가요. 평화는 어디에 있나요. 마을은 무엇이고, 나라는 무엇일까요. 모둠살이는 무엇이고, 밥과 돈은 어디에서 태어날까요. 아름답게 어깨동무하려는 꽃마음이 아니라면, 그예 전쟁으로 흐르고 맙니다. 4347.3.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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