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도서관이랑 헌책방이랑

 


  나는 1994년 봄에 대학교에 처음 들어갔습니다. 대학교 첫 학기에 도서관에 가서 아주 놀랐습니다. 대학도서관은 인천에 있는 도서관과 달리 ‘읽을 책’이 많으리라 생각했으나, ‘읽을 책’이 얼마 없습니다. 대학도서관은 대여점과 비슷하게 대중소설을 아무렇게나 빌려읽는 곳이거나 토익시험 공부를 하는 자리였습니다. 생각을 빛내거나 밝히는 책을 두루 누리는 곳하고는 너무 동떨어진 대학도서관이었습니다.


  대학교를 다섯 학기 다니고 그만두었습니다. 대학도서관에 처음 발을 디딘 뒤 너무 서운하고 슬펐는데, 대학교 둘레에 헌책방이 있어 마음을 다스렸습니다. 대학교 둘레 조그마한 헌책방은 그야말로 조그맣지만, 외려 대학도서관보다 책이 알찼습니다. 책이 알찰 뿐 아니라 아름답습니다. 대학도서관은 책을 살뜰히 건사하지 못해 많이 다치거나 찢어지기 일쑤요, 바라는 책을 찾아보기조차 어려웠고, 헌책방은 책을 알뜰히 다루면서 한결 깨끗하거나 정갈했어요. 내가 바라는 책을 헌책방에서 늘 찾아볼 수 있었어요. 네덜란드말 사전도 헌책방에서 세 가지를 찾아냈고, 네덜란드 동화책도 여러 권 찾았어요.


  대학교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스스로 책읽기를 바라지 않기에 대학도서관은 허술하거나 썰렁할는지 모릅니다. 대학교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스스로 책빛과 책삶을 밝히거나 가꾸는 길을 걷고 싶지 않으니 대학도서관은 후줄근하거나 어설플는지 모릅니다. 토익시험과 학점따기에 얽매이는 대학생이 모이는 곳에서 도서관이 제몫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입시를 지난 뒤 취업으로 내다는 대학생이 그득한 곳에서 도서관이 도서관답거나 책터 노릇을 할 수는 없습니다.


  내 보금자리는 내가 손수 가꿉니다. 우리 마을은 우리가 스스로 돌봅니다. 대학도서관은 대학생이 가꾸고, 동네책방은 동네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꾸밉니다. 4347.3.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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