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15) 통하다通 61 : 창을 통해
이 방 부엌을 시작으로 창을 통해 아래 정원까지 내려뜨려서 나가시 소면 해먹으면 기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오자와 마리/노미영 옮김-은빛 숟가락 (5)》(삼양출판사,2014) 180쪽
창을 통해
→ 창에서
→ 창을 거쳐
→ 창을 지나
…
한국사람이 쓰는 한국말 사이에 일본 한자말이 무척 많이 스며들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무렵부터 물밀듯이 들어와서 오늘날까지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일본 한자말을 몰아내거나 쫓아내려고 애쓰는 분들이 많았고, 한동안 이런 흐름이 있었지만, 어느덧 일본 한자말이 깊이 뿌리내립니다. 일본 한자말에 차츰 익숙해지고, 교과서와 공공기관과 신문과 방송과 책에서 모두 일본 한자말을 거리끼지 않으면서 쓰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에 아주 깊이 뿌리박았다 싶은 일본 한자말도 ‘한국말’이라 여기곤 합니다. 이런 일본 한자말을 털어내려고 하면, 안 될 소리라 하기도 합니다. 가만히 보면,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슬기롭게 쓰려고 생각하지 않을 뿐더러, 외국말을 아무렇지 않게 아무 곳에나 쉽게 씁니다. 학교에서도 외국말을 더 높이 가르치거나 널리 다룹니다. 사회에서도 외국말 자격증을 꼼꼼히 따집니다. 교육과 문화와 예술과 문학에서도 한국말을 알맞거나 바르게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일본 만화를 옮긴 보기글을 살핍니다. 겉보기로는 한글이지만, 속살로는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국말로는 “부엌부터 뜰까지”입니다. “부엌을 시작으로 뜰까지”처럼 쓰지 않는 한국말입니다. 이 다음으로 “창을 지나”나 “창을 거쳐”로 적어야 한국말이지만, “창을 통해”처럼 적습니다. 그러면, 이런 일본 말투를 알아채어 슬기롭게 다듬어야 할 텐데, 번역하는 분과 책을 엮는 분이 미처 알아채지 못합니다. 이 책을 읽는 분도 좀처럼 깨닫지 못합니다. 이런 말투를 알아채거나 깨닫더라도 그러려니 지나치기 일쑤입니다. 말 한 마디에서 민주와 평화를 찾을 수 있을 때에, 사회와 문화와 정치에서도 민주와 평화를 찾습니다. 4347.3.1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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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 부엌부터 창을 거쳐 아래 뜰까지 내려뜨려서 나가시 소면 해먹으면 즐겁겠다고 생각했어
“부엌을 시작(始作)으로”는 “부엌부터”로 손보고, ‘정원(庭園)’은 ‘뜰’이나 ‘꽃밭’으로 손보며, “기분(氣分) 좋을 것 같다고”는 “즐겁겠다고”나 “재미있겠다고”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