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파스를 보면 그리고 싶다
두 아이와 살아가며 그림을 곧잘 그린다. 날마다 그리지는 못하고, 이레에 한 차례조차 못 그리기도 한다. 집에 있을 적에는 온갖 집일을 헤아리다가 그만 그림을 못 그리곤 하지만, 바깥마실을 다니면 집일을 ‘안 해도 된다’는 느긋한 마음이 되어 이웃집에 크레파스가 있는지 두리번두리번 살피곤 한다. 아이 있는 이웃집이라면 으레 종이와 크레파스가 있고, 종이와 크레파스를 빌려서 큰아이와 함께 한동안 그림놀이를 한다.
그림놀이를 하는 동안 언제나 마음속에 사랑과 평화가 흐른다. 이런 멋진 놀이를 어른들 누구나 즐긴다면, 우리 삶자락은 얼마나 아름답게 빛날 수 있을까. 아이와 마주보고 서로 그림을 그리면, 우리 보금자리는 얼마나 사랑스레 거듭날 수 있을까.
과외교사나 가정교사를 들여야 하지 않는다. 그림학원에 보낸다든지 그림교사를 붙여야 하지 않는다. 방과후학교에서 배운다든지, 어떤 전문가를 찾아가야 하지 않는다. 집에서 누구나 어버이 스스로 아이하고 즐기면 된다.
화가가 되도록 그림을 가르칠 일이 없다. 나중에 아이가 스스로 바라면 화가가 될 수 있을 뿐이다. 작가가 되도록 글을 가르칠 일이 없다. 나중에 아이가 스스로 바라면 작가가 될 수 있을 뿐이다. 아이들이 시골 흙지기가 되기를 바라며 호미질이나 삽질이나 가래질을 가르치거나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 집 아이들이 시골 흙지기가 되어도 아름답겠지. 그러나, 어떤 앞길이든 아이들이 스스로 맡을 몫이지, 어버이가 이래라 저래라 시키거나 이끌 수 없다.
대학교에 잘 들어가도록 초·중·고등학교를 보낸다면, 아이들 마음이 얼마나 다치고 힘들까 헤아려 본다. 대학교는 가도 되고 안 가도 된다. 아이들은 회사원이 되어도 되고 안 되어도 된다. 아이들은 1등을 해야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즐겁게 배우면서 사랑스레 나눌 줄 알면 된다.
이웃집 마실을 하면서 으레 크레파스를 손에 쥔다. 이웃 아이 크레파스를 만지면, 이웃 아이가 그림을 얼마나 즐기는가 알 수 있다. 이웃 어버이는 으레 ‘난 그림 못 그려요.’ 하고 말하는데, 스스로 ‘못 그린다’고 생각하니 참말 못 그린다. 그러면 나는? 나는 잘 그리거나 못 그린다는 생각이 없다. ‘그리고 싶을’ 뿐이다. 꿈을 그리고 사랑을 그리면서 마음 가득 평화를 누리고 싶어서, 크레파스를 보면 ‘따로 아이를 부르지 않고’ 나부터 스스로 조용히 그림을 그린다. 이렇게 그림을 그리면 아이들이 언제나 옆에 달라붙어 내 그림을 구경하다가 저희도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종이를 가져온다. 4347.3.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