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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욕심 괴물 - 어린이를 위한 탈핵 이야기 ㅣ 철수와영희 그림책 6
김규정 글.그림, 김익중 감수 / 철수와영희 / 2014년 3월
평점 :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54
시골내기와 도시내기 사이에
놓인
― 무지개 욕심 괴물
김규정 글·그림
철수와영희
펴냄, 2014.3.11.
나는 오늘 시골에서 살아갑니다. 시골 가운데에서도 전라도 시골에서 살아갑니다. 전라도 시골 가운데에서도 남도 쪽 고흥군에서
살아갑니다. 고흥군에서도 읍내와 십육 킬로미터 떨어진 두멧시골에서 살아갑니다.
시골에서 지내다 보면 읍내나 면소재지에 나올 일이 드뭅니다. 하루를 시골집에서 오롯이 누립니다. 우체국에 가야 하면 면소재지에
가고, 저자를 보려면 닷새장이 서는 읍내에 가며, 책방이 그리우면 읍내를 거쳐 이웃 순천으로 가지만, 어쩌다가 바깥바람을 쐽니다.
시골에서 지내는 동안 언제나 숲바람을 마십니다. 시골에서 아이들과 함께 들빛을 먹습니다. 시골살림을 꾸리면서 날마다 나무노래를
듣습니다. 시골내기로 살며 늘 별빛과 달빛을 마시면서 새근새근 잠듭니다.
.. 선생님 말씀이 맞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컴퓨터 게임도 맘껏 하면 안
될 것 같고요. 그래서 라울은 엄마 아빠 말씀이 맞을 거라 생각했어요 .. (16쪽)
가끔 도시로 마실을 나옵니다. 나는 글을 써서 책으로 내놓는 일을 하기에 책마을 일꾼을 뵈러 도시로 마실을 해요. 두어 달이나
서너 달에 한 차례쯤 도시로 마실을 나오면서 시외버스나 기차를 타는데, 시외버스나 기차가 전라남도 끝자락을 떠나 전라북도로 가는 동안 들과 숲이
차츰 줄어듭니다. 전라남도는 멧자락마다 온통 구멍을 파대어 시외버스로나 기차로나 구멍길을 한참 달립니다. 여느 길에서는 멧자락에 깃든 숲과
들판에 선 마을을 바라보지만, 구멍길에서는 눈이 아프도록 깜깜하기만 합니다.
시외버스나 기차가 전라남도를 지나 전라북도를 거쳐 충청도로 접어들 무렵, 둘레에 공장이 제법 보입니다. 아파트도 꽤 보입니다.
시외버스나 기차가 어느덧 경기도로 들어서면 공장은 더 많이 보이고 아파트도 더 많이 나타납니다. 이제부터는 숲이나 들을 볼 수 없습니다.
시외버스나 기차가 100킬로미터 넘는 빠르기로 달리는데에도 끝없이 이어지는 아스팔트길입니다. 끝없이 잇닿는 아파트요 공장이며 온갖
건물입니다.
전라남도 끝에서 서울까지 여러 시간 달리면서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닫습니다. 저 멀고도 깊은 시골부터 도시까지 송전탑이
수없이 섭니다. 저 조용하고 아늑한 시골부터 서울까지 송전탑이 우람하게 섭니다. 그러고 보면, 큰도시에는 큰 발전소가 없습니다. 큰도시에서
전기를 엄청나게 쓰지만, 큰도시에서 만드는 전기가 아니라 시골에서 만드는 전기입니다. 시골에서 전기를 만들어 무시무시하게 큰 송전탑을 골골샅샅
두루두루 박습니다. 숲에도 들에도 바다에도 멧등성이에도 송전탑이 서요.
밀양에 세우려 하는 송전탑도 끔찍하지만, 오늘날까지 골골샅샅 선 송전탑도 끔찍합니다. 앞으로 송전탑을 세우지 못하도록 막는 일
못지않게, 이제까지 선 송전탑을 뽑을 노릇이 아닌가 하고 돌아봅니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병원에서 눈을 뜬 라울이 자신의 보물들을 찾아요. 롤은
곁에 있는데 레드맨 헬멧이 보이지 않네요 .. (25쪽)
송전탑이 선 자리를 살펴보면, 아파트 곁에도 있고 학교 옆에도 있습니다. 송전탑은 논밭 한복판에도 섭니다. 송전탑은 그저 뻗기만
합니다. 송전탑을 코앞에 두고 시골 흙일꾼은 가을걷이를 해야 하고 모내기를 해야 합니다. 송전탑 옆에서 들밥을 먹어야 하고 들일을 해야
합니다.
논밭을 일구지 않는 도시사람은 어떤 쌀을 먹거나 배추를 먹는지 하나도 모릅니다. 도시사람이 먹는 쌀이 송전탑이 한복판에 박힌
논에서 거둔 나락을 깎아서 봉투에 담은 쌀인지 아닌지 알 노릇이 없어요. 도시사람이 가게나 술집에서 먹는 돼지고기와 소고기가 송전탑이
무시무시하게 선 곳 옆에 있는 짐승우리에서 살던 돼지와 소인 줄 알 노릇이 없어요.
그러나, 송전탑과 발전소만 생각할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전기를 모두 시골에 지은 발전소에서 끌어오지만, 도시사람이 먹는 모든
밥과 물과 고기와 푸성귀도 시골에서 끌어옵니다. 도시는 도시를 버티는 일꾼도 시골에서 끌어옵니다. 바닷가에서 고기를 낚는 시골사람이 있어야
도시사람이 물고기나 회를 먹습니다.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고 낙지를 잡는 시골사람이 있어야 도시사람이 갯것을 먹습니다. 비닐집을 지어 한겨울에도
석유로 기름을 때는 시골사람이 있어야 도시사람이 이월이나 삼월에 딸기를 먹습니다.
모두 도시로 몰립니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도시로 몰립니다. 의사도 변호사도 도시로 몰립니다. 교사도 도시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 시골로 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에 있다가 고흥 같은 작은 시골로 온 교사들은 으레 고흥에 있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 촌놈들!” 하고 말합니다. 도시내기한테서 ‘촌놈’이란 말을 듣는 읍내 사람들은 면소재지나 섬에서 사는 ‘같은 시골사람’을
가리켜 다시 ‘촌놈’이라고 비아냥거립니다.
.. 이제 라울은 괴물을 그냥 둘 수 없어요. 괴물한테서 지구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영웅이 할 일이니까요 .. (34쪽)
김규정 님이 선보인 그림책 《무지개 욕심 괴물》(철수와영희,2014)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무지개 욕심 괴물’은 무지개빛을 띤
괴물입니다. 무지개빛을 띤 괴물은 방사능덩어리입니다. 방사능덩어리는 온누리 모든 것을 집어삼킵니다.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모든 목숨을 하루아침에
잿덩어리로 바꿉니다.
가만히 보면, 도시 문화와 문명은 ‘무지개빛’입니다. 소나기 그친 하늘에 뭉게구름 따라 드리우는 ‘하늘무지개’가 아닌 갖가지
화학조합식으로 만든 ‘잿빛 무지개’요 ‘시멘트 무지개’입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도시를 꿈꿉니다. 도시에 가서 미용사도 되고 회사원도 되고 연예인도 되겠다고 꿈꿉니다. 도시에 가서
극장도 가고 놀이공원도 가고 지하상가도 가겠다고 꿈꿉니다. 도시에 가서 피자집도 가고 패밀리레스토랑도 가겠다고 꿈꿉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 가운데 들빛을 마신다거나 들꽃을 아낀다거나 들일을 한다거나 들노래를 부른다거나 들집을 지어 들살림을
가꾸겠다고 꿈꾸는 아이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가 ‘난 도시에 안 가고 시골에서 흙 만지며 살겠어요.’ 하고 말하거나
꿈꾸면 시골내기 어른들은 ‘저 미친놈!’ 하고 나무랍니다. 도시내기 어른 가운데 ‘너희 가운데 앞으로 시골로 가서 흙 만지며 살아가는 멋진
젊은이가 있으면 좋겠다’ 하고 말하는 분이 얼마나 있을까요. 애써 도시에서 이런 학교 저런 학원을 보냈는데, 아무것도 손에 거머쥐려 하지 않고
시골로 가도록 가르치거나 이끌 어른이 있을까요.
그림책에 나오는 ‘무지개 욕심 괴물’은 틀림없이 방사능덩어리입니다. 그러나, 방사능덩어리만 지구별을 꿀꺽 집어삼킨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스스로 흙을 만지지 않도록 이끄는 문명이 지구별을 집어삼킵니다. 돈만 있으면 된다고 여기도록 이끄는 학교교육과 제도권 사회가 지구별을
집어삼킵니다.
오늘날에는 도시내기 아이들뿐 아니라 시골내기 아이들조차 벼꽃을 모르고 벼이삭을 모릅니다. 시골내기 아이들마저 시골에서 자라는
나무를 모르고 능금꽃이나 살구꽃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시골내기 아이들까지 딸기꽃을 모르고 앵두꽃을 모릅니다.
머잖아 삼짓날이 찾아들 텐데, 삼짓날 제비를 손꼽아 기다릴 아이나 어른은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핵발전소 아닌 제비를 바라고,
돈 더 많이 벌기 아닌 숲에서 푸른 숨결 마시기를 꿈꾸는 아이들이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얼마나 씩씩하게 자라는지 궁금합니다. 시골과 도시를 잇는
길에 송전탑 아닌 제비춤이 아름답게 드리우고 하늘무지개가 곱다라니 펼쳐질 수 있는 알을 기다립니다. 4347.3.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