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드레스 백 벌이 있어 일공일삼 11
엘레노어 에스테스 지음, 루이스 슬로보드킨 그림, 엄혜숙 옮김 / 비룡소 / 2002년 1월
평점 :
품절


 

 

어린이책 읽는 삶 50

 


모두 내 동무예요
― 내겐 드레스 백 벌이 있어
 엘레노어 에스테스 글
 루이스 슬로보드킨 그림
 엄혜숙 옮김
 비룡소 펴냄, 2002.1.11.

 


  이웃이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둘레에 있는 이들은 모두 이웃입니다. 동무이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나이를 떠나 우리 곁 누구나 동무입니다. 나 혼자만 잘산다고 할 적에는 참말 잘사는 일이 아닙니다. 내 이웃과 동무 모두 잘살 적에 참말 잘산다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아는 몇몇만 잘산대서 잘사는 일이 아니에요. 내가 모르는 누구나 잘살 적에 비로소 잘산다 할 수 있습니다.


  이웃이지 않은 목숨은 없습니다. 들고양이뿐 아니라 들쥐도 이웃입니다. 거머리와 벼룩도 이웃입니다. 무당벌레와 잠자리도 이웃입니다. 파리와 길앞잡이도 이웃이에요. 버들치와 개구리도 이웃이요, 꾀꼬리와 참새도 이웃입니다. 서로 아름답게 어울리면서 살아갈 적에 아름답습니다. 몇몇 목숨만 예뻐 하거나 아낀대서 아름답지 않습니다. 다 다른 목숨이 다 다른 삶자리에서 즐겁게 어우러질 적에 비로소 아름답습니다.


.. 완다가 거칠고 시끄러운 아이여서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완다는 아주 조용했고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도 완다가 소리 내어 크게 웃는 걸 보지 못했다. 가끔 완다는 입술을 꼭 물고 씩 웃기는 했다 … 완다는 저 위, 보긴스 하이츠에 살았다. 하지만, 보긴스 하이츠는 사람이 살 만한 데가 아니었다. 그곳은 여름에 들꽃을 꺾기에 좋은 곳이었다 ..  (7, 13쪽)


  엘레노어 에스테스 님이 글을 쓰고 루이스 슬로보드킨 님이 그림을 그린 어린이책 《내겐 드레스 백 벌이 있어》(비룡소,2002)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책은 책이름에 줄거리가 다 드러납니다. 책이름부터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는가를 낱낱이 밝힙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다른 문학도 책이름에 모든 실마리가 있어요. 책이름이 바로 우리하고 함께 나누고픈 생각입니다.


  틀림없이 ‘드레스 백 벌이 없는’ 아이가 ‘내겐 드레스 백 벌이 있어’ 하고 말할밖에요. 드레스 백 벌이 있는 아이가 ‘나한테는 드레스 백 벌이 있다구’ 하고 말한들 아무런 재미가 없어요.


  그러면, 드레스 백 벌이 없는 아이가 왜 ‘드레스 백 벌이 있다’고 말했을까요.


.. 완다가 채 멀리 가기도 전에, 여자 아이들은 깔깔대며 웃음을 터뜨렸다. 드레스 백 벌이라니! 보나마나 완다는 날마다 입고 오는 저 파란 드레스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완다는 자기에게 드레스가 백 벌이나 있다고 하는 걸까 … 완다는 보기스 하이츠에 살고, 운동장에서 혼자 서 있는 여자 아이였다. 그리고 완다가 자기 차례가 되어 일어나 책을 읽을 때 말고는 아무도 완다를 생각하지 않았다. 완다가 책을 읽을 때면, 아이들은 완다가 빨리 끝내고 자리에 앉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완다는 영원히 한 문장만 읽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17∼18, 40쪽)


  언뜻 들여다본다면, 《내겐 드레스 백 벌이 있어》는 따돌림받는 이주노동자 식구들 이야기입니다.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가난한 식구가 마을과 학교에서 따돌림받으면서 고단하게 지내는 삶이 줄거리라고 여길 만합니다. 그러나, 참말 이런 이야기가 이 책 알맹이일까요. 이 책을 쓰고 그린 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마음이었을까요.


  책 끝자락에 비로소 또렷하게 들려주는 말이 있지만, 처음부터 모든 이야기가 다 나옵니다.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완다’네 식구는 미국에서 이웃하고 즐겁게 어우러지고 싶지, 이웃한테서 따돌림을 받을 생각이 없습니다. 어린 완다도 학교에서 동무들과 살가이 어울리고 싶지, 외롭고 쓸쓸하게 지낼 생각이 없습니다.


  따돌림을 받거나 힘들게 지낼 생각이라면, 굳이 폴란드를 떠나 미국으로 올 까닭이 없어요. 돈을 벌려고 완다네 아버지가 미국으로 건너왔다 할 수 있습니다만, 오직 돈 하나만 보고 미국으로 왔을까요. 돈만 벌면 삶이 재미날까요. 돈만 있으면 삶이 빛날까요.


.. 아이들은 완다에게 어머니가 없다는 걸 알았지만, 완다가 직접 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해야 한다는 건 생각하지 않았다. 완다는 드레스가 한 벌뿐이어서 밤에 빨래를 해서 다림질을 해야 했을 것이다. 아마도 가끔은 채 마르지 않은 옷을 입고 나올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완다의 옷은 언제나 깨끗했다 ..  (70쪽)


  완다한테 동무가 되지 못하던 아이들은 먹고사는 걱정이 없습니다. 게다가, 미국에서 태어나 사는 아이들은 미국을 떠날 일이 없습니다. 미국을 떠나 폴란드로 가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일자리를 못 찾아 폴란드로 가서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받으면서 지내는 식구는 아마 없겠지요.


  완다는 폴란드에서 지내던 나날을 마음속으로 그렸으리라 생각해요. ‘나한테도 동무가 백 사람쯤 있다구’ 하는 소리를 옷을 빌어 외쳤겠구나 싶어요. 그리고,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와서 살아가려 하는 바로 오늘 이곳에서, 완다는 ‘이곳에서는 너희들이 모두 내 동무라구’ 하고 울음을 삼키면서 말했겠구나 싶습니다.


  완다가 다닌 학교에 있는 아이들이 ‘나쁜 아이’가 아닙니다. 아직 동무 사귀기가 낯설 뿐입니다. 저마다 집이나 학교나 마을에서 동무를 어떻게 사귀며 서로 아끼고 즐겁게 살아가는가 하는 대목을 못 깨달았을 뿐입니다. 학교에서 교장 선생이 나중에 아이들을 나무라는 말을 하지만, 교장 선생은 이렇게 아이들을 나무랄 까닭이 없어요. 아이들 탓만 할 노릇이 아니라, 어른들 스스로 뉘우쳐야지요. 아이들이 살갑고 따사롭게 낯선 동무를 품에 꼬옥 안으면서 받아들이는 교육을 학교에서 슬기롭게 했다면, 아이들이 완다를 멀리하거나 괴롭히는 일은 없었겠지요.


  마음과 마음으로 서로를 아끼는 아이들은 마음으로 압니다. 우리는 다 함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웃이요 동무인 줄 압니다. 완다는 학교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면서 아이들한테 그림 백 점을 남겨요. 다 다른 동무 백 사람을 헤아리면서 그린 그림을 남겨요. 동무들은 완다가 그림 백 점을 남겼어도 이 그림이 무슨 뜻이었는지 오래도록 못 알아챘습니다. 완다가 처음 그 학교에 왔을 적에도 오래도록 ‘완다는 우리한테 어떤 동무인가?’ 하는 대목을 못 알아챘듯이 말이에요.


  어른들은 알았을까요? 어른들도 몰랐어요. 더구나 교장 선생이라는 분은 ‘완다한테 그림 솜씨가 있다’는 대목만 겉훑기로 알 뿐, 완다가 어떤 마음이요 사랑인가를 헤아리지 않았어요.


  아이들은 솜씨가 뛰어나야 빛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다 다른 빛과 숨결로 빛납니다. 아이들은 학업성적이 뛰어나야 예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 다른 웃음과 노래로 예쁩니다. 4347.3.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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