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空 - 저는 어디에도 없으면서, 모든 것을 있게 하는…
이현주 글.글씨 / 샨티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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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읽기 삶읽기 156

 


늘 재미있는 삶
― 空, 저는 어디에도 없으면서 모든 것을 있게 하는
 이현주 글·글씨
 샨티 펴냄,2013.12.10.

 


  이현주 님은 한자 ‘空’을 빌어 이녁 삶을 이야기합니다. 이현주 님으로서는 다른 어느 낱말보다 한자 ‘空’이 마음에 들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바로 ‘空’이라는 한자에서 꿈을 찾고 사랑을 느끼며 숨을 쉬기 때문입니다.


  이현주 님으로서는 ‘空’이 즐겁고 재미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다른 낱말이 즐겁고 재미있으리라 생각해요. 이를테면 ‘열다’를 좋아할 사람이 있을 테고, ‘빚다’를 좋아할 사람이 있어요. ‘살다’를 좋아하거나 ‘웃다’를 좋아할 사람이 있습니다.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르게 스며드는 낱말에 마음을 엽니다.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르게 맞이하는 낱말마다 이야기를 싣습니다. 이현주 님한테는 ‘空’이 된다면, 누군가한테는 ‘하늘’이 되기도 합니다. 하늘은 어디에도 없으면서 모두가 있도록 해 줍니다. ‘바람’도 그렇지요. 바람은 어디에도 없으면서 모두가 있도록 도와요.


.. 자연이 사람 손을 빌리지 않고 베푸는 모든 것이 공짜다. 빛, 공기, 물, 불, 흙, 바람, 나무열매 ……. 값이 없어서 공짜가 아니라 값을 매길 수 없어서, 그래서 공짜다 … 민들레가 해바라기만큼 크지 못한 것은 무능이 아니다. 그것이 무능이면, 해바라기가 민들레만큼 작지 못한 것도 무능이다 ..  (8, 150쪽)


  아이들이 노래합니다. 아이들은 늘 노래를 합니다. 길을 거닐 적에도 노래를 하고, 놀 적에도 노래를 합니다. 밥을 먹다가도 노래를 하며, 잠자리에서도 곯아떨어져 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노래를 해요. 버스에서도 노래를 하고, 기차나 전철에서도 노래를 합니다. 아이들은 목이 안 쉬나 봐요. 참말 거침없이 노래를 합니다. 아이들은 고뿔에도 안 걸리나 봐요. 참으로 그치지 않고 노래잔치입니다.


  나도 아이였으니 내 어릴 적에도 늘 노래였을까 하고 더듬어 봅니다. 나도 어릴 적에 우리 아이들마냥 늘 노래를 입에 달고 살았나 하고 곱씹어 봅니다.


  그렇습니다. 나도 노래쟁이였습니다. 잘 하거나 못 하거나를 떠나 늘 노래였어요. 여기에서도 노래 저기에서도 노래입니다. 늘 놀면서 살던 어린 나날이니 늘 노래였습니다. 아는 노래 모르는 노래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노래 어른노래 따지지 않습니다. 그저 즐겁게 노래를 부릅니다. 노랫말을 되새기지 않기도 합니다. 라디오에서 나오건 길에서 흐르건 입으로 흥얼거리면서 차근차근 외웁니다. 온누리 아이들은 모두 노래쟁이일 테지요.


.. 너를 천사로 만드는 것은 하느님도 아니고 너도 아니고 지금 네 앞에 있는 나다 … 나 없으면 하느님도 사랑을 그리지 못하신다 … 모든 사람이 저마다 완벽하다. 하늘에서 오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  (60, 84, 159쪽)


  재미없는 일은 없다고 느낍니다. 살아가며 재미없을 만한 일은 없다고 느낍니다. 이렇게 하면서도 재미있고 저렇게 하면서도 재미있습니다. 호미질 한 차례가 재미있고 괭이질 두 차례가 재미있습니다. 이웃 아재가 선물한 홍합꾸러미를 물로 잘 헹구어 커다란 냄비에 수북하게 담아 보글보글 끓여서 먹어도 재미있습니다. 우리 집에 눌러앉은 개도 홍합국물로 비빈 밥을 먹습니다. 아이들한테도 개한테도 홍합 껍데기를 잘 갈라서 속살을 한 점 두 점 떼어서 나누어 줍니다.


  우리 집에 눌러앉은 개한테 따로 밥을 주니, 그동안 우리 집 언저리를 맴돌던 마을고양이가 샘을 냅니다. 왜 저희한테는 밥그릇 하나 없이 밥찌꺼기만 주고, 쟤한테는 따로 밥그릇까지 챙겨서 주느냐고 집 둘레에서 냥이냥이 노래를 합니다.


  그러나 어쩌겠니, 냥이들아. 너희는 쥐를 잡아서 먹을 수 있잖아. 도시에 있는 어느 집에서 내내 사료만 먹었을 개는 스스로 먹이를 찾을 줄 모르잖니. 게다가 우리 집에 눌러앉는 개가 밥을 먹다 남기면 어느새 다가와서 냠냠냠 너희도 나누어 먹잖아.


.. 저보다 어두운 빛 때문에 흐려지는 빛은 없다 … 참사랑은 두려움을 모른다. 누구한테도 아무것도 강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  (93, 137쪽)


  이현주 님이 글과 글씨로 엮은 책 《空》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짤막하게 간추린 글과 알뜰히 그린 글씨를 한참 쳐다보면서 생각합니다. 낱말 하나로 얼마든지 책 하나 태어납니다. 낱말 하나로 오래오래 이야기꾸러미를 펼칠 수 있습니다. 이현주 님은 ‘空’ 하나로 이렇게 글과 글씨를 엮는데, 누군가 ‘사랑’ 하나로 글과 글씨를 엮을 수 있습니다. 글과 그림을 엮는다든지 글과 사진을 엮을 수 있습니다. ‘꿈’ 하나로도 책이 태어납니다. ‘빛’ 하나로도 책이 태어납니다. ‘노래’로도 책이 태어나고, ‘흙’으로도 책이 태어나요.


  어느 책을 쓰든 스스로 즐겁게 노래할 때에 책이 됩니다. 어떤 이야기를 갈무리하든 스스로 아름답게 꿈꾸면서 책이 됩니다. 하늘숨을 담는 책입니다. 하늘빛을 그리는 책입니다. 하늘에서 눈과 같이 사뿐사뿐 내리는 이야기입니다. 하늘에서 비와 같이 싱그러이 내리는 웃음입니다. 4347.3.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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