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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산주의자다 1 ㅣ 평화 발자국 4
허영철 원작, 박건웅 만화 / 보리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18
‘주의자’란 ‘범죄자’일 뿐
― 나는 공산주의자다 1
허영철 글
박건웅 그림
보리 펴냄, 2010.5.1.
허영철 님이 이녁 삶을 찬찬히 갈무리한 산문책을 바탕으로 새롭게 그린 만화책 《나는 공산주의자다》(보리,2010)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허영철이라고 하는 분은 ‘공산주의자’라 할 수 있을까요? 공산주의란 무엇일까요?
- “언제 무주에 왔습니까? 왜 경찰서에 신고를 안 했죠?” “왜 보고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곳에서는 잠깐 쉬었다가 다른 곳으로 갈 거예요.” “허영철 씨는 보안관찰법 대상자이므로 해당 경찰서에 신고해야 합니다.” “나는 그런 절차는 몰라요.” … “국가보안법 위반 및 간첩 미수로 무기징역을 받았지요? 남이 좋습니까, 북이 좋습니까?” (33∼34쪽)
- “남이 좋다고 하면 보안관찰법을 해제해 줄 것입니다.” “……. 나를 37년이나 징역살이를 시키고, 나와서도 15년이나 감시를 해대는데, 어떤 창자 빠진 놈이 여기를 살기 좋은 데라고 하겠느냐?” (44쪽)
모든 ‘주의자’는 ‘범죄자’일 뿐이라고 느낍니다. 민주주의자도 평화주의자도 모두 범죄자일 뿐이라고 느낍니다. ‘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민주를 바라거나 평화를 바라는 사람은 주의자가 되지 않습니다. 민주나 평화를 외친다 해서 주의자가 되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은 흙일꾼이나 농사꾼일 뿐, 흙주의자나 농사주의자가 아닙니다. 아이를 낳아 사랑으로 돌보는 사람은 어버이(어머니나 아버지)일 뿐, 아이주의자도 육아주의자도 아닙니다.
허영철 같은 분이라면 수수한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함께 살아가는 마을살이를 헤아렸을 뿐, 무슨무슨 주의자라는 이름은 걸맞지 않으리라 느낍니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와 독재주의에 맞서려는 생각으로 싸운 삶이기에 공산주의가 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스스로 주의자가 되는 이는 권력 끄트머리에 앉아서 이것을 지시하고 저것을 명령하는 사람들뿐입니다.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기울여 살아가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주의자가 되지 않습니다.
- “나는 아름다운 기억이 많아요. 제각 뒤쪽에 화단을 쌓던 일이 떠올라요. 화단에는 황매화, 백매화, 불두화, 연산홍, 자산홍, 모란, 작약, 난초 들이 있었어요. 사철 피는 백일홍이며, 탐스럽게 봉오리를 트는 목련이 있었고, 뜰 앞에는 키 큰 벽오동이 있었지요. 영산홍은 꽃이 질 때 아름답다는 말도 그때 알았고.” (76∼77쪽)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내세워 고문과 학살을 버젓이 저질렀습니다. 민주주의라면서 시골과 숲을 끔찍하게 망가뜨립니다. 민주주의라 하지만 자본주의라는 칼을 손에 쥐고는 온 나라 냇물과 들과 숲과 멧골을 중장비로 깎아서 시멘트를 들이붓는 짓을 멈추지 않습니다. 4대강 언저리를 모두 시멘트로 덮어씌우는 짓을 거의 끝마친 이즈음에는, 작은 시골마을 냇물과 도랑물과 골짝물을 갈아엎어서 시멘트를 들이붓는 짓을 끝없이 저지릅니다. 이런 일을 민주주의 정부는 복지와 평화와 민생이라는 허울을 씌우면서 합니다.
참말 주의자란 어떤 사람일까요. 범죄자인 얼굴을 감추려고 스스로 주의자라는 옷을 껴입는 셈 아닐까 궁금합니다.
허영철 님은 아름다운 이웃들을 떠올리고 그립니다. 허영철 님은 어릴 적부터 이녁 둘레에서 늘 만날 수 있던 꽃과 들과 숲을 떠올리고 그립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허영철 님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요 공산주의도 아닙니다. 그저 ‘마을사람’이고 ‘시골사람’입니다. 작은 마을에서 작은 빛을 노래하는 작은 사람입니다. 작은 시골에서 작은 꽃을 사랑하는 작은 아이입니다.
- “봄부터 배 곯다가 색걸이 내서 먹고 새똥빠지게 일해서 수확하면 또 다 지주집에 갖다 바치고, 그러면서 평생을 허리 한 번 못 펴고 굽실굽실 하며 사는 거지요. 그것이 억울하고 분해서 고향을 떠나 노동판에 왔는데도 같은 일이 여전히 일어나는 거예요. 내가 발 딛고 사는 세상은 온통 모순투성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지요. 그렇다면 고쳐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92쪽)
- “계급 투쟁이라고 하면 무조건 계급이 다른 사람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양심 있는 세력들이 모두 통합해 하나로 나가는 것이 궁극으로 해야 할 일이지요. 그래야 모든 인민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242쪽)
만화책 《나는 공산주의자다》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만화책 《나는 공산주의자다》는 허영철 님 삶이나 넋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책이름부터 알맞지 않고, 허영철 님한테서 길어올리려는 이야기도 눈길을 잘못 맞추었구나 싶습니다. 이념이나 사상으로 허영철 님을 바라보는 국가보안법도 잘못이지만, 이념이나 사상이라는 틀을 넘어서지 않고 이야기를 받아적으려 하던 출판사 편집자도 잘못이로구나 싶습니다.
허영철 님이 바란 삶은 ‘함께 즐겁게 일구는 삶’이라고 느낍니다. ‘함께 사랑스레 노래하는 삶’을 바라면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와 독재주의하고 싸우려 했으리라 느낍니다. 감옥에서 지내야 한 서른일곱 해는 ‘주의주장을 지키려는 길’이 아니라,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려는 길’이 왜 법에 어긋나야 하는가를 온몸으로 묻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박건웅 님이 그렸던 예전 작품 《꽃》을 떠올립니다. 박건웅 님은 지난날 《꽃》이라는 만화를 그렸지 ‘주의자’가 나오는 만화를 그리지 않았습니다. 지난날 박건웅 님이 그린 만화가 ‘꽃’이었으면, 이번에 그려야 했던 만화는 ‘주의자’가 아닌 ‘들’이나 ‘풀’이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눈길을 잘못 맞추었으니 이야기가 어긋나고 줄거리가 흐리멍덩합니다. 무엇보다 구태여 산문책을 만화책으로 다시 그리려는 까닭을 알 수 없습니다. 4347.3.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