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바라보며 책읽기
아이들은 ‘또래’를 만나야 하지 않습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또래’가 그렇게 대수롭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나이가 같대서 마음을 잘 읽거나 서로 애틋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아닌 마음이 같아야 서로를 잘 헤아리면서 아낍니다.
아이들한테는 언니나 오빠나 동생이라는 틀이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오빠면 어떻고 누나면 어떤가요. 같이 놀면 동무요, 같이 놀기에 놀이동무입니다. 나이가 많으니 더 잘 놀지 않고, 나이가 적어 덜 잘 놀지 않습니다. 어른들이 아이를 가리키며 너는 몇 살이고 너는 몇 살이라 틀을 가르니, 아이들도 이 틀에 갇힐 뿐입니다. 나이가 같은 또래라도 아이들마다 키와 몸이 다 달라요. 아이들은 나이로 사귀거나 어울릴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할매와 할배하고도 동무가 됩니다. 할매와 할배는 아이하고도 동무가 됩니다. 서로 나이를 살피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로 마음을 살피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어른이 되는 동안 학교를 차근차근 다니고 신분과 재산과 학력을 이럭저럭 거느린 사람들은 이웃이나 동무를 숫자로 따지곤 합니다. 회사 직위를 따지고, 연봉과 은행계좌를 따지며, 대학교 학번이나 주민등록 숫자를 따집니다.
숲으로 가 보셔요. 숲에서 자라는 나무는 서로를 나이로 따지지 않습니다. 봄부터 피고 지는 들꽃을 보셔요. 먼저 피는 들꽃이 언니나 오빠가 아닙니다. 다 같은 나무요 풀이며 꽃입니다.
아이들은 또래를 만나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동무’를 만나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동무는 어버이가 될 수 있습니다. 할매와 할배가 될 수 있습니다. 이웃 아재나 아지매가 될 수 있어요.
즐겁게 살아갈 적에 즐겁습니다. 사랑스레 노래할 적에 사랑스럽습니다. 아이들과 즐겁게 놀고, 아이들이랑 사랑스레 노래해요. 우리가 읽는 책은 삶을 즐겁게 밝히고 싶어서 읽는 책이에요. 우리가 보는 영화는 삶을 사랑스레 노래하고 싶어서 보는 영화예요. 남들이 많이 읽는대서 내가 그 책을 읽을 까닭이 없어요. 남들이 많이 보았으니 나도 그 영화를 보아야 할 까닭이 없어요.
즐거울 삶을 꿈꾸며 책을 읽습니다. 사랑스러울 노래를 바라며 영화를 봅니다. 삶을 아름답게 짓고자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갑니다. 4347.2.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