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정금희 지음 / 류가헌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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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60

 


이곳에 있는 티벳을 읽는다
― BEYOND
 정금희 사진
 류가헌 펴냄, 2011.8.25.

 


  1968년에 부산에서 태어나 부경대학교를 다녔고, 대학에서 디자인과 색채 이론을 강의하다가 홍익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으며 사진을 익혔다고 하는 정금희 님이 내놓은 사진책 《BEYOND》(류가헌)는 2011년 여름에 태어났습니다. 지난 2011년 여름에 이 사진책을 만났으나 2014년 2월까지 책상맡에 두었습니다. 아무래도 이 사진책을 읽어내기까지는 정금희 님이 한국을 떠나 티벳을 마실하며 누린 나날처럼 시골집 책상맡에서 조용히 삭혀야 했다고 느낍니다.


  어느 사진은 처음 사진책을 장만하던 날 즐겁게 읽어내면서 활짝 웃는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습니다. 어느 사진은 《BEYOND》라는 사진책처럼 여러 해 책상맡에 두고는 오래오래 다시 들추고 되읽으면서 가만히 노래하는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습니다. 사진읽기는 하루아침에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진읽기를 하자면 여러 해가 걸려야만 하지는 않습니다. 사진마다 다르고 사진책마다 다릅니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결과 무늬가 다르며, 사람마다 바라보는 빛깔과 노래가 다릅니다.


  누군가는 서울과 부산 같은 커다란 도시에서도 참새와 박새와 딱새와 콩새가 날갯짓하는 조그마한 몸놀림과 노래를 들여다봅니다. 누군가는 시끄러운 자동차 물결 사이에서도 도시비둘기가 퍼덕퍼덕 날아오르다가 톡톡톡 거닐면서 먹이를 쪼는 소리를 눈여겨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사람 발길 없는 깊고 조용한 네팔 멧등성이에서 외로움이나 쓸쓸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드넓은 하늘과 벌판이 드러나는 티벳 길자락에서 넋을 잃기도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서울과 부산 같은 도시 한복판에 서면서도 티넷사람 넋이 되곤 합니다. 누군가는 네팔이나 티벳 같은 나라에서 시골이나 숲이나 멧자락을 거닐면서도 맥주 한 잔과 세겹살 한 점과 텔레비전 연속극을 떠올리곤 합니다.


  이곳에서 살아간다고 해서 이곳을 잘 알지 않습니다.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파트라는 삶터를 얼마나 잘 읽거나 알거나 헤아릴까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흙과 들과 숲을 얼마나 잘 살피거나 느끼거나 받아들일까요.

 


  교사가 되어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다 다른 아이들을 얼마나 잘 살피거나 헤아리면서 교과서 진도를 나갈까요. 초·중·고등학교 교실을 그득 채운 모든 아이가 대학생이 될 수 없으며, 모든 아이가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될 수 없는데, 교과서 진도는 누구한테 맞추는 지식이 될는지요. 교사 자리에 서는 이들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심거나 가르치는 셈일까요.


  사진책 《BEYOND》를 선보인 정금희 님은 “그저 말없이 바람이 전하는 소식을 담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길을 따라 다양하게 모여듭니다.” 하고 말합니다. “나그네의 발자국으로 길 위에 또 다른 길을 잇고 다른 길을 이어 낮선 곳에서 바람의 말을 풀어놓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빛을 읽어 빛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길을 읽어 길을 사진으로 옮깁니다. 눈망울을 읽어 눈망울을 사진으로 엮습니다. 꿈을 읽어 꿈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어떤 사람은 골목동네에서 ‘폐허’를 읽기에 골목동네를 ‘폐허’로 주제를 잡아 사진을 찍습니다. 어떤 사람은 골목동네에서 ‘사랑’을 읽기에 골목동네를 ‘사랑’으로 주제를 잡아 사진을 찍습니다. 똑같은 골목동네이지만,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사진은 사뭇 다릅니다. 나그네인 사진가가 돌아다니지 않아도 골목사람이 오순도순 모여서 살아가는 터전인 골목동네이기에, 굳이 누군가 사진으로 찍어 주지 않아도 언제나 이야기가 흐릅니다. 다시 말하자면, 정금희 님이 티벳으로 사진마실을 가지 않았어도 티벳 이야기는 티벳에서나 지구별 어디에서나 살그마니 흐릅니다. 누군가 티벳으로 사진기를 들고 찾아가야 티벳 이야기를 지구별 곳곳에서 누릴 수 있지 않습니다. 티벳 이야기가 흐르자면, 스스로 티벳사람이 되면 됩니다. 티벳 이야기를 나누자면, 살그마니 티벳땅 흙 한 줌이 되면 됩니다.

 


  나그네는 언제나 나그네요, 동네사람은 언제나 동네사람입니다. 마음이 숲과 같은 사람은 언제나 숲입니다. 마음이 바다와 같은 사람은 언제나 바다입니다. 곧, 마음이 티벳땅 흙 한 줌과 같다면 언제 어디에서나 티벳을 노래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티벳땅을 밟고 서니까 티벳을 찍지 않아요. 마음이 티벳일 적에 티벳을 찍습니다.


  부산땅에 서야 부산을 찍지 않습니다. 서울로 찾아가야 서울을 찍지 않습니다. 강원도에서도 부산을 찍을 수 있고, 제주섬에서도 서울을 찍을 수 있습니다. 어느 자리에 서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사진이 아닙니다. 어떠한 사랑을 가슴에 담으며 살아가느냐에 따라 거듭나는 사진입니다. 어떠한 꿈을 마음에 실으며 사랑하느냐에 따라 태어날 수 있는 사진입니다.


  사람들은 국경을 나누고 국적을 가르지만, 새는 국경도 국적도 없이 훨훨 날아다닙니다. 사람들은 여권을 내밀고 주민등록번호를 받지만, 바람은 여권도 주민등록번호도 없이 지구별을 골골샅샅 누빕니다. 서로 예쁜 사람이기에 나그네도 동네사람도 아닌 살가운 이웃입니다. 4347.2.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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