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 35. 두 아이
눈빛
우리 집 두 아이가 바라보는 눈빛이 다릅니다. 두 아이는 서로 다른 숨결이니, 두 아이로서는 어느 한 가지를 바라볼 적에 저마다
다르기 마련입니다. 우리 형과 나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태어난 두 사람이지만, 우리 형과 내가 바라보는 눈빛이
다릅니다. 그러면, 쌍둥이로 태어난 두 사람은 어떻게 바라볼까요. 둘은 서로 똑같이 바라볼까요, 아니면 둘도 둘 나름대로 다르게
바라볼까요.
얼굴이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목소리가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새로 나고 죽는 사람 사이에서도 똑같은 사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모두 다른 숨결입니다. 사람뿐 아니라 개와 고양이도 모두 다른 숨결입니다. 말과 소도 모두 다른 목숨입니다. 잠자리와
메뚜기도, 개구리와 달팽이도 모두 다른 목숨입니다. 똑같다고 할 목숨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다른 사람이 살아가는 지구별입니다. 다 다른 사람인 만큼 다 다른 눈빛을 밝힙니다. 다 다른 눈빛을 밝히기에 다 다른 사진을
빚습니다. 똑같은 자리에 서며 사진 한 장 찍더라도, 다 다른 삶에 비추어 다 다른 넋이기에, 다 다른 이야기를 담은 사진을 빚어요.
다만, 표절이나 도용을 할 적에는 ‘거의 똑같다’ 싶도록 베낍니다. 스스로 삶을 헤아려서 찍는 사진이라면 ‘똑같은’ 모습이
태어날 수 없을 뿐 아니라, 표절도 도용도 될 수 없어요. 그러나, 스스로 삶을 헤아리지 않는다면 표절이나 도용으로 흐릅니다. 스승이나
동무한테서 배워 즐겁게 찍을 적에는 찬찬히 거듭나는 사진이지만, 남이 일군 아름다운 빛을 가로채거나 훔치려는 마음일 적에는 ‘거의 똑같다’ 싶은
모습이 드러나면서, 이러한 사진에는 아무런 이야기가 깃들지 못합니다.
다 다른 눈빛으로 바라본다고 할 적에는 다 다른 이야기가 숨쉰다는 뜻입니다. 다 다른 눈빛이란 다 다른 삶이요 다 다른
사랑입니다. 좋거나 나쁘다는 틀로서 ‘다른 사랑’이 아닙니다. 저마다 아름답게 빛난다는 뜻에서 ‘다른 사랑’입니다.
개 한 마리를 놓고, 우리 집 일곱 살 큰아이가 마주하는 모습하고 네 살 작은아이가 마주하는 모습이 다릅니다. 두 아이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마음으로 품습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가 서로서로 마음밭에 드리웁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언제나 ‘내 사진’을 찍습니다. 내 사진을 찍는다고 할 적에는 ‘내 삶’을 찍는다는 소리입니다. ‘내
사랑’을 찍고 ‘내 꿈’을 찍으며 ‘내 빛’을 찍어서 ‘내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소리예요. 4347.2.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