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회 아재는 왜 ‘판검사’ 못 되었는가
오늘 낮 읍내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고흥 농민회 아재를 여럿 만났다. 농민회 아재들은 우리 아이를 보고는 “유치원에 안 가재라?” 하고 묻고는, “유치원에 가야 규율에 길들면서 판검사가 될 텐데라.” 하고 덧붙인다. 그러고는 “우리도 어릴 적에 규율에 길들지 않고 살아서 이렇게 판검사가 안 되었제라.” 하고 마무리짓는다.
우스갯소리로 들려준 이야기인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참 그렇다.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 규율과 규칙에 길들거나 갇힌 아이들은 시험성적이 잘 나온다. 시험성적이 잘 나와 이름값 높은 대학교에 들어가면, 돈값 높은 일터로 가곤 한다. 판사도 되고 검사도 되며 정치꾼이나 대통령이 되기도 한다.
규율이나 규칙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신나게 뛰놀던 아이들 가운데에도 학교에서 시험성적 잘 나오는 아이가 있을 테고, 이름값 높은 대학교에 가는 아이가 있을 테며, 판사나 검사가 되는 아이가 있으리라. 그렇지만 아주 드물다고 느낀다. 신나게 놀며 자라던 아이가 재미없게 판검사 되는 길을 걸으리라고는 느끼지 않는다. 다만, 신나게 놀며 자라던 아이가 판검사가 된다면, 판검사 일을 신나게 놀듯이 하겠지.
유치원에 다니지 않는 우리 집 아이들은 아주 개구쟁이로 논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뛰고 달리며 노래하고 소리지른다. 가만히 앉지 않는다. 이 아이들은 유치원은커녕 학교에도 갈 수 없다. 뛰노는 즐거움을 알기 때문에, 책상맡에 꼼짝 않고 앉아서 한 시간 두 시간 …… 이렇게 보내지 못한다. 어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아이들을 하루 내내 뛰놀도록 하는가. 어느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가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도록 가르치는가.
나는 우리 집 아이들이 판검사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우리 집 아이들이 국회의원이나 군수나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우리 집 아이들이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 집 아이들은 스스로 아름다운 빛이 되고 고운 사랑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 집 아이들은 저마다 맑은 꿈과 밝은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
규율을 만든 사람은 사람들을 가두려 한다. 규칙을 만든 사람은 사람들을 얽매려 한다. 사랑을 좋아하는 사람은 서로를 아낀다. 꿈을 좋아하는 사람은 서로 어깨동무를 한다. 우리 아이들뿐 아니라 이웃 모든 아이들이 사랑과 꿈을 바라보면서 까르르 웃고 뛰놀 수 있기를 빈다. 온누리 아이들 모두 ‘회사원’이나 ‘공무원’ 아닌, 착하고 참다우면서 아름다운 숨결로 살아갈 수 있기를 빈다. 4347.2.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과 헌책방과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