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가 가르쳐 준 것
기무라 아키노리 지음, 최성현 옮김 / 김영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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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책 읽기 58

 


‘능금’이 가르쳐 준 풀내음
― 사과가 가르쳐 준 것
 기무라 아키노리 글
 최성현 옮김
 김영사 펴냄, 2010.4.16.

 


  눈이 옵니다. 지난 12월과 1월에는 눈빛이 도무지 깃들지 않더니, 2월로 접어들어 엿새째 되는 오늘 눈이 옵니다. 고흥 위쪽 벌교만 하더라도 눈이 잦았겠지요. 벌교 위쪽 구례나 곡성이나 임실 또한 눈이 퍽 많았겠지요. 고흥과 이웃하는 장흥이나 통영이나 해남이나 강진은 어떠했을까 궁금합니다. 이곳에서도 올겨울에 눈은 거의 구경을 못하면서 포근한 나날이었을까요.


.. 그동안 줄곧 참아 준 사과나무, 사과나무를 도와준 잡초, 흙, 그리고 세상만물에 감사할 따름이다 … 사과가 열리지 않는 기간이 너무나 길었기 때문에 나는 그사이에 오이, 가지, 무, 양배추 같은 야채 농사 그리고 벼농사를 공부할 수 있었다 … 어머니는 달랐다. 잘 안 되더라도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네가 믿는 길을 가라. 그러면 된다.”고 말했다. 구시대 사람으로, 학교도 변변히 다닌 적 없는 분이 금과옥조 같은 말을 했다. “가난해도 좋으니 길가의 돌과 같이 살아라.” … 나는 사과나무 덕분에 산다. 내 삶이 어려워진 것은 다름아닌 사과나무가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과나무를 힘들게 한 사람은 다른 누가 아닌 바로 나다 ..  (7, 41, 52쪽)


  겨울이 포근한 고흥에 내리는 눈은 따뜻합니다. 춥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이 겨울을 그냥 보내기에는 서운하다 여기는 눈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소록소록 쌓이는 눈을 한 해에 한 차례 볼까 말까 한데, 이날이 바로 오늘이 됩니다.


  도시에서도 눈이 내릴까요. 도시에서는 이 눈을 성가시게 여겨 새벽부터 눈을 치우랴 부산할까요. 골목에도 한길에도 눈을 그대로 두면서 눈빛 하얗게 누리려는 사람은 없을까요. 이렇게 눈이 오는 날에는 자동차는 모두 멈춘 채 두 다리로 천천히 걸어서 일터와 학교를 다니자고 생각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자동차를 멈춰요. 다 함께 자동차를 멈추고 눈을 맞이해요. 눈이 하늘거리며 내리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요. 눈이 천천히 흩날리면서 쌓이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요. 내 머리카락에 눈이 쌓이고, 내 어깨에 눈이 덮이는 느낌을 새삼스레 헤아려요.


  2월에 내리는 눈은 막 새싹 틔우는 쑥에도 갈퀴덩굴에도 쌓입니다. 마당도 지붕도 하얗습니다. 마을 앞 큰길도 하얗습니다. 이 시골에서는 눈이 온대서 큰길을 치울 만한 일꾼이나 젊은이가 없습니다. 짐차나 자가용을 모는 마을사람이 없으니, 굳이 큰길 눈을 치울 까닭이 없기도 합니다. 우리 집처럼 아이들 있으면, 더더구나 눈을 치울 까닭이 없어요. 이 눈은 온통 아이들 것입니다. 이 눈은 모두 아이들과 흙 것입니다. 아이들과 흙과 풀과 나무가 즐겁게 맞이하는 눈입니다.


.. 나는 자연재배, 곧 자연의 힘을 빌려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 전에는 농약이 무서워 얼굴을 가리고 일했지만, 농약을 쓰지 않는 지금, 우리 가족은 웃으면서 즐겁게 일을 한다 … 나는 어려서부터 우리 집을 비롯해 주변 농가에서 농약 뿌리는 모습을 보고 자랐으므로 그런 중노동을 해야 하는 농사에는 미래가 없다고 보았다 … 보통 화상을 입으면 피부가 허옇게 일어나며 물집이 생기지만, 농약 화상의 경우 피부가 벗겨지며 속살이 벌겋게 드러난다 … (다이홀탄은) 1964년에 허가되어 1989년 12월에 금지되었으니, 농가에서는 30년 가까운 세월을 관청의 지도로 이 농약을 사용하며 고통받은 것이다 … 무엇 하나 무의미한 것이 없었다. 참나무는 저 혼자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주변의 자연 환경 덕분에, 무수한 생명 덕분에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  (9, 23∼24, 31∼32, 67쪽)


  예부터 겨울에 눈이 많이 와야 새봄부터 흙빛이 좋다고 했습니다. 눈이 소복소복 쌓인 채 겨울이 지나가야 흙이 한결 싱그러이 살아난다고 했습니다. 눈이 쌓인 뒤 새봄에 흐물흐물 녹아 땅으로 스며들면, 이 눈이 풀씨앗 싹트게 하는 새로운 힘이 됩니다.


  눈은 나무마다 앉아 나무에 깃든 벌레 알집에도 쌓입니다. 나뭇가지를 타고 오르다가 시들어 죽은 덩굴풀에도 눈이 쌓입니다. 나무는 눈을 뒤집어써도 씩씩하게 살지만, 덩굴풀은 찬눈을 못 견딜 테지요. 매화나무 겨울눈도 이 눈을 맞고는 깜짝 놀라 조금 더 폭 쉬고 나서 깨어나야겠다고 생각할 테지요.


  마당에 내려서서 마을을 한 바퀴 빙 둘러봅니다. 마을 어귀 감나무에 걸린 비닐에도 눈이 덮입니다. 이제는 어느 시골에서나 밭일을 흙일 아닌 비닐일로 합니다. 마늘을 심건 고추를 심건 뭐를 심건 으레 비닐을 덮습니다. 이 비닐이 가을 지나 겨울 되어 바람 따라 휘휘 날립니다. 한겨울에 나무마다 뜬금없이 비닐꽃을 피웁니다.


  돌이켜보면, 시골에 있던 젊은이와 어린이를 모조리 도시로 끌어냈으니, 시골에 남은 할매와 할배는 비닐을 쓸밖에 없어요. 일손이 모자라니 비닐을 쓰고, 농약을 쓰며, 비료를 쓸밖에 없어요. 더구나, 젊은이와 어린이 몽땅 도시로 빠져나간 만큼, 예전에는 나물로 삼아 먹던 풀을 오늘날에는 잡풀로 삼아 죄 베어 없애거나 태워 없애거나 농약으로 죽여 없애야 한다고 여깁니다. 도시로 떠난 젊은이와 어린이한테 교육비를 대느라 수확량을 늘려야 할 테니, 비닐과 농약과 비료로 더 많이 거두어 더 많이 팔아치운 뒤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 나무줄기에 낳아 놓은 해충의 알덩어리에서 17센티미터가량 떨어진 곳에는 반드시 오렌지색 무당벌레 알이 있었다. 익충이 해충의 부화를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 해충과 익충이 공존하며 어느 한쪽도 모두 사라지는 법이 없다 … 확대경으로 벌레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잎말이나방은 눈이 둥근 것이 의외로 귀엽다. 그 큰 눈으로 나를 가만히 쳐다본다 … 하루 내내 벌레를 지켜보고 있으면 정말 흥미롭다. 잎을 먹어 가면서 저렇게 바쁘게 움직이는데 언제 어디로 호흡하는지 궁금해진다. 잘 보면 쉬지 않고 먹어대는 벌레의 옆구리 아래쪽이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다 … 곤충학자들도 거기까지는 몰랐다고 한다. 농부도 모른다. 그저 농약만 치면 되므로 벌레를 알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 벌레에게는 내 과수원 네 과수원이 따로 없고, 그들은 오로지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날아갈 뿐이다. 누구보다 벌레는 자기 보금자리를 잘 알아챈다. 우리 과수원은 벌레들에게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  (46∼47, 48, 49쪽)


  농약과 비료와 비닐을 써서 곡식이나 푸성귀나 열매를 거두면, 그만큼 더 거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만큼 농약값과 비료값과 비닐값을 들여야 하고, 기계값까지 들여야 합니다. 더 거둔다면 더 거두는 만큼 돈을 많이 씁니다. 그리고, 흙이 죽습니다. 이리하여 흙을 다시 살린다며 이것저것 논밭에 뿌려야 하거나 아예 새 흙을 사다가 부어야 합니다.


  그러면, ‘돈’으로만 칠 적에도, 농약과 비료와 비닐을 쓰는 일은 시골 흙일꾼한테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아니, 도움이 조금이라도 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농약과 비료와 비닐을 쓰는 동안, 또 농기계를 쓰는 동안, 시골 흙일꾼은 품은 품대로 더 들이면서 주머니에 남는 돈은 오히려 줄어들지 않느냐 싶습니다. 이러는 사이 농협과 농기계 회사와 중앙정부는 푼푼이 돈을 벌겠지요.


  농약과 비료를 쓰는 동안 시골 흙일꾼은 몸이 다칩니다. 안 생길 병이 생깁니다. 농약도 비료도 비닐도 안 썼다면 병원 갈 일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었을 텐데, 농약과 비료와 비닐을 쓰는 동안 몸이 고단하면서 자꾸 병원 갈 일이 생깁니다. 애써 ‘더 거두어 돈을 더 만졌다’ 하지만, 이 돈은 고스란히 병원으로 갑니다.


  과학자나 전문가나 학자나 농협 직원 가운데, 농약과 비료와 비닐과 농기계를 쓰면서 들이는 돈과 버는 돈, 농약과 비료와 비닐과 농기계를 안 쓰면서 아끼는 돈과 지키는 돈, 이러한 돈흐름을 낱낱이 파헤치거나 밝힌 사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통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농약을 안 쓰면 벌레가 꼬일까요. 농약을 쓰니 벌레가 더 꼬이지 않을까요. 농약으로 벌레를 잡는다는데, 농약 때문에 해충뿐 아니라 익충을 모두 죽이는 꼴인 한편, ‘해충을 먹고 살아가는 익충’으로서는 ‘먹이를 삼을 해충이 다 사라져’서, 이제 ‘익충이라는 벌레가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를 갉아먹는 일’이 생기지는 않는가요.


.. 어느 날엔 논둑에 앉아 메뚜기가 벼에 어느 정도 해를 입히는지 지켜본 일도 있다 … 어느 정도 해를 입히느냐면, 한 이삭당 100∼130개의 나락이 열리는데 그중 많아야 다섯 알 정도에 피해를 줄 뿐이다. 그런데도 헬리콥터를 써서 농약을 살포한다. 그 탓에 해충인 노린재나 이네카메무시가가 생기고, 익충인 거미가 모조리 사라지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 농약 한 방울 안 준 이런 산속에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잎이 무성할까. 왜 벌레와 병은 이 나뭇잎을 해하지 않는 걸까? 그런 의문에 잠겨 나는 나무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주위는 향기로운 흙냄새로 가득했고, 어깨까지 자란 풀을 헤치고 보니 나무 주변의 땅은 푹신푹신한 데다 촉촉했다 … 나고 자라는 대로 내버려둔 잡초는 건강하기 이를 데 없었고, 그 아래 땅은 발이 빠질 정도로 푹신푹신했다 ..  (50, 65, 66쪽)


  기무라 아키노리 님이 쓴 《사과가 가르쳐 준 것》(김영사,2010)이라는 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무라 아키노리 님 삶을 다룬 영화 〈기적의 사과〉를 아이들과 함께 다섯 차례 봅니다. 먼저 혼자서 한 번 영화를 보고, 아이들과 함께 네 차례 봅니다.


  기무라 아키노리 님은 능금밭을 일구는 시골집에서 태어나 살지만, 흙 만지고 살기 싫어 도시로 떠납니다. 그렇지만 도시에서 몇 해 지내지 못하고 시골로 돌아옵니다. 기무라 아키노리 님은 도시에서 눌러앉아 살고 싶지만, 시골에 있는 어버이가 불러서 시골일을 거들러 돌아와요. 그러고는 시골마을 이웃하고 혼인을 합니다. 이제는 도시로 나갈 길이 없이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살아야 합니다.


  《사과가 가르쳐 준 것》을 쓴 기무라 아키노리 님은 시골에서 논일을 하고 밭일을 하면서, 능금밭을 돌봅니다. 능금밭에는 예전부터 농약을 엄청나게 뿌립니다. 흙이 키우거나 살찌우는 능금이 아닌 농약과 비료가 키우는 능금입니다. 농약을 뿌리면서 누구보다 기무라 아키노리 님 스스로 고달픕니다. 온몸이 간지럽고 붓습니다. 혼인해서 함께 살아가는 곁님은 기무라 아키노리 님보다 더 고달프게 농약에 시달립니다. 온몸이 부을 뿐 아니라 몸져눕기까지 합니다. 도시사람은 능금밭에서 능금에 농약을 얼마나 많이 자주 치는지 모르는 채 빨간 열매만 먹겠지요. 도시사람은 능금밭에서 농약을 뿌리다가 쓰러지는 사람이 있는 줄 모르는 채 빨간 열매를 돈을 치러 사다 먹겠지요.


  기무라 아키노리 님은 두고볼 수 없어 농약을 어떻게든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농약 뿌리는 횟수를 줄입니다. 농협에서 뿌리라는 대로 뿌리지 않아도 벌레꼬임은 늘지 않고 능금도 잘 맺힙니다. 차근차근 일이 잘 되는 듯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농약을 한 방울도 안 뿌리기로 합니다. 이제껏 잘 되었듯이 이 또한 잘 되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농약을 한 방울도 안 뿌리니 벌레가 꼬이고 잎이 말라죽어요. 기무라 아키노리 님은 능금밭이 끔찍하게 바뀐 모습을 보고는 한 해 두 해 세 해 …… 깊은 수렁에 빠져듭니다.


.. 오늘날의 농업은 관찰하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 …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자연에서 벗어난 인간의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자연 앞에 좀더 겸허해져야 한다 … 농업이 인간의 생명만이 아니라 마음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통감했다 … 사람이 재배한 것은 썩어 간다. 자연이 기른 것은 썩지 않고, 시들어 간다 … 어떻게 하면 벼기 기뻐할까. 어떻게 하면 논이 힘을 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라. 만약 내가 벼나 흙이라면 어떻게 할까 하고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좋다 … 농부가 재배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강이 깨끗해질 수가 없다. 강이 깨끗해지지 않는 한 바다도 깨끗해지지 않는다 … 옛날에는 일본의 길가에서도 살갈퀴가 자랐지만, 제초제가 등장한 뒤로 사라져 가고 있다 … 나는 해충이,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되는 유해물질을 대신 먹어 주는 것이라고 본다. 해충은 비료, 농약을 사용하는 작물, 특히 미숙 퇴비를 넣은 작물에 많이 모인다 ..  (81, 93, 94, 98, 105, 133, 141, 184쪽)


  도무지 능금밭이 안 되겠구나 싶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생각하면서 숲속으로 들어간 기무라 아키노리 님입니다. 줄에 목을 걸어 죽으려 하는데 나뭇가지에 걸치려던 줄이 안 걸립니다. 능금밭에 농약을 안 치는 ‘바보’가 어디 있느냐는 손가락질을 받던 이녁은 죽으려고 하는 마당에서까지 줄 하나 제대로 못 거는 ‘바보’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숲속에서, 산속에서 홀로 씩씩하게 자라는 나무 한 그루를 봅니다.


  숲속에서는 농약도 비료도 없습니다. 비닐을 덮어씌우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숲속 나무는 벌레가 꼬이지 않아요. 이런 병이나 저런 병을 걱정하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왜 숲속 나무는 싱그럽고 씩씩하며 아름답게 자랄까요? 왜 숲속 나무는 맛난 열매를 넉넉히 베풀어 숲짐승한테 좋은 먹이를 베풀어 줄까요?


  나무는 혼자 살지 못합니다. 나무 둘레에 풀이 한 포기도 없으면 나무는 말라죽습니다. 풀이 자라는 흙에서 나무가 자랍니다. 나무가 자라는 둘레에는 풀이 돋습니다. 풀과 나무는 늘 함께 살아갑니다. 예부터 한겨레는 ‘푸나무’라는 낱말을 썼어요. 풀과 나무를 아울러 ‘푸나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도시 사회에서는 ‘식물’이라는 한자말을 쓰지요. ‘식물’만 파고든다면, 뿌리를 캐지 못합니다. ‘식물’만 생각하거나 ‘식물학’이나 ‘생태학’이나 ‘생명공학’만 살펴서는, 풀과 나무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풀과 나무를, 곧 ‘푸나무’를 찬찬히 바라보면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 비료, 농약, 제초제 덕분에 일본 농업은 중노동에서 해방되었다. 하지만 중노동에서 해방되었을지는 몰라도 후계자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 젊은이들이 농사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까지의 농사 방식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것뿐이다 … 불필요한 기술을 쓰지 않고 그냥 지켜보는 자세가 중요한데, 그게 고학력자에게는 잘 안 되는 모양입니다 … 자연이란 사람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균형이 잡혀 있다. 그러므로 산은 몇 천 년이 지나도 늘 건강한 것이다. 100년 이상 살고 있는 나무는 사람이 손을 대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살고 있는 것이다 … 옛날에는 벼과인 보리와 콩과인 땅콩을 반드시 심고, 그 뒤에 야채를 심었다 ..  (134, 136, 151, 159, 171쪽)


  쓸모없는 풀은 한 가지조차 없습니다. 우리 겨레는 예부터 모든 풀을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 알맞게 썼습니다. 시골사람은 고장마다 풀한테 다 다르게 이름을 붙이면서 아꼈습니다. 표준말로는 한 가지이지만, 고장과 고을과 마을마다 풀이름이 모두 달라요. 모두들 풀을 밥으로뿐 아니라 약으로도 썼습니다. 풀은 풀밥이면서 풀약입니다. 풀내음을 맡으면서 목숨을 건사하고, 풀빛을 먹으면서 숨결을 지켰습니다.


  풀은 흙을 살리고, 흙은 풀을 살립니다. 흙을 살리는 풀은 나무를 살립니다. 풀이 흙을 살리기에, 좋은 흙에서 나무가 살아갈 수 있어요. 풀을 살리는 흙은 나무를 살립니다. 좋은 흙에서 풀이 돋을 수 있으면, 이 좋은 흙에서는 나무도 쑥쑥 오를 수 있어요.


  논만 있어서는 시골이 아름답지 않습니다. 밭이 함께 있어야 시골이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논밭만으로는 시골이 아름답지 않습니다. 사람 손길이 닿지 않는 숲이 논밭보다 훨씬 넓게 드리우고 멧골이 이루어져야 시골이 아름답습니다.


  기무라 아키노리 님은 죽음 문턱에 이르러서야 여태 이녁이 얼마나 잘못했는가를 깨달았습니다. 농약을 안 치고 비료를 안 뿌려서 될 일이 아니었어요. 능금밭에서 자라는 풀을 함부로 베면 안 될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다른 모든 능금밭은 ‘풀베기’를 해서 흙을 죽이고는 농약과 비료로 겨우 능금나무를 살렸을 뿐이었습니다. 기무라 아키노리 님은 농약과 비료를 안 쓰려면 풀을 베면 안 되었어요. 그리고, 풀을 안 베고 능금밭을 풀밭으로 만들어 숲처럼 가꾸면서 콩을 심으면서 흙심을 되살립니다. 흙심을 되살리고 한 해 두 해 흐르니, 시나브로 숲과 비슷한 흙이 되고, 나중에는 숲과 같은 흙이 되어 능금나무에 꽃이 피고 멋진 열매가 맺습니다.


.. 무를 뽑아 보면 나선 모양의 자취가 남아 있다. 무는 수직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볼트처럼 돌아가면서 자란다. 그러므로 무를 뽑을 때는 거꾸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돌려가면서 뽑아야 한다. 그러면 무가 쉽게 뽑힌다. 당근도 민들레도 마찬가지다. 뿌리와 잎사귀가 함께 움직인다. 그러면서 햇살을 구석구석 받는다 … 모든 작물이 오이와 같다고 본다. 부드러운 말을 하면 예쁜 꽃이 필 뿐 아니라 오래 핀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 농부는 자신이 식량생산을 위해 사용하는 자재가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늘 깨어 있는 눈으로 봐야 한다 ..  (186, 188, 197쪽)


  오늘날 이 나라 시골을 돌아보면, 풀은 풀대로 몽땅 베거나 태우거나 농약을 뿌려 죽입니다. 그러니, 농약과 비료가 없으면 ‘농사가 안 됩’니다. 풀을 나물로 삼을 줄 알아야 농약과 비료를 안 써도 됩니다. 풀을 나물로 삼지 않고, 또 풀을 나무와 벗삼는 이웃으로 여기지 못한다면, 이 나라 시골 어디에서나 농약과 비료를 끝도 없이 써야 합니다.


  시골빛이란 풀빛인 줄 깨닫는다면 비로소 농약과 비료에서 손을 뗄 수 있습니다. 시골내음이란 풀내임은 줄 알아차린다면 바야흐로 농약과 비료에서 풀려나, 씩씩하고 튼튼하며 푸른 시골살림 가꿀 수 있습니다.


  풀은 ‘적’이 아닙니다. 풀은 ‘몹쓸 것’이 아닙니다. 풀은 바로 우리 숨결이요 목숨이며 사랑입니다. 《사과가 가르쳐 준 것》이라는 책은 능금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흙을 살리고 나무를 돌보는 풀을 이야기합니다. 《사과가 가르쳐 준 것》이라는 책은 기무라 아키노리 님이 ‘능금나무와 함께 살아가며 비로소 배운 풀’이 무엇인가를 들려줍니다. 4347.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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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2-06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광일의 '기적의 채소'와 함께 읽을 만한 책이지요...

숲노래 2014-02-07 00:25   좋아요 0 | URL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 분이 있군요.
농학박사 송광일 님이라...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는
시골에서 흙 만지는 사람이 이러한 책을 쓸 때보다는
아무래도 '박사'나 '연구자'가 이러한 책을 써야
받아들여 주겠지요.

다시 생각해 보면, 농학을 하는 연구자 가운데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분이 있기도 해야
농협이나 중앙정부 정책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겠구나 싶네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