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 임석재 (‘골목마실’ 사진에 붙이는 말)

 


  《서울, 골목길 풍경》(2006)이라는 책을 내놓은 건축가 임석재 님이 있다. 나는 이 책이 ‘소재는 골목길’이지만, 그저 ‘건축 이야기’만 풀어놓는다고 느낀다. 골목도, 골목빛도 보여주지 못하는 책이라고 느낀다. 건축을 읽으려고 골목 몇 군데를 돌아보았을 뿐, 골목이 이루어지는 흐름과 까닭과 삶과 사랑은 한 줄조차 못 담았다고 느낀다.


  왜 그럴까? 안타깝게도, 이녁은 골목을 거닐면서 ‘사람내음’을 맡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골목동네를 이룬 사람들 냄새, 골목동네에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사람들 냄새, 골목동네에서 어깨를 맞대며 작은 집이 촘촘히 이어진 그곳에서 사랑하는 냄새, 들을 맡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반드시 골목에서 나고 자라야만 골목 이야기를 잘 읽거나 제대로 읽는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골목에서 나고 자랐어도 ‘하루 빨리 골목을 떠나고픈 사람’한테는 골목빛이 안 보인다. 조용히 삶을 즐기는 사람일 때에는 골목동네에서 살지 않아도 ‘골목마실을 하는 동안 골목빛을 느낀’다.


  2005년에 숨을 거둔 김기찬 님이 있다. 나는 김기찬 님 사진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김기찬 님은 ‘나그네’였기 때문이다. 언제나 골목동네를 마실하면서 살갑고 사랑스러운 사진을 찍었으나, ‘나그네’라는 옷을 벗지 못하셨다. 나그네 허울을 벗었으면 얼마나 예뻤을까. 사진잔치를 골목동네에서 했다면, 골목동네에 조그마한 달삯방을 얻어서 한 주에 하루쯤이라도 작은 달삯방에서 먹고자면서 골목숨을 느껴 보셨으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날마다 ‘출근 도장’을 찍듯이 찾아와서 나들이를 하는 동안 마주하는 즐겁고 재미난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골목집에서 먹고자면서 새벽에 느끼고 아침에 맞이하며 낮에 복닥이면서 저녁에 어스름과 함께 찾아들다가 밤이 되어 그윽하게 서리는 빛이 있다. 이러한 빛은 골목동네 사람으로서, ‘동네 주민’으로서 살 때에 비로소 맛본다. 김기찬 님 골목 사진에는 바로 이 ‘골목맛’이 없다.


  그렇지만, 김기찬 님은 ‘출퇴근 도장’을 찍듯이 아주 자주 골목마실을 하셨다. 비록 동네 주민은 못 되었지만 ‘나그네’로서 사뿐사뿐 발걸음을 옮겼다. 나그네답게 동네 주민과 따사롭게 만나고, 홀가분하게 어울리면서, 골목동네 사람들 속내와 속살과 속말을 사진으로 푼더분하게 담았다.


  이와 달리 임석재 님은 나그네도 아니고 주민도 아니었다. 그저 ‘구경꾼’으로 골목을 드나들었다. 이 눈길과 발걸음은 얼마나 다른가? 왜 학자는 하나같이 구경꾼이 되기만 할까? 강 건너에서 구경하는 불이란 얼마나 잘 바라보면서 ‘기록’하는 학문이 되는가?


  학자들이 ‘강 건너 불구경 학문’에 머물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학자들이 강 너머로 헤엄쳐서 건넌 뒤, 불난 동네에서 불을 끄려고 하든, 불난 사이사이를 거닐든 하기를 바란다. 사진 한 장 덜 찍어도 된다. 사진 한 장 더 찍어야 하지 않는다. 스스로 동네 주민 되어 동네에 녹아들면, 사진 한 장을 덜 찍더라도, 이녁이 담는 사진마다 아름다운 빛이 스민다. 이때에 시나브로 골목빛이 태어난다.


  ‘인간미 없는 학문’은 재미없다. ‘인간미 없는 학문’으로 골목을 바라보아 기록했다면, 이런 기록은 학문이 될는지 모르나, 골목동네 사람들한테 스며들거나 다가설 수 없다.


  얼마쯤 지내다가 떠날 구경꾼으로서 바라보는 골목 모습이란 무슨 멋이 있겠는가. 몇 차례 드나들다가 더는 찾아오지 않을 구경꾼으로서 지켜보는 골목 모습에 얼마나 잘 속속들이 찬찬히 살가이 따사롭게 바라본 이야기가 있겠는가.


  김기찬 님은 언제나 나그네였지만, 아예 작정하고 나선 나그네였기에, ‘아름다운 인간미’를 잃지 않고 놓지 않을 수 있었다. 이와 달리, 임석재 님은 ‘학문에 매달린 구경꾼’ 발걸음만 이은 탓에 학문은 되었을는지 모르나, 이야기는 풀어놓지 못한다.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면, 바로 이런 삶이 모인 나라가 아름다운 나라가 된다. 대통령이나 정치지도자가 잘 해야 아름다운 나라 되지 않는다.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제 삶자리에서 아름답게 살아가면, 이때에 아름다운 나라이다.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구경꾼이나 나그네 아닌 ‘마을사람’이나 ‘동네사람’으로서 제 보금자리에서 아름답게 살아가며 ‘제 보금자리 이야기’를 적바림하기를 빈다. 4347.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골목길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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