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풍선 분도그림우화 15
알베르 라모리스 지음, 이미림 옮김 / 분도출판사 / 198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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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25

 


아이한테 들려줄 사랑이란
― 빨강 풍선
 알베르 라모리스
 이미림 옮김
 분도출판사 펴냄, 1982.3.1.

 


  1956년에 34분 길이로 나온 〈Le ballon rouge〉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를 찍은 ‘알베르 라모리스(Albert Lamorisse)’ 님은 ‘빨강 풍선’ 하나와 어린이가 서로 어떻게 만나서 마음을 나누는가를 차분히 보여줍니다. 오늘날 도시 문명사회에서 ‘여느 어른’이라 하는 분들 눈길로 본다면, 학교로 가다가 가로등에 묶인 풍선 하나를 지나치지 못하는 아이를 알쏭달쏭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뭔 풍선을 갖고 버스를 타려 하느냐고 윽박지를 수 있습니다. 학교에 왜 풍선을 갖고 오느냐고 나무랄 수 있습니다. 그깟 풍선은 내다 버리라고, 풍선을 갖고 다녀 보았자 공부와 시험과 성적에는 도움이 안 된다 말할 만합니다.


  풍선이 아닌 들고양이나 딱정벌레를 건사할 적에도 이와 똑같이 여기리라 느낍니다. 돌멩이를 줍는다든지, 나뭇잎을 주울 적에도 이와 똑같이 여길는지 몰라요. 나비 한 마리를 바라보거나 개구리 한 마리를 만나 하염없이 들여다볼 적에도 똑같이 여길 수 있겠지요.


  영화 〈Le ballon rouge〉는 조그마한 사진책 《빨강 풍선》으로도 태어납니다. 영화에 나오는 몇 대목을 간추리고, 이야기를 붙여요. 영화에서는 딱히 ‘말로 이런저런 모습’을 알려주지 않지만, 조그마한 사진책에서는 틈틈이 말을 넣어서 이런 모습과 저런 모습이 어떤 이야기인가를 밝힙니다. 이를테면, “파스칼은 풍선을 가지고는 버스를 탈 수 없는 그 바보 같은 규칙 때문에 집에까지 걸어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풍선이 젖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8쪽).”와 같이 밝혀 주어요.

 

 

 

 

 

 

 


  그래요. ‘여느 어른’들은 풍선을 갖고 다니는 아이를 바보처럼 여깁니다. 온갖 규칙을 내세워 아이를 나무라기만 합니다. 아이를 규칙에 따라 길들이려고 합니다. 규칙에 맞추지 않는 아이를 다그치기만 합니다.


  “교회는 풍선이 갈 곳이 아닙니다. 모두들 풍선을 쳐다보았고, 아무도 예배에 마음을 쏟지 않았습니다. 파스칼은 교회 수위 아저씨에게 쫓겨 서둘러 밖으로 나와야 했습니다. 풍선은 어떤 일이 맞갖은 것인지 모르는 게 틀림없습니다(25쪽).” 같은 이야기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빨강 풍선은 학교에서도 받아들이지 않고, 교회에서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버스에서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빨강 풍선》에 나오는 ‘파스칼’이라는 아이 어머니도 받아들이지 않아요. 영화에서나 사진책에서나 ‘빨강 풍선’을 받아들이는 ‘여느 어른’은 아무도 없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와 사진책에 나오는 어른들은 모두 칙칙한 옷을 입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도 칙칙한 옷을 입힙니다. 시커멓거나 잿빛인 옷만 입고 입혀요. 어른들이 이룬 도시도 우중충한 빛입니다. 밝거나 환하거나 고운 빛깔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빨강 풍선’처럼 새빨갛거나 눈부신 빛깔로 옷을 차려입는다든지 집을 짓는다든지 하지 않아요.


  어쩌면, 이 영화와 사진책에 나오는 ‘빨강 풍선’은 ‘빨강’이라는 빛깔과 ‘풍선’이라는 대목에서 무언가를 넌지시 빗댄다고 할 만합니다. 빛깔이 없거나 잃은 ‘여느 어른’들 사회와 삶자리와 문화와 교육과 정치를 이야기한달 수 있어요. 빛깔을 억누르거나 짓누르는 ‘여느 어른’들 생각과 마음과 매무새를 보여준달 수 있어요.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누리는 하루를 보낼까요. 우리 어른들은 어떤 사랑을 속삭이거나 어떤 꿈을 꾸면서 삶을 즐길까요.


  어머니가 입힌 ‘잿빛 옷’을 입은 어린이 파스칼은 ‘빨강’ 풍선을 언제나 들고 다닙니다. 그러다가 ‘파랑’ 풍선을 들고 다니는 가시내를 만납니다. 살가운 동무를 만난 셈입니다. 그렇지만, 살가운 동무보다는 짓궂은 동네 아이들한테 시달려요. 동네 아이들은 파스칼을 따사로이 보듬지 않습니다. 괴롭히고 놀리고 못살게 굽니다. 이리하여, “‘날아가, 풍선아 날아가!’ 파스칼은 외쳤습니다. 그러나 풍선은 친구를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돌 하나가 풍선을 맞혔고 풍선은 터졌습니다(37쪽).” 하는 대목처럼, 빨강 풍선은 그만 뻥 하고 터지고 말아요. 어린 파스칼은 슬픔에 젖습니다.


  동네 아이들은 왜 파스칼이랑 빨강 풍선을 괴롭힐까요. 빨강 풍선을 괴롭히려는 마음을 어디에서 배웠을까요. 아이들 마음속에서 이런 모습이 자랐을까요. 둘레 어른한테서 배운 모습일까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한테 사랑과 꿈과 평화를 가르치지 않고, 지식과 규율과 규칙을 먼저 가르치거나 길들이려 하나요. 아이들은 어떤 삶을 누릴 때에 아름답고, 어른들은 어떤 삶을 일굴 때에 사랑스러울까요.

 

 

 

 

 

 

 


  사진책 《빨강 풍선》은 “파리의 모든 풍선들이 파스칼에게 내려와 빙글빙글 춤을 추며 튼튼한 줄을 꼬아서는 파스칼을 하늘로 떠오르게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파스칼은 온 세계를 구경하는 멋진 여행을 하게 된 것입니다(43쪽).” 하고 이야기하면서 마무리를 짓습니다. 조그마한 아이가 빨강 풍선을 아끼던 마음을 다른 모든 풍선들이 읽어 주었어요. 작고 여린 아이가 사랑을 담아 돌보면서 보듬은 넋을 다른 풍선들이 모두 알아보았습니다.


  아이한테 들려줄 사랑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들은 어떤 삶을 가꾸면서 어떤 사랑을 속삭일 때에 기쁘게 웃을 만한지 헤아려 봅니다. 무지개빛이 곱다고 여긴다면, 무지개가 하늘을 가로지를 수 있도록 맑으며 푸른 삶터가 되도록 해야지 싶습니다. 우리들이 입는 옷이나 우리들이 살아가는 집과 마을이 무지개빛이 되도록 할 노릇이지 싶습니다. 우리들이 읽는 책에 무지개빛이 감돌고, 우리 이웃하고 무지개빛으로 어깨동무를 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사진이라면, 무지개빛을 찍을 때에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흑백사진이든 칼라사진이든, ‘무지개빛’을 담아야지요. 무지개처럼 곱게 어우러지는 빛과 넋과 삶을 찬찬히 엮어야지요. 무지개처럼 환하면서 맑게 드리우는 빛살과 마음과 사랑을 따사로이 보여주어야지요.


  간장종이 하나에 식은밥 한 덩이 있어도 사랑을 담아 건네면 맛있게 먹는 한 끼니입니다. 온갖 반찬 푸짐하게 차렸어도 사랑을 담지 않으면 맛있게 누리지 못하는 한 끼니입니다. 알록달록하게 꾸미기에 무지개빛이 아닙니다. 무지개빛은 알록달록이 아닙니다. 무지개빛은 사랑입니다. 아이한테 물려줄 무지개빛이란 사랑빛이요, 아이와 나눌 즐거운 삶이란 사랑스러운 삶입니다. 4347.1.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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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유투브에서 찾아보면 나옵니다.

 

http://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albert+lamorisse&page=1

감독 이름을 넣으면 이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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