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피는 계절 창비아동문고 127
김명수 지음 / 창비 / 199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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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45

 


숲흙을 잊은 사람들
― 해바라기 피는 계절
 김명수 글
 박향미 그림
 창비 펴냄, 1992.9.30.

 


  숲에서 자라는 나무는 비료를 먹지 않습니다. 숲에서 씨앗으로 뿌리를 내려 자란 나무는 농약을 먹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오늘날 과일밭을 따로 키우면서 비료와 농약을 듬뿍 치지만, 모든 열매는 비료와 농약이 없이 자랐습니다. 아니, 비료와 농약을 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비료와 농약을 쓰는 까닭은 한 가지입니다. 알을 더 굵게 하고, 단맛을 더 크게 하려는 뜻입니다. 상품으로 더 비싸게 팔 뜻이기에 비료와 농약을 씁니다. 비료와 농약을 안 쓰는 까닭 또한 한 가지입니다. 몸을 살리려 하고, 흙을 지키려 하려는 뜻입니다. 즐겁게 먹고 아름답게 살아가려는 뜻이라서 비료와 농약을 안 씁니다.


  거름을 주면 한결 잘 자라지요. 그런데 거름도 굳이 따로 주어야 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가랑잎이 스스로 거름이 되고, 과일나무 둘레에서 자라다가 시들어 죽는 풀이 저절로 거름이 돼요. 풀에 깃들어 살다가 죽는 벌레들이 거름이 됩니다. 풀벌레가 누는 똥이 거름이 돼요. 풀 먹는 짐승이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며 거름이 되지요. 개미가 몰려들고 온갖 벌레가 내려앉아 주검을 흙으로 돌려줍니다. 풀짐승이 풀을 먹고 나무 둘레에서 누는 똥이 시나브로 거름이 됩니다.


  논흙과 밭흙이 제아무리 기름지거나 좋다 하더라도 숲흙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논흙과 밭흙을 온갖 비료와 농약으로 살찌우려 하더라도 숲흙처럼 싱그러우면서 숨쉬지 못합니다. 숲에서는 발이 폭폭 빠질 뿐 아니라 손가락으로 찍어도 쏙쏙 들어가지만, 논과 밭에서는 손도 발도 들어가지 않아요. 논에 물을 대어 진흙으로 만들면 발이 빠지지만 숲흙처럼 보드라우면서 싱그럽지 않습니다. 밭자락 흙이 숲흙처럼 보드라우면서 폭폭 빠지면 아마 밭일을 아무도 못하겠지요.


.. 가사미산에 도라지가 차차 없어지기 시작했다. 산에 도라지가 있다는 소문이 아파트에 퍼지고 나서 사람들이 저마다 꼬챙이를 들고 도라지를 캐러 오기 때문이다 … “할아버지, 저 지붕 위의 박을 따서 바가지로 만들어 주세요.” “바가지는 만들어 뭘 하게? 플라스틱 바가지도 많은데!” 할아버지가 순희에게 물었습니다. “그래도 갖고 싶어요. 어서 바가지를 만들어 주세요.” ..  (29, 40쪽)


  숲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책을 읽지 않습니다. 아니, 종이로 만든 책을 읽지 않습니다. 종이로 만든 책은 숲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종이로 만든 책 가운데 숲에서 살며 사랑하는 꿈을 적바림한 책을 찾기란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숲에서 살아가지 않으니 책을 읽습니다. 숲에서 살아갈 마음이 없으니 책을 읽습니다. 숲에서 살아가는 즐거움을 모르니 책을 읽습니다. 숲에서 살아가는 빛을 깨닫지 못하기에 책을 읽습니다.


  책읽기가 나쁘다고 느끼지 않아요. 그러나, 종이책만 알고 숲책을 모른다면 삶을 아름답게 가꾸지 못해요. 요리책을 펼쳐야 밥을 지을 수 있지 않듯, 책을 읽는대소 삶을 알 수 있지 않아요. 교과서를 외운대서 슬기를 깨우칠 수 있지 않듯, 책을 읽기에 슬기롭게 꿈꾸거나 사랑하지 않아요.


  계량기를 쓴다든지 식단을 짠다든지 하면서 요리책을 쓸 수 있어요. 그러면, 아이한테 밥을 차려서 내밀 적에, 숟가락에 밥알을 몇씩 올려서 몇 차례 씹도록 하고, 몇 모금씩 먹어야 한다고 숫자로 따질 수 있을까요. 아이를 씻길 적에 물 온도를 알맞게 맞추기는 해야 하지만, 물질을 몇 차례 하고 비누질을 몇 번 해야 한다고 숫자로 계량을 하거나 측량을 하거나 통계를 낼 수 있을까요. 아이한테 칭찬을 몇 마디 몇 번 며칠 해야 한다는 계량이나 측량이나 통계를 내면서 삶이 즐거울까요.


.. “이러니 나무가 살게 뭐람. 작년에 나무 심을 때 나무장수가 나무뿌리를 싸맨 것을 그냥 묻었구먼, 쯧쯧!” 아버지가 놀란 듯 혀를 찼습니다. “여보, 우리가 얼떨결에 나무를 심느라고 이런 걸 자세히 보지 못했나 봐요. 더군다나 그날 나무 값이 모자라 아이들이 조금통을 터는 둥 정신을 못 차렸던 거예요.” … 한나는 갑자기 메뚜기 생각이 났습니다. 아니, 그 방아깨비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지난번 농약을 칠 때 방아깨비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한나는 지난번 농약을 칠 때 농약 냄새 때문에 방아깨비 생각을 까마득히 잊었던 게 미안했습니다 ..  (107, 120쪽)


  시험점수가 아이 삶을 밝히지 않습니다. 성적이나 등수가 아이 꿈을 빛내지 않습니다. 졸업장이 아이 사랑을 보듬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어른들은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내몰고, 참고서와 문제집을 사다가 안길 뿐 아니라, 학원에 보냅니다. 대학교 졸업장을 바랍니다. 초·중·고등학교 졸업장은 아주 마땅히 거머쥐어야 하는 줄 여깁니다. 아이한테 삶을 가르칠 생각은 안 하고 학교에 보낼 생각만 합니다. 아이하고 사랑을 속삭이면서 꿈을 키울 삶은 일구지 않으면서, 아이들을 마냥 학교와 학원으로 내몰기만 합니다.


  삶이 없이 학교가 있으면 무엇이 재미있을까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이 없이 책만 있으면 얼마나 똑똑하거나 슬기로울까 돌아봐야 합니다. 꿈이 없이 돈만 있으면 얼마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울까 헤아려야 합니다.


  밥을 먹습니다. 영양소를 먹지 않습니다. 노래를 부릅니다. 악보를 부르지 않고 작사와 작곡을 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나눕니다. 시를 쓰거나 소설을 쓰지 않으며, 문학이나 예술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자랍니다. 아이들은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큽니다. 아이들은 나이값을 하지 않습니다.


.. ‘왜 나는 개로 태어났을까? 왜 사람들은 배가 고파 생선 대가리를 주워 먹는 나를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발길질을 할까? 그들은 내가 얼마나 아픈지 생각이나 했을까? 왜 개들은 밤에 잠도 자지 않고 집을 지켜 주는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먹다 남긴 찌꺼기만 주는 걸까? 그리고 도대체 우리 집 주인 식구들은 나를 버려 두고 어디로 가 버렸을까?’ ..  (159쪽)


  김명수 님 동화책 《해바라기 피는 계절》(창비,1992)을 읽습니다. 숲흙을 아직 알고 아끼며 사랑하는 아이들이 이 동화책에 나옵니다. 숲흙을 아직 생각하고 그리며 떠올리는 어른들이 이 동화책에 나옵니다. 고즈넉하거나 포근한 숲노래까지 흐르지는 않으며, 맑으면서 밝은 숲놀이가 조곤조곤 흐릅니다.


  지난 1992년에 이 동화책은 아이들한테 어떤 삶밥 구실을 했을까 궁금합니다. 오늘 2014년에 이 동화책은 아이들한테 어떤 삶밥 노릇을 할 만할까 궁금합니다. 1990년대나 2010년대나 아이들은 숲빛을 하나도 모를까요. 이제 아이들은 숲무늬를 그릴 줄 몰라 이런 동화책은 애써 찾아 읽지 않을까요. 어른들도 이런 동화책을 장만해서 아이와 함께 읽을 마음이 없을까요.


  교실과 학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려야 오늘날 이 나라 생활동화가 될는지 모릅니다. 인터넷과 온갖 물질문명 이야기를 담아야 오늘날 이 나라 판타지동화가 될는지 모릅니다. 나무를 말하거나 풀을 말하거나 벌레를 말하는 동화는 아무래도 아이한테나 어른한테나 재미없을는지 모릅니다. 봄나무도 겨울나무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요. 여름풀도 가을나락도 가만히 들여다보거나 사귀지 않으며 밥만 잘 먹는 사람들이니까요.


.. “그래, 까모야. 이제 가자. 그런데 이제 보니 넌 참 행복했었구나! 엄마도 있고 아버지도 있고. 난 엄마도 아버지도 없어. 그리고 넌 친구도 무척 많아 좋겠다. 그리고 맛있는 과일도 실컷 먹을 수 있으니 말야!” 순예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누나, 난 행복한 원숭이가 아니야. 난 밤에만 이렇게 고향에 올 수 있어. 낮에는 누나와 같이 돌아다니며 건강대보탕을 팔아야 하잖아.” ..  (194쪽)


  아이들은 숲에서 놀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놀 만한 숲은 어른들이 다 망가뜨립니다. 숲에 송전탑을 박고, 숲을 관광지로 바꾸며, 숲에 골프장을 짓습니다. 나무가 우거진 숲에는 헬리콥터를 띄워 농약을 푸지게 뿌립니다. 솔잎혹파리라느니 무슨무슨 벌레를 잡겠다며 너른 숲에 농약을 뿌려대요. 사람들이 자가용 배기가스와 공장 매연과 발전소 송전탑 따위로 숲을 망가뜨리고, 또 닭공장과 돼지공장과 소공장에서 내보내는 엄청난 쓰레기가 숲을 무너뜨리는데, 숲에 농약만 뿌린들 이런저런 벌레가 잡힐 턱이 있을까 알 길은 없어요.


  아무튼, 아이들은 숲에서 놀 수 없습니다. 어른들은 숲에서 일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아파트에 갇혀서 살고 학원과 학교와 시설과 기관에서 교과서와 책만 배웁니다. 어른들은 숲에서 일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아이들을 아파트와 학원과 학교와 시설과 기관에 가둔 채 교과서와 책 지식만 집어넣습니다.


  자연그림책과 생태환경책을 아이들한테 읽힌들 무슨 뜻이 있을까요. 정작 아이들과 함께 숲에서 살지 않는데. 숲에서 살지 않을 뿐 아니라 숲마실도 안 가는데. 숲마실도 안 갈 뿐 아니라, 텃밭조차 돌보지 않는데. 꽃이름과 나무이름 많이 알면 무얼 하겠어요. 정작 꽃과 나무 앞에 서도 이름을 모를 뿐더러, 어떻게 아끼고 사랑하면서 우리 마음이 아름답게 거듭나는가를 느끼지 못하는데.


  예부터 시골사람한테 지식이 있어 흙을 일구지 않았어요. 예부터 시골사람한테 지식이 있어 풀에서 실을 얻고 베틀을 밟아 천을 짜고는 바느질로 옷을 짓지 않았어요. 풀내음을 맡고 풀빛을 먹으며 풀노래를 부르는 삶이었기에, 풀에서 옷을 얻고 집을 얻으며 밥을 얻었습니다. 사람은 풀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풀사람으로 살았고, 풀사람으로 살며 어떠한 쓰레기 하나 없이 풀숨을 나누었어요.


  아이들과 어떤 동화책을 읽을까요? 아이들한테 어떤 동화책을 선물할까요? 아이들과 어떤 삶을 가꿀까요? 아이들과 어떤 보금자리를 돌보며 살아갈까요? 4347.1.1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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