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594) 시작 40 : 없어지기 시작
가사미산에 도라지가 차차 없어지기 시작했다 … 내일부터 불볕더위가 시작된다 합니다
《김명수-해바라기 피는 계절》(창비,1992) 29, 135쪽
차차 없어지기 시작했다
→ 차츰 없어졌다
→ 하나둘 없어지고 말았다
…
불볕더위가 시작된다 합니다
→ 불볕더위가 된다 합니다
→ 불볕더위라고 합니다
…
날씨를 이야기하면서 이 보기글처럼 ‘시작하다·시작되다’를 곧잘 쓰곤 합니다. 그런데 여느 시골사람이 날씨를 이야기할 적에는 ‘시작’이라는 한자말을 안 써요. 방송에서 날씨를 이야기하는 어른들이 으레 이 한자말을 씁니다.
비가 오려고 하면 “이제 비가 오겠네”라든지 “곧 비가 오겠네”나 “비가 오겠네”나 “비가 오려 하네”처럼 말합니다. “비가 오기 시작하겠네”라 말하지 않아요. 비가 올 적에는 “비가 오네”라 하지 “비가 오기 시작하네”라 말하지 않습니다. 곧, ‘-기 시작하다(시작되다)’ 꼴처럼 쓰는 말투는 예부터 우리 겨레가 쓰던 말투가 아닙니다. 일본사람이 ‘시작’이라는 한자말을 넣으며 쓰던 말투예요.
더 살펴보면, 방송에서는 “추위가 시작된다”라든지 “장마가 시작된다”처럼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추위나 더위는 이렇게 나타낼 수 없어요. “추위가 찾아온다”나 “더위가 찾아온다”처럼 나타냅니다. “추워진다”나 “더워진다”처럼 말합니다. “춥겠네”나 “덥겠다”처럼 이야기해요. 또는 “이제 추위가 찾아오겠네”라든지 “곧 더운 날이 되겠네”처럼 씁니다. 한자말 ‘시작’에 매이면, 때와 곳과 날과 철에 따라 알맞게 달리 쓰던 우리 말투가 모조리 사라집니다. 4347.1.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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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미산에 도라지가 차츰 없어집니다 … 이튿날부터 불볕더위가 된다 합니다
‘차차(次次)’는 ‘차츰’이나 ‘하나씩’이나 ‘하나둘’이나 ‘자꾸’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내일(來日)’은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글흐름을 살피면 ‘이튿날’로 손볼 수 있어요. 다른 자리에서는 ‘다음날’로 손볼 수 있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