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루비아 다시 만나기
가을이 무르익는 십일월에 사루비아를 만난다. 지난해와 똑같은 자리에서 새삼스레 만난다. 우리 마을에는 사루비아꽃이 피는 집이 없지만, 이웃 호덕마을 끝자락에 있는 집에서 사루비아꽃이 핀다. 따로 꽃밭에서 피지 않는다. 고샅길과 시멘트담 사이에서 핀다. 예전에 이 고샅이 시멘트 아닌 흙길이었을 적에는 아주 홀가분하게 피고 졌을 텐데, 시멘트로 덮인 뒤에는 가까스로 숨통을 틔우면서 피리라 본다.
사루비아꽃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이웃마을 끝자락 집 앞을 지나가지는 않았다. 저절로 이무렵에 이곳 앞을 지나갈 뿐이다. 사루비아꽃이 우리를 불렀을까. 우리가 사루비아꽃을 불렀을까.
이웃마을과 우리 마을 모두 아이들이 넘치고 복닥거리던 때에는 사루비아꽃이 남아날 틈이, 아니 쉴 틈이 없었으리라. 아이들이 꽃술 톡 뽑아 쪽쪽 빨아대느라 사루비아 꽃밭 앞은 빨간 꽃술이 잔뜩 흩어졌으리라. 앞으로 이 시골마을 가을자락에 사루비아 꽃술 흩어진 모습 다시 드리울 수 있을까. 4347.1.1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