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4.1.2.
: 칼바람 이는 파란하늘
- 새해맞이 마실까지는 아니지만, 면소재지를 다녀오기로 한다. 우체국에 부칠 편지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가고 싶으나, 이제 자전거수레 바퀴 하나가 폭삭 주저앉아 함께 가지 못한다. 아이들 태워 자전거를 달리다가 멈추어 바람 넣고 다시 달리고 하기에는 튜브가 힘을 못 쓴다. 시골에서 자전거튜브 20인치 크기를 찾기 어려워 인터넷으로 주문을 넣는다. 이 튜브가 집으로 올 때까지는 하는 수 없이 아버지 혼자 자전거를 달려야 한다. 26인치 튜브는 집에 있으나 20인치 튜브는 다 떨어지고 없다. 그러게, 20인치 튜브를 다 썼으면 미리 갖춰 놓아야지, 막상 이렇게 수레를 쓸 수 없이 되고서도 한참 그대로 있었다. 아이들한테 참으로 미안하다.
- 집에서 면소재지로 가는 동안 자전거 발판을 안 밟아도 될 만큼 뒷바람이 세다. 겨울바람이니, 뭍에서 바다로 가는 바람이다. 면소재지로 가는 길에는 등바람 맞으면 수월하다 할 테지만, 면소재지에서 집으로 돌아올 적에는 참 고단하겠지. 참말 겨울이니까. 그예 겨울이니까. 바다로 가려는 이 바람을 어쩌겠는가. 달게 맞아야지.
- 바람은 무척 드센데 하늘은 아주 새파랗다. 무섭도록 몰아치는 바람 때문일까. 하늘에 구름이 거의 없는데, 구름도 이리저리 흩날리는 듯하다. 겨울들은 덩그러니 조용하면서 누런 빛이요, 하늘은 파란 물이 뚝뚝 듣는다. 우체국 들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부는 바람은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가지 말라는 듯이 몰아친다. 아이들 데리고 이 길을 달리면 허벅지가 터질까. 혼잣몸으로 달리는 자전거이니 그럭저럭 달리지만, 샛자전거와 수레를 달았으면, 차라리 두 다리로 걸어서 끌 때에 한결 빠를 수 있으리라. 얼굴이 얼고 이가 시리다. 귀가 떨어지는 듯하면서도 등에는 땀이 흐른다. 큰아이가 아직 세 살이던 때에 충청북도 음성 멧자락을 타고 넘던 한겨울을 떠올려 본다. 그때에는 눈이 몰아치던 때에도 자전거를 달렸고 영 도 밑으로 20도 가까이 떨어졌어도 자전거를 달렸지만, 이렇게 바람이 모질게 불지는 않았다. 겨울자전거는 온도보다 바람이로구나. 온도가 아무리 떨어져도 자전거를 탈 만하지만, 겨울바람 드세게 불면 자전거를 타기 참 어렵구나. 인천과 서울에서는 이런 바람을 쐰 적 없다. 도시에서 가끔 부는 칼바람은 태평양을 앞에 둔 바닷마을에서 부는 바람하고 댈 수 없다. 제주섬에서도 바닷마을은 이런 칼바람이 불 테지. 그러니, 제주섬 바닷마을은 집이 그렇게 낮고 지붕을 밧줄로 친친 감으며, 돌울타리를 높게 쌓을 테지. 고흥에서도 집집마다 돌울타리를 높게 쌓는 까닭이 있다. 바로 이 겨울바람을 막자면 돌울타리를 높게 쌓아야 한다. 겨우내 푸른 잎사귀 매다는 동백나무와 후박나무와 가시나무를 집 둘레에 심어야 한다. 동백나무는 어여쁜 꽃을 매달기도 하지만, 푸른 잎사귀를 한가득 품기도 하니, 집집마다 이 나무를 가꾸겠구나.
- 이럭저럭 집에 닿는다. 숨을 돌린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려다가 살짝 선다. 사진으로만 찍는다면 겨울하늘빛 아주 곱다. 어쩌면, 하늘과 대문과 자전거만 사진으로 담을 적에 겨울인지 봄인지 여름인지 못 알아챌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누군가는 이 사진을 보면서 ‘차디차게 얼어붙은 겨울이로군요.’ 하고 알아보겠지.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