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똥 베틀북 철학 동화 1
헬메 하이네 글 그림, 이지연 옮김 / 베틀북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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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29

 


똥과 흙과 밥
― 코끼리 똥
 헬메 하이네 글·그림
 이지연 옮김
 베틀북 펴냄, 2001.12.20.

 


  아이들이 똥을 눕니다. 어른들도 똥을 눕니다. 어른은 똥을 눌 적에 말없이 뒷간에 가서 힘을 줍니다. 아이들은 똥을 눌 적마다 어버이를 부릅니다. “나 똥 눌게.” 하고 말합니다. 굳이 안 밝히고 누어도 되지만, 똥을 누는 일도 꼬박꼬박 알려주고 싶구나 싶은 한편, 똥을 누고 난 다음 밑을 닦거나 씻어 달라는 뜻입니다. 머잖아 아이들 스스로 밑을 닦거나 씻을 수 있다면, 애써 어버이를 부르며 “나 똥 눠.” 하고 말하지는 않겠지요.


  우리가 누는 똥은 예부터 거름으로 삼았습니다. 똥과 오줌을 알뜰히 그러모아 흙을 살리면서 살았습니다. 날마다 먹는 밥이란, 날마다 누는 똥이 거름이 되어 얻습니다. 날마다 누는 똥이란, 날마다 먹은 밥을 몸에서 알뜰살뜰 삭혀서 나옵니다.


  나무가 떨구어 흙바닥에 뒹구는 가랑잎은 찬찬히 삭아서 나무를 살찌우는 거름이 됩니다. 가을걷이를 마치고 모가지 잘린 볏포기는 겨우내 삭으며, 봄날 땅갈이를 하면서 다시 흙으로 돌아갑니다.


  흙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흙으로 돌아간 뒤 새롭게 흙에서 태어납니다. 흙에서 숨을 쉬고, 흙으로 숨을 쉽니다. 흙이 숨을 쉬고, 흙이 숨을 나누어 줍니다.


.. 코끼리는 기운이 넘치고 행복해져서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리기가 힘들었어요. 코끼리가 제대로 셈을 했을까요 ..  (44쪽)


  밥을 알뜰히 다스리는 사람은 똥을 살뜰히 다스립니다. 밥을 즐겁게 먹는 사람은 똥을 즐겁게 돌봅니다. 맛나게 밥을 먹고 시원스레 똥을 누어요. 기쁘게 밥을 차리고 힘차게 똥을 매만져요.


  새들은 나뭇가지에 앉아 나무열매를 얻습니다. 나무열매를 먹고 나서 포로롱 날아갈 적에 으레 똥을 뽀직 하고 쌉니다. 새들이 누는 똥은 나무 둘레 흙땅에 톡톡 떨어집니다. 새똥은 나무가 새롭게 기운을 얻도록 북돋우는 거름이 됩니다. 새는 나뭇가지에서 열매도 먹지만 벌레도 잡습니다. 나비 애벌레나 나방 애벌레를 잡아요. 애벌레는 나뭇잎을 알맞게 갉아서 먹습니다. 이러다가 곱게 깨어나기도 하고, 애벌레일 적에 새한테 잡혀서 먹히기도 합니다. 새는 열매와 애벌레를 찾아 나뭇가지에 앉습니다. 나무 곁에서 먹이를 찾는 새들은 언제나 나무한테 새똥 거름을 내어줍니다.


  그러면, 사람은 나무한테 무엇을 돌려줄까요. 나무를 베고 자르고 꺾는 사람은 나무한테 무엇을 베풀까요.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고만 여길 뿐, 나무한테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나요. 나무한테 사랑도 꿈도 따순 손길도 베풀지 않으면서, 그저 숲을 베거나 무너뜨리기만 하나요.


.. 코끼리는 매우 행복했어요. 100년이 지난 후에야 0을 알게 되었지요. 더 이상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풀과 나뭇잎과 더하기와 빼기에 대해서도 말예요 ..  (54쪽)


  헬메 하이네 님이 빚은 그림책 《코끼리 똥》(베틀북,2001)을 읽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코끼리는 천천히 어른이 되면서 마흔아홉 살, 쉰 나이에 이릅니다. 그러고는 이때부터 차츰 늙어 가만가만 아흔아홉 살, 백 나이에 이릅니다.


  기쁘게 태어나 즐겁게 하루하루 누립니다. 새로운 빛을 어느 나이에 깨닫고는 다시금 곱게 하루하루 즐깁니다. 그러고는 조용히 숨을 거둡니다.


  이 코끼리에 앞서 다른 어버이 코끼리들도 이렇게 살았겠지요. 이 코끼리에 뒤이어 다른 새끼 코끼리들도 이렇게 살아가겠지요.


  우리들은 밥을 몇 그릇쯤 비우면서 살아갈까요. 우리들은 똥을 몇 차례쯤 누면서 살아갈까요. 우리들이 먹는 밥은 어디에서 비롯할까요. 우리들이 누는 똥은 어디로 갈까요. 흙에서 나오는 밥을 즐기면서 흙으로 돌려주는 똥이 되는 삶인가요. 흙에서 나오는 밥이지만, 정작 흙한테 똥 한 무더기 돌려주지 않고 바다에 쓰레기로 버리는 삶인가요. 날마다 먹는 밥이 정갈하고 아름답기를 바란다면, 날마다 누는 똥 또한 정갈하고 아름답게 흙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고 생각할 노릇이라고 느껴요. 그래야, 비로소 삶이 삶다울 테니까요. 밥을 지키고 똥을 보살필 때에 이 지구별에 아름다운 사랑이 드리운다고 느껴요. 4347.1.1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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