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세 번 읽는 책

 


  다카하시 루미코 님 단편만화책에 실린 작품을 바탕으로 만든 만화영화가 있다. 뜻밖에 이 작품이 있었다고 알아챈 뒤 고맙게 얻었다. 이튿날 아이들한테 보여줄까 생각하면서 먼저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들여다본다. 이 작품은 아이들하고 그냥 보아도 되리라 생각하지만, 또 모르는 노릇이니까.


  생각해 보면, 어느 영화를 아이하고 함께 보더라도, 나나 곁님이 먼저 처음부터 끝까지 샅샅이 살핀다. 아이와 함께 볼 만하지 않은 대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잘 살펴야 한다. 제대로 안 살피거나 얼추 살피고 함께 보다가 뜨끔한 영화가 꽤 있다.


  아차, 뜨끔하구나, 하고 깨달으며 영화를 끄지만, 벌써 뜨끔한 대목은 흐른 뒤. 어른들은 영화를 만들며 굳이 이런 대목과 저런 모습을 넣어야 했을까. 사람을 죽이거나 때리는 모습을 반드시 넣어야 영화다운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까. 따사롭게 흐르는 사랑을 보여주자면, 바보스럽거나 짓궂은 이야기를 꼭 끼워넣어야 할까.


  좋은 말만 있어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어떤 풀도 겨울이 되면 시들어 죽는다. 시들어 죽어야 씨앗을 맺어 이듬해에 새롭게 자라날 어린 아이(풀)를 내놓는다. 그런데, 이런 풀살이와는 다르게, 사람들끼리 얕은 셈속으로 치고받는 이야기를 굳이 들출 까닭이 있을까. 들추더라도 그악스럽게 그려내야 할까.


  아이들과 영화를 보면서 어떤 영화라도 두세 번 먼저 보고 열 번 스무 번, 때로는 백 번이나 이백 번까지 다시 본다. 아이들과 책을 읽으면서 어떤 책이라도 두세 번 먼저 읽고 열 번 스무 번, 때로는 백 번이나 천 번까지 다시 읽는다. 어른들한테 읽히려는 인문책은 열 번이나 백 번까지 볼 책이 얼마 없으리라 느낀다. 아이들과 읽는 책은 적어도 백 번은 넘게 읽기 마련이다. 천 번이나 만 번까지다 되읽는 책이 있다. 이런 책이요 영화인 터라, 아이들과 누리는 이야기는 더 깊이 살피고 한결 넓게 돌아보기 마련이다. 아이들과 백 번쯤 읽을 그림책이나 동화책이니, 이런 책에 나오는 낱말과 말씨를 허투루 지나치지 못한다. 아이들과 천 번쯤 되읽을 책이라 한다면, 연필을 들고 책에 금을 죽죽 긋고 새 말을 집어넣을밖에 없다.


  작가도 편집자도 독자도, 책 하나를 얼마나 오래도록 수없이 되새기면서 마음을 살찌우는가 하는 대목을 살펴야지 싶다. 한 번 읽고 버리는 책은 없다. 한 번 읽고 버리더라도 가슴으로 맞아들이는 책이다. 4347.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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