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우산 아래에서 - 식민지 조선의 목소리 1910-1945
힐디 강 지음, 정선태.김진옥 옮김 / 산처럼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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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61

 


역사책에는 역사가 없다
― 검은 우산 아래에서
 힐디 강 엮음,정선태·김진옥 옮김
 산처럼 펴냄,2011.7.10./13000원

 


  우리들 살아가는 이 나라는 일본 군국주의 식민지를 겪었습니다. 이 나라는 군사독재정권을 겪었습니다. 돈으로 사람을 찍어내리는 정치권력을 꾸준히 겪고, 계급과 학벌과 지연 따위로 사람을 내리누리는 사회권력을 꾸준히 겪습니다. 바보스럽다 할 정치권력자가 작은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하지만, 작은 사람들끼리 서로 괴롭히거나 다투기까지 합니다. 정치권력자나 경제권력자나 문화권력자가 작은 사람들한테 저지르는 짓을 똑같이 이웃이나 동무한테 저지르곤 합니다.


  우리들 살아가는 이 나라는 고작 백 해쯤 앞서까지만 하더라도 신분과 계급으로 빈틈없이 나누어 이웃을 섬기지 않는 정치·사회 얼거리였습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수수한 여느 사람들은 서로를 아끼고 보살피는 마을살이였지만, 양반 신분과 계급은, 또 임금 신분과 계급은, 또 사대부 같은 이들 신분과 계급은, 사람살이를 아름답게 놓아 주지 않았습니다.


  권력을 거머쥔 이들은 언제나 작은 사람들을 얽매거나 가두거나 들볶습니다. 권력을 가로채려는 다른 이들도 똑같이 작은 사람들을 옭아매거나 숨통을 죄거나 괴롭힙니다. 이들은, 권력을 거머쥐었다고 여기거나 권력을 가로채려고 생각하는 이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요?


- 두 번째 큰 변화는 1900년에 찾아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새 며느리의 이름을 지은 다음 그 이름을 호적에 올렸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여성들은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아무개의 딸’이라고만 등록됐지요. (강병주,1910년 평북 출생/33쪽)


- 나중에는 창씨개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또 일본놈들한테 여러 차례 얻어맞았지요. (박성필,1917년 경남 출생/135쪽)


- 그저 살아남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설, 모욕, 박해를 당해를 당하고도 그러려니 했지요. 그것은 조선인의 정서에 무척 큰 상처였어요. (최길성,1911년 경기도 출생/147쪽)


  권력을 거머쥐었건 권력을 가로채고 싶건, 모두 밥을 먹어야 목숨을 건사합니다. 밥 안 먹고 목숨을 건사하는 권력자는 없습니다. 그러면, 밥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흙에서 나오겠지요. 흙은 어디에 있나요? 시골에 있지요. 궁궐에는 흙이 없어요. 양반네 기와집에도 흙이 없어요. 흙은 시골에 있습니다. 시골에서 조용히 흙을 일구는 사람이 있기에, 임금도 있고 권력자도 있으며 지식인도 있습니다. 시골에서 말없이 흙을 가꾸는 사람이 있으니, 대통령도 있고 시장이나 군수가 있으며, 의사이니 변호사이니 교사이니 연예인이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흙을 돌보는 사람이 없으면 어찌 될까요. 모두 죽겠지요.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돈이 철철 넘쳐도 굶어서 죽겠지요.


  석유가 펑펑 솟더라도 맑은 물 한 줄기 없으면 목이 말라 죽습니다. 석유가 흐드러져 돈으로 밑을 닦고 집을 짓는다 하더라도 물 한 모금 없으면 목이 말라 죽어요.


  다이아몬드나 금을 잔뜩 짊어지면 부자가 될까요? 아마 부자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부자가 되었어도 싱그러운 바람을 마시지 못하면 죽어요. 100억이든 1000억이든 1조이든 100조이든 대수롭지 않아요. 싱그러운 바람이 없으면 곧바로 죽어요.


- 그때 나는 한복을 입고 있었어요. 당시만 해도 가난한 농부들은 9월 말쯤에 겨울옷으로 바꿔 입고는 이듬해 4월까지 밤낮 그 옷만 입고 지냈어요. 그동안에는 옷을 빨거나 목욕을 하지 않았지요. 알다시피 한복은 하얀색인데 봄이 되면 때가 타서 거의 시커멓게 됩니다. 내가 입고 있던 옷이 그랬어요. 그때가 1월이었으니까 석 달 이상 같은 옷을 입고 지낸 셈이지요. 신발은 짚신이었어요. 가죽신이라는 것은 알지도 못했어요. 그러니까 나는 더럽고 냄새나는 한복 차림에다 짚신을 신고서 일본 오사카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것이지요. (홍을수,1905년 경남 양산 출생/69쪽)


  제아무리 엄청나다는 권력이나 전쟁무기로 이웃나라로 쳐들어간다 한들, 이웃나라 사람들이 아무도 흙을 안 일구면 어찌 될까요. 채찍질을 해대며 흙을 일구라고 시킨들 될까요. 고문을 하고 살인을 하면 될까요. 맞아서 죽으나 굶어서 죽으나 똑같다고 여겨 시골지기 모두 꼼짝않고 버티면 어찌 될까요. 대통령도 임금도 권력자도 살인마도 군인도 정치꾼도 재벌 우두머리도 연예인도 영화배우도 운동선수도 교사도 교수도 의사도 변호사도 과학자도 뭣뭣도 모두 굶어서 죽어야 합니다.


  이 나라는 왜 일본 군국주의 군화발에 짓밟혔을까요. 군대가 없어서? 임금과 신하가 바보스러웠기에? 양반네들이 바보짓만 일삼았으니? 여러 가지 골고루 섞였을 텐데, 시골에서 흙 만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람다운 대접을 못 받았기 때문이라고 느껴요.


  생각해 보셔요. 어떤 침략자라 하더라도 밥을 굶으면 죽어요. 어떤 침략자라 하더라도 물을 못 마시거나 바람을 들이켜지 못하면 죽어요. 나라가 버티는 까닭도 나라를 먹여살릴 뿐 아니라 튼튼히 받치는 시골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나 경제나 문화나 교육이나 과학 모두, 시골이 밑바탕이 되니 펼칠 수 있어요. 전쟁은? 전쟁도 똑같아요. 군인은 흙 먹고 전쟁을 하나요? 군인은 굶거나 숨 안 쉬면서 총을 쏘나요? 총알이 없어도 전쟁은 하지만, 밥을 굶고는 전쟁을 못해요. 적군이든 아군이든 밥때에는 밥을 먹느라 서로 쉬지요. 밤에는 잠을 자야지요. 안 먹이고 안 재우면서 전쟁을 하지 못해요. 그러면, 군인이 먹을 밥과 군인이 잠들 자리는 누가 마련해 주나요?


  오늘날 우리 사회 모습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생각합니다. 밀양 송전탑 말썽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제주 강정마을 말썽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요? 평택 미군기지 말썽은 어떻게 되었나요? 크거나 작은 갖가지 말썽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길은 오직 하나예요. 모두 내려놓고 시골로 가면 돼요. 밀양도 시골 아니냐 하고 물을 텐데, 다 내주고 다른 시골로, 더 조용하고, 더 깊은 두멧시골로 가면 돼요. 한 사람씩 두 사람씩 차근차근 시골로 가면 돼요. 한국전력 사람들만 두고, 경찰과 공무원만 두고, 대통령과 국회의원과 시장만 두고, 다들 시골로 가면 돼요. 시골에서는? 군청에 군수와 공무원만 두고서 읍내와 면소재지를 떠나면 돼요. 읍내에는 군수와 공무원만 있으라 하고, 모두 시골자락에서 흙을 만지면서 조용히 지내면 돼요.


  왜 요리사가 대통령한테 밥을 차려 주어야 하나요? 대통령한테는 손이 없나요? 왜 운전사가 대통령을 자가용으로 실어 날라야 하나요? 대통령한테는 발이 없나요? 스스로 흙을 일구어 밥을 얻도록 해야 대통령이 달라지지요. 스스로 집을 짓고 이부자리 깔며 빨래를 손으로 하도록 해야 대통령이 거듭나지요. 한국전력은? 우리들이 전기를 안 쓰면 돼요. 우리 모두 전기를 스스로 뚝 끊고 안 쓰면 되지요.


  대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할 까닭 없어요. 면접서류나 이력서가 있어야 할 일 없어요. 삶을 밝히고 사랑을 꽃피우는 길에는 아무것도 쓸데없어요. 우리들이 스스로 도시로 몰려들어 어떤 권력이나 콩고물이나 떡고물을 바라기 때문에, 온갖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아요. 온갖 정치 말썽·경제 말썽이 불거지기만 해요. 


- 뭐라고요? 서당에 다녔냐고? 여자는 그런 델 다니지 않았어요! 여자들은 바느질하고 밥 짓는 거나 배웠지요. 그 나머지를 배우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우리 오빠들은 모두 소학교에 다녔지요. 나도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오빠들이 말했지만 어머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여자들은 그런 거 배울 필요가 없다. 모두 쓸데없는 짓이야.”라고 말했어요. (이옥분,1914년 충남 출생/93쪽) 

 


- 나는 제2차 세계대전이 우리 마을의 신분 질서를 통째로 뒤집어 놓았음을 알아차렸어요. 우리 삼촌네는 하인이 많았고 그들은 모두 제 직분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전쟁으로 인해 모든 젊은이들이, 하인이고 양반이고 가리지 않고 모두 일본군에 징병되자 위계가 불분명해졌어요. 누구나 같은 운명이었고, 그러니 다들 평등해진 거지요. 이 때문에 전쟁이 끝난 뒤 많은 하인들이 삼촌네 집을 나와서 다른 도시로 이주했어요. 구질서가 붕괴된 거지요. (유덕희,1931년 충남 출생/256쪽) 


  힐디 강 님이 엮은 《검은 우산 아래에서》(산처럼,2011)라는 책을 읽습니다. 힐디 강 님은 한국(남녘과 북녘)을 떠나 미국에 뿌리를 내려 살아가는 할매와 할배를 만나서, 이녁이 한국전쟁 언저리, 또는 일제강점기에 겪은 이야기를 귀담아 듣습니다. 인문책 《검은 우산 아래에서》는 어쩌면 ‘이름난’ 사람들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으레 ‘이름 안 난’ 채 조용히 살던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역사책에 안 나오는 이야기가 이 책에 흐릅니다. 역사학자는 눈여겨보지 않는 이야기가 이 책을 그득 채웁니다. 왜냐하면, 그예 삶이니까요. 그저 삶으로 누리던 하루하루이니까요.

 

- 이곳 감방에 누가 있었는지 알아요? 바로 함석헌 선생님이었어요. 왜 수감됐는지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기독교 저항운동 혐의로 체포된 것이었죠. 고문실에 끌려갔다 돌아오면 선생님은 거의 말을 하지 못하거나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였어요. (이하전,1921년 평남 출생/173쪽) 

 


- 경비병들은 우리를 고베 교외에 있는 기다란 막사 안으로 몰고 갔어요. 우리 그룹에는 조선인이 6천 명 있었어요. 3천 명은 미쓰비시, 3천 명은 가와사키. 모두 그 막사에 수용됐어요. 상상이 가세요? 식사는 콩, 콩, 또 콩이었어요. 흰 쌀밥은 한 번도 안 나왔어요. 그런 게 아예 없었지요. 이따금 작은 국그릇을 줄 때도 있었어요. 그런 때에도 적은 양만 나눠 줬어요. 우리는 젊고 배고프고 식욕이 넘쳤어요. 겨우 21살인데 어떻게 그런 음식으로 버틸 수 있겠어요? 견디다 못한 어떤 사람들은 몰래 음식을 조금 더 챙기려다가 얻어맞았어요. 아주 호되게!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지요. (정재수,1923년 전북 출생/223쪽) 


  역사를 배우려 한다면 ‘어떤’ 역사를 배워야 할까요. 역사를 말하려 한다면 ‘어떤’ 역사를 말해야 할까요. 정치를 말하거나 경제를 말할 적에도, 인문학이나 문학이나 문화를 말한다 할 적에도 ‘어떤’ 이야기를 말해야 할까요.


  우리들은 ‘어떤’ 사랑을 나눌 때에 아름다울까요. ‘어떤’ 삶을 일구면서, ‘어떤’ 보금자리를 ‘어떤’ 마을에서 가꿀 때에 스스로 사랑스러운 하루 될까요.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텐데, 우리 사회는 이대로 가면 무너질밖에 없습니다. 다들 아는 이야기일 텐데, 우리 사회나 정치나 교육이나 문화나 다른 모두, 오늘 이 모습대로 흐른다면 밝거나 맑은 앞날이 없습니다. 입시지옥을 그대로 두고서 무슨 정치 개혁을 읊나요. 아이들이 뛰놀지 못하고 교과서 지식 외워서 시험경쟁만 하는데 무슨 경제개발을 외나요.


  사람을 사람으로 마주하지 않고서, 신분과 계급과 돈에 따라 가르던 한국 사회였으니 식민지살이를 겪을밖에 없었습니다. 사람 스스로 사람답게 살아갈 길에서 자꾸 벗어나고 끌려다니니 군사독재가 으르렁거렸어요. 오늘은? 모레는? 글피는?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4346.12.3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사람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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