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구니 달 - 베틀리딩클럽 저학년 그림책 2001 베틀북 그림책 12
메리 린 레이 글, 바버리 쿠니 그림, 이상희 옮김 / 베틀북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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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26

 


바람이 우리를 지켜봅니다
― 바구니 달
 바버러 쿠니 그림
 메리 린 레이 글
 이상희 옮김
 베틀북 펴냄, 2000.7.15.

 


  메리 린 레이 님이 글을 쓰고, 바버러 쿠니 님이 그림을 그린 《바구니 달》(베틀북,2000)을 읽으면, 책끝에 붙임말이 있습니다. 이 붙임말을 읽으면, 미국에서 나무를 잘라 바구니를 짜는 사람들은 거의 다 사라졌다고 합니다. 아니, 모조리 사라졌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고 합니다.


  그림책 《바구니 달》에서는 미국 숲 문화를 들려줍니다. 이 그림책을 읽는 내내, 나는 이 나라에서 송두리째 사라진 수많은 풀 문화와 짚 문화를 떠올립니다. 미국에서는 나무를 베어 바구니를 짜는 사람이 사라졌다면, 한국에서는 짚을 베어 바구니를 짜거나 둥구미를 엮는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한국에서는 바구니나 둥구미뿐 아니라, 섬이나 자리를 짤 만한 짚이 나오지 않습니다. 굵고 단단하며 길고 곧게 뻗은 예쁜 짚이 더는 나오지 않아요. 모두 농협에서 품종개량을 하는 바람에 ‘키 작고 짚 가늘며 거무튀튀한’ 짚만 있습니다. 그나마 이런 짚조차 가을걷이를 하면서 모조리 한 덩어리로 묶어 고기소 먹을 사료로 삼습니다.


.. 달이 완전히 둥글어질 때까지 아버지는 허드슨에 갖다 팔 바구니를 짭니다. 그러다 보름달이 뜨면 집을 나서지요. 우리 집엔 말도 없고 마차도 없어서 아버진 그 먼 길도 걸어 다니세요. 아주 늦게서야 집에 돌아오시는데, 둥근 달이 보름달이라야 캄캄한 밤길을 환하게 비춰 주거든요 ..  (6쪽)

 


  이 땅에서 바구니 짜고 짚신 삼으며 자리 엮는 사람이 사라진 까닭을 생각해 봅니다. 시골사람을 몽땅 도시가 잡아먹었기 때문입니다. 1950년대를 지나 1960년대를 맞이한 독재정권은 경제개발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사회를 윽박지르려고, 또 몇몇 재벌을 키워 검은돈을 거머쥐려고 갖가지 특혜를 베풀며 공장을 때려지었습니다. 때려지은 공장에서 부속품처럼 아주 낮은 돈만 받고 일할 노동자가 있어야 하니, 시골에서 젊은이를 끌어모읍니다. 시골 아이를 도시로 보내도록 하려고 시골마을 두멧자락까지 작은학교를 끝없이 짓습니다. 학교를 다닌 아이들은 모두 ‘도시 예비 노동자’가 되어야 하는 길을 걷습니다. 시골에서 흙 파며 풀 먹는 삶은 ‘가난하고 나쁜 삶’인 듯 가르칩니다.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공장일을 해야 효도가 되는 듯 가르칩니다. 이러는 한편, 시골을 떠난 젊은이 빈자리는 농약과 화학비료로 채우게끔 부채질을 하고, 비싼 농기계를 써서 젊은 일손 몫을 하도록 부추깁니다.


  이 나라 독재정권은 도시에 있는 공장 노동자로 쓰려고 시골사람을 도시로 끌어들이는 한편, 시골에 남은 사람들한테서 돈을 울궈내려고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다가 쓰도록 이끕니다. 농협에서는 품종개량이라는 이름을 내걸며 씨앗을 농협에서 사다 쓰는 얼거리로 바꿉니다. 한편, ‘경지정리’를 내세워 시골마다 농기계를 안 쓰면 안 되는 틀로 바꾸지요.


  이렇게 되니, 적게 거두어 적게 먹고도 ‘돈 걱정을 안 하면서’ 오순도순 오붓하게 살던 마을이 하나둘 사라집니다. 그나마, 시골마을 작은학교조차 나라에서는 돈을 안 들이고 지었어요. 시골사람한테 땅을 스스로 내놓게 해서 작은학교 터를 마련하고, 작은학교 건물조차 시골사람 스스로 시멘트를 개고 벽돌을 쌓아서 짓도록 시켰어요. 그리고, 시골마다 학교를 떡하니 지은 뒤에는 온갖 월사금과 납부금을 거둬들였고, 아이들을 몽둥이로 다스리는 짓을 일삼았어요. 이동안 아주 ‘자연스럽게’ 시골에서는 짚으로 무언가 만드는 일이 사라집니다. 시골사람이 짚신 신는 일은 자연스럽지만, 짚신을 신으면 손가락질을 하며 놀려요. 고무신을 신어도 놀리니, 짚신을 누가 신겠어요. 짚이나 억새나 대로 엮은 돗자리는 ‘새마을운동’하고 동떨어진다면서, 짚으로 짠 바구니와 둥구미 또한 ‘새로운 문명이나 문화’하고 안 맞는다면서, 모두 불태우거나 거름더미에 던지도록 내몰았습니다. 나일론 돗자리를 쓰도록 시키고, 플라스틱 바가지와 그릇을 쓰도록 부채질했습니다.


.. 어른들이 바구니를 만드는 동안 어둠이 깃들고, 이런저런 얘기가 오갑니다. 가끔은 아버지가 말하고 가끔은 조 아저씨나 쿠엔 아저씨가 말하지요. 보통은 나무가 자기한테 들려줬다는 이야기를 하고 또 합니다. 나도 나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었어요 ..  (12쪽)

 


  숲에서 조용히 살며 나무를 베어 바구니를 짜던 이들은 바구니만 짜지 않았습니다. 이녁이 먹을 밥을 이녁 스스로 흙을 만지면서 거두었습니다. 이녁이 지낼 집 또한 숲에서 나무를 조금씩 얻어서 조그맣고 조촐하게 지었습니다.


  숲에서 바구니 짜던 이들은 쓰레기가 없습니다. ‘쓰레기’라는 낱말조차 없었겠지요. 서로 이웃이 되어 사랑스러운 마을을 이루었겠지요. 서로 아끼고 돌보는 평화로운 삶터를 이루었겠지요. 흙을 만지고 나무를 아끼며 바구니를 짜는 이들 마음속에는 ‘전쟁’이나 ‘경제개발’ 따위는 없습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고, 숲이 베푸는 노래를 즐기며, 흙이 가르치는 노래를 배웁니다.


  이 나라 한국에서 흙을 만지면서 짚을 짜거나 엮거나 삼은 시골사람은 풀이 들려주는 노래를 들었어요. 숲이 베푸는 노래를 즐겼지요. 골짜기와 바다와 냇물이 가르치는 노래를 배웠어요.


.. 무슨 일이 있었는지 털어놓자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나무들은 우리 마음을 알 거야. 허드슨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신경 쓸 것 없단다.” ..  (25쪽)


  전문 가수가 불러야 노래가 아닙니다. 전문 작사가나 작곡가가 지어야 노래가 아닙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 나와야 노래가 아닙니다. 노래방에서 부를 수 있어야 노래가 아닙니다.


  노래는 삶에서 태어납니다. 노래는 사랑으로 태어납니다. 노래는 꿈과 함께 태어납니다. 노래는 마알간 눈빛으로 부릅니다. 노래는 따스한 손길로 부릅니다. 노래는 고운 마음을 나누려는 넉넉한 넋으로 부릅니다.

 


.. “어떤 이들은 바람의 말을 배워서 음악으로 만들어 노래 부르지.” 조 아저씨가 계속해서 말했어요.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바람의 말을 듣고 시를 쓴단다. 우린 바람의 말로 바구니 짜는 법을 배웠지.” 그때 참나무 이파리 하나가 창고 안으로 날아 들었어요. “바람이 우릴 지켜보고 있었구나.” 하면서 조 아저씨가 덧붙였어요. “바람은 믿을 만한 존재가 누군지 알거든.” ..  (27쪽)


  바람이 우리를 지켜봅니다. 햇살이 우리를 지켜봅니다. 들풀이 우리를 지켜봅니다. 나무 한 그루가 우리를 지켜봅니다. 바닷물이, 냇물이, 도랑물이, 실개울이 우리를 지켜봅니다.


  구름이 우리를 지켜보고, 멧새가 우리를 지켜봐요. 작은 꽃이, 작은 벌레가, 작은 짐승이, 작은 개구리가, 작은 둠벙이, 모두 우리를 지켜봐요.


  가슴으로 함께 느껴요. 우리 가슴속에서 피어날 사랑을 저마다 곱게 느껴요. 마음으로 함께 어깨동무해요. 우리 마음밭에 뿌릴 씨앗을 저마다 즐겁게 헤아려요. 우리가 먹는 밥은 영양소가 아닌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직업이나 전문영역 아닌 사랑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물려받아 누릴 삶은 장래희망이나 진로계획이 아닌 사랑입니다. 4346.12.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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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29 09:55   좋아요 0 | URL
바버라 쿠니님의 <바구니 달>을 저도 참 좋게 읽었어요~
그림도 좋았고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옮겨주신 27쪽의 말을 마음에 넣어 두었지요~*^^*

숲노래 2013-12-29 10:12   좋아요 0 | URL
이 그림책을 읽었나 하고 넘어갔는데
아무리 살펴도 도서관에 없더라구요.
이번에 장만하고 보니 예전에 안 장만했더라구요 ^^;;;

참말 27쪽, 아저씨가 들려준 '바람 이야기'가 아주 좋아요.
그리고, 그 좋은 이야기대로
우리들이 잊은 '우리 풀짚 문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깨달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