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는 겨울에 겨울풀빛
지난 12월 18일에 고흥 녹동고등학교로 강의를 하루 다녀올 적에, 학교 어귀에 있는 우람한 나무에 흠뻑 사로잡혔다. 나무가 뿌리를 내린 둘레로 넓게 흙밭을 이루고, 가랑잎으로 온통 뒤덮인 흙밭에 겨울풀 예쁘게 돋은 모습이 무척 어여쁘다고 느꼈다. 강의를 하러 학교 건물로 들어가야 하는데, 한동안 나무 둘레를 서성이면서 줄기를 쓰다듬고 여린 겨울풀을 어루만지면서 놀았다. 사진도 몇 장 신나게 찍으면서.
겨울에 돋은 이 예쁜 풀을 살짝 뜯어서 먹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여름이나 봄이라면 서슴지 않고 뜯어서 먹었을 텐데, 겨울에 돋은 이 고운 풀빛이 오래오래 환하게 빛나면서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즐겁게 누릴 수 있기를 바랐다. 오밀조밀 피어나는 작은 풀꽃이 예쁘장하고, 가랑잎을 이불 삼아 하나둘 새로 돋는 어린 싹들은 더없이 귀엽다. 이 겨울빛을, 한겨울에도 푸릇푸릇한 이 풀빛을, 따스한 남녘땅 고흥 풀내음을, 고흥 이웃들이 마음속에 넉넉히 품는다면 참 아름답겠지.
풀아, 풀아, 겨울에도 씩씩하게 돋는 풀아, 찬바람 즐겁게 맞아들이면서 새봄을 함께 기다리자. 4346.12.2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