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 아린 글쓰기
며칠 앞서부터 왼손 둘째손가락 첫째 마디가 텄는데, 딱히 밴드로 감싸거나 약을 바르지 않고 지나갔다. 으레 아물거나 굳은살 두껍게 박히겠거니 여겼다. 그러나 하루하루 갈수록 아물듯 말듯 아물지 않는다. 작은아이 많이 자라고 여름처럼 땀으로 옴팡 젖는 옷이 나오지 않으니, 하루에 한 차례쯤 빨래를 할 뿐이요, 밥을 차릴 때를 빼고는 물을 덜 만지자 하니, 살그마니 아무는데, 하루 내내 물을 안 만질 수 없으니 자꾸 도지고 생채기가 벌어진다. 그래도 아이들 씻기고 아침에 빨래할 적까지는 아린 느낌이 없더니, 저녁에 밥을 차릴 무렵부터는 퍽 아리다. 저녁밥 차려 먹인 뒤에는 설거지를 못한다. 손가락 씌우개를 씌우고 밥을 차리는데, 씌우개로는 아픔을 삭히지 못한다.
자고 나면 나아지겠거니 여기며 잠자리에 든다. 그러나 잠자리에 들어 잠을 자는 동안 손끝이 아려 자꾸 잠을 깬다. 작은아이가 쉬 마렵다고 부르는 한밤에 오줌을 누이고 다시 잠자리에 눕혀 토닥인 뒤, 연고를 바르고 천조각을 도톰하게 대고는 밴드로 감싼다. 십 분쯤 지나니 아린 느낌이 차츰 수그러든다. 한 시간쯤 지나니 비로소 아린 느낌이 사라진다. 이제는 살짝 간지럽다.
엊저녁에 큰아이가 “내가 설거지 해도 돼?” 하고 물었다. “응, 해도 돼.” 하니 아주 좋아라 하며 설거지를 해 준다. 아버지는 손가락이 아려 물을 만질 수 없어 설거지를 못하는데, 여섯 살 큰아이가 이렇게 물을 만져 주니 고맙다. 내 마음을 네가 읽어 주었니. “물이 차갑지 않아?” “응, 안 차가워. 괜찮아.”
여름에는 하루 내내 물을 만져도 손가락 트는 일 없다. 그래도, 큰아이가 아직 갓난쟁이였을 적, 작은아이가 한창 갓난쟁이였을 적, 이렇게 두 차례 손가락에 습진이 왔다. 그무렵에는 십 분에 한 번 꼴로 물을 만져야 했으니 습진이 안 올 수 없었으리라. 찬물만 만지면 손가락이 틀 일 없는데, 겨울을 맞이해서 더러 따순물 쓰다 보면 손가락이 꼭 튼다. 그렇다고 내내 찬물만 쓰기는 어렵다.
겨울에는 손가락을 잘 돌보아야 집일뿐 아니라 글쓰기도 제대로 할 수 있다. 손끝 한 군데 다치더라도 물을 만지기 수월하지 않다. 손끝 하나 다친 탓에 자판을 두들기거나 연필을 쥘 적에 품이 더 든다. 설거지는 큰아이가 가끔 해 주지만 글은 내가 써야 한다. 빨래는 가끔 빨래기계한테 맡기더라도 글은 나 스스로 써야 한다. 몸 다른 곳도 다치지 않도록 다스리고, 손가락 또한 자잘한 생채기 없도록 가눌 노릇이다. 4346.12.2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