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전업작가 글쓰기
아이들이 깊이 잠든 한밤에 일어나 새벽까지 글을 쓴다. 밤 한 시부터 새벽 여섯 시 오십 분쯤 겨우 하루 일을 마치고 아이들 사이에 눕는다. 아이들이 여덟 시 무렵부터 잠에서 깼다고 느낀다. 몸이 무거워 도무지 못 일어나는데, 큰아이가 동생 쉬를 누여 주고 같이 노는 소리를 귓결로 듣는다. 아홉 시가 되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다. 아이들 먹일 밥을 헤아린다. 두 아이는 마당 한쪽에서 꽃삽으로 땅을 쪼다가 맨발로 털퍽 주저앉아 온몸에 흙을 덮으면서 논다. 얘들아, 오늘 날짜가 십이월 이십사일 한겨울이거든. 너희들 여기가 한여름 바다인 줄 아니.
두 아이 옷을 모두 갈아입히고 씻겨야 한다고 느끼며, 밥부터 차린다. 옷 갈아입히고 씻기고 나서 바로 따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끓인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온통 흙투성이 되어 노는 모습을 보면서, 밀린 글을 조금 쓴다. 작은아이가 “추워, 이제 안 해.” 하면서 마루로 올라서려는 소리를 듣는다.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나 작은아이가 마루에 못 올라오도록 막는다. “자, 밖에서 옷 다 벗고 들어와. 씻어야지.” 따순 물 나오도록 보일러 단추를 누른다. 미리 챙긴 아이들 옷가지를 씻는방 앞에 갖다 놓는다. 큰아이는 혼자서 옷을 씩씩하게 다 벗고, 또 씩씩하게 옷가지에 묻은 흙을 탁탁 턴다. 두 아이를 함께 씻는방으로 들어오도록 한다. 이동안 나는 반바지와 반소매 차림으로 갈아입는다. 따순물을 튼다. 먼저 머리가 긴 큰아이부터 머리를 감긴다. 어느덧 물이 따끈따끈하고, 두 아이한테 물을 골고루 뿌리면서 비누질을 하고 천천히 씻긴다.
다 씻긴 아이들 머리를 말리고 물기를 닦은 뒤 방으로 들어가자 하면서 “달려!” 하고 말한다. 벌거숭이 두 아이가 방으로 달려간다. 방에서 큰아이는 스스로 옷을 꿰고, 작은아이는 하나하나 입혀 준다. 옷을 다 입은 아이들더러 부엌에 앉으라고 말한다. 대접에 밥이랑 국을 함께 담는다. 오늘 국은 수제비국. 아이들끼리 풀이랑 밥 골고루 먹으라 말하면서 빨래를 한다. 흙투성이 옷을 조물조물 주무른다. 흙때 잘 빠지도록 여러 차례 되비빔질 한다. 오늘은 여러 달만에 빨래기계를 쓰기로 한다. 비빔질을 모두 마친 빨래를 빨래기계에 넣는다. 이렇게 하면 빨래기계 쓰는 뜻이 있느냐고도 하지만, 비빔질 안 하고 빨래기계에 넣으면, 나중에 마당에 널 적에 보면 옷소매나 옷깃이 제대로 안 빨리기 마련이다. 비빔질을 잘 해서 넣어야 제대로 빨린다.
빨래를 하는 김에 걸레를 빨았고, 방과 마루를 쓸고 닦는다. 걸레를 빨아서 마당에 넌다. 방에 깔았던 깔개를 마당에 널어 해바라기 시킨다. 부엌으로 돌아가니 큰아이는 밥을 다 먹었다. 작은아이도 거의 다 먹었다. 내 몫을 뜨기 앞서, 오늘 저녁에 먹을 쌀을 냄비에 담아 씻는다. 엊그제부터 뜯은 누런쌀 봉투에 바구미가 꽤 많다. 이 녀석들은 이 겨울에도 용하게 이렇게 새끼를 치며 쌀을 파먹는구나.
작은아이 곁에 앉아 작은아이 입에 풀을 넣어 준다. 나와 작은아이는 이윽고 밥을 다 먹는다. 이동안 빨래기계가 빨래를 다 해 주었다. 옷걸이를 챙겨 마당으로 옷가지를 들고 나온다. 차곡차곡 펴서 넌다. 두 아이는 마루를 가로지르면서 신나게 논다. 등허리를 조물주물 주무른다. 눈두덩도 주무르고 손목과 팔뚝을 주무른다. 오늘 쓸 글은 얼마나 있지? 아이들이 서로 잘 보듬으며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조금 더 일하기로 한다. 이따가 작은아이 낮잠을 재워야지. 4346.12.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