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사람을 아끼고 (도서관일기 2013.12.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장흥에서 손님이 찾아온다. 장흥을 발판으로 사진을 찍고, 탐진강을 둘러싼 마음을 사진으로 담는 마동욱 님과 이녁 선배가 함께 찾아온다. 곰곰이 헤아리면, 장흥에는 마을빛 곱게 담으려고 힘쓰는 분들이 퍽 많다. 글로든 그림으로든 사진으로든 퍽 여러 분들이 힘을 쓴다. 고흥에도 고흥빛을 곱게 담으려고 힘쓰는 분들이 있다. 그렇지만, 고흥빛은 장흥빛처럼 넓어지거나 깊어진다는 느낌이 좀처럼 들지 않는다. 고흥군청에서 돈을 들여 이것저것 짓거나 올리거나 만들거나 세우기는 하지만, 마을마다 살가이 뿌리내리는 흐름으로 가는지 아리송하기 일쑤이다. 토목건설은 토목이거나 건설이지, 문화가 아니다. 관광시설은 관광이거나 시설이지, 삶이 아니다. 친환경농업은 농약을 덜 쓴다거나 덜 나쁜 농약을 쓴다는 ‘농사 산업’이지, 흙을 살리거나 풀을 아끼는 흙짓기는 아니다.


  시골 아이를 도시로 보내는 ‘교육 사업’은 있어도, 시골 아이가 고흥이라는 시골을 아끼고 사랑하도록 북돋우는 ‘배움넋’은 도무지 찾아보지 못한다. 그러나, 시골 아닌 도시에서도 아이들한테 회사원이나 연예인이나 지식인이 되는 교육 사업만 있을 뿐, 아이마다 다 다른 삶빛을 찾도록 북돋우는 배움넋은 쉬 뿌리내리지 못한다. 어디에나 도시바라기와 대학바라기 입시교육만 있다.


  겨울로 접어들었으니 우리 서재도서관에서 책을 둘러보자면 손이 시릴 수 있다. 흔한 난로조차 하나 없으니, 추위를 잘 타는 분한테는 힘들리라 느낀다.


  나는 추운 곳에서건 더운 곳에서건, 읽을 책이 있으면 그냥 읽는다. 한참 춥더라도 마음을 녹이는 책이 있으면 손과 볼과 몸이 얼면서도 차근차근 읽는다. 책을 읽으며 밑줄을 그으려다가 볼펜이 얼어서 안 나오면 연필을 쥔다. 연필은 아무리 추운 곳에서도 서걱서걱 쓸 수 있다. 다만, 내가 추운 곳에서도 스스럼없이 책을 읽는대서 다른 사람한테 추위를 견디며 책을 읽으라고 할 수는 없다.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읽는다면 고맙다.


  어느 책이든 읽으려는 사람이 스스로 읽는다. 더워서 안 읽는 사람은 추워서 안 읽는다. 바빠서 안 읽는 사람은 나중에 느긋하거나 한갓지더라도 안 읽는다. 힘들거나 고단해서 안 읽는 사람은 넉넉히 쉬거나 달콤히 낮잠을 자고 난 뒤에도 안 읽는다.


  책이 없기에 책을 안 읽지 않는다. 종이책으로도 책을 읽지만, 나무 한 그루로도 책을 읽는다. 소설책으로도 책을 읽으며, 씨앗 한 톨이 뿌리내려 자라는 모습으로도 책을 읽는다. 베스트셀러를 읽을 수도 있지만, 심지 않아도 스스로 무럭무럭 돋는 숱한 들풀을 읽을 수도 있다. 무엇을 읽든 스스로 읽는다. 언제 읽든 스스로 챙겨 읽는다. 어느 곳 어떤 날씨라 하더라도 늘 스스로 읽는다.


  삶을 아끼는 사람이 삶을 사랑한다고 본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을 아낀다고 본다. 이웃을 아끼는 사람이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고 본다.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는 사람이 책마다 다 다르게 서린 빛을 헤아린다고 본다. 책마다 다 다르게 서린 빛을 헤아리는 사람이 살림을 알뜰살뜰 가꾼다고 본다. 살림을 알뜰살뜰 가꾸는 사람이 ‘평등’이라는 이름을 모르더라도 즐겁게 아이들을 돌보고 살아간다고 본다. 아이들을 돌보고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이 글을 정갈하게 쓸 테고, 글을 정갈하게 쓰면서 책 또한 반가이 마주할 수 있을 테지.


  아름다운 책 하나를 믿는다. 겉보기로 그럴싸하게 꾸며서 만들었기에 아름다운 책이 되지는 않는다. 사랑을 담고 꿈을 노래하는 책일 때에 아름답다. 아름다운 이웃들을 믿는다. 이름이 높거나 돈이 많거나 힘이 세다고 해서 아름다운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사랑을 나누고 꿈을 이루는 길로 씩씩하게 걸어갈 적에 아름답다.


  아름답다고 여기는 책을 서재도서관에 갖춘다. 아름다운 책손은 여름에도 겨울에도 한결같이 빙그레 웃으면서 고흥 시골자락으로 선선히 찾아오리라 믿고 기다린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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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23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방 앞을 걷다>가 유독 더 예쁘고 좋아서
한꼭지씩 읽을 때마다, 애기 궁둥이같이 보드라운 책을
쓰다듬곤 합니다~ 늘 감사드려요~*^^*

숲노래 2013-12-24 19:55   좋아요 0 | URL
아아,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