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아까운 책’과 ‘살짝 읽기’

 


  1994년부터 책이야기를 글로 썼다. 이무렵부터 ‘돈 아까운 책’이라는 이름을 붙여 책을 나누곤 했다. 참말 돈을 주고 사기에도 아깝고, 누가 돈을 주면서 읽으라 해도 싫다 싶도록 삶빛을 밝히지 못한다고 느끼는 책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책이야기를 썼다. 2014년을 코앞에 두고, 이제 이 이름은 더 쓰지 말자고 느낀다. 다른 이름을, 새로운 이름을 붙이자고 느낀다. ‘돈 아까운 책’이 아닌 ‘살짝 읽기’라는 이름을 붙이자고 느낀다. 살짝 읽어 보는, 살짝 읽어 주는, 살짝 들여다보는, 스쳐 지나가면서 살짝 살피는, 그런 책이라고 할까.


  어느 환경운동가는 동화 할배가 쓴 글을 읽고 나서 자가용하고 헤어졌다가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자가용하고 짝짓기를 하고는 핑계 가득한 글을 쓴 적 있다. 스스로 앞뒤가 어긋난 모습이라고 느껴, 이런 분들이 쓰는 글이나 책은 읽을 값어치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가만히 보면, 이런 분들은 동화 할배가 글로 나타낸 넋을 제대로 못 읽었으니 섣불리 자가용하고 헤어지기만 한다. 자가용하고만 헤어진대서 지구별에 평화가 오겠는가. 그렇게 될 수도 있지만, 자가용 하나하고만 헤어진대서 달라지지 않는다. 온삶 모든 대목에서 새롭게 거듭날 줄 알아야 비로소 지구별에 평화가 온다. 그러니 그 환경운동가는 다시 자가용하고 짝짓기를 할밖에 없다.


  동화 할배가 자가용을 버려야 이라크파병 안 할 수 있다는 줄거리로 글을 쓴 밑바탕을 읽는다면, 참말 ‘환경운동가’라는 이름표부터 뗄 수 있겠지. 삶은 운동이 아니라 삶이니까. 스스로 삶을 누리고, 삶을 사랑하며, 삶을 가꿀 때에 비로소 스스로 평화가 된다. 스스로 평화가 되면 자가용을 몰 적에도 평화가 된다. 스스로 평화가 되면 라면을 끓일 적에도 평화가 된다. 스스로 평화가 되지 않으면, 환경운동가뿐 아니라 사회운동가 되더라도 평화롭지 않다. 스스로 평화가 되지 않으면 유기농 생채식을 하더라도 평화롭지 않다.


  이리하여, 책이야기를 쓴 지 스무 해가 되는 2014년부터는 ‘돈 아까운 책’이라는 이름을 안 쓰기로 한다. ‘살짝 읽기’라는 이름을 쓰기로 한다. 살짝 웃고, 살짝 손잡고, 살짝 노래하고, 살짝 꿈꾸는 이야기를 나눌 때에 서로 한결 즐거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름다운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스무 살이 되도록 이 시골이 아름다운 줄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 바람에 참말 ‘시골은 빨리 떠나야 하는 곳’으로만 여긴 채 살아온 아이들(푸름이)더러 ‘얘들아, 너희 시골에 남아야지’ 하고 말할 수 없다. 이 아이들은 도시맛을 보아야 한다. 도시맛을 보고 예순 살까지 살아야, 도시에서 예순 살까지 살다가 정년퇴직으로 회사에서 물러나야, 비로소 ‘이제 어떻게 살지?’ 하고 생각할 수 있으리라 본다. 다만, 그때에도 생각을 못 여는 시골내기가 더 많을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이들을 가리켜 바보스럽다고 말할 수 없다. 그저 살며시 사랑할 노릇이고, 살며시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아직 마음에 사랑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 사람들은 ‘사랑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 아직 마음에 꿈을 살가이 보듬지 못한 사람들은 ‘꿈책’을 살가이 느끼지 못한다. 아직 마음에 숲을 푸르게 껴안지 못한 사람들은 ‘숲책’을 하나도 못 껴안기 마련이다. 아직 마음에 빛을 고이 품지 못한 사람들은 풀 한 포기와 꽃 한 송이에서 빛을 깨닫지 못하니, ‘삶책’을 읽지 못한다. 4346.12.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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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3-12-22 17:40   좋아요 0 | URL
살짝 읽기.. 참 좋은 표현입니다.^^

숲노래 2013-12-22 19:46   좋아요 0 | URL
네, 제가 붙인 이름이면서도 참으로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