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꽝에 소리쟁이와 별꽃과
꽃은 어디에서 피는가. 꽃은 꽃그릇에서 피는가. 꽃은 어디에서 볼 수 있는가. 꽃은 꽃집에서 볼 수 있는가.
꽃은 흙이 있는 땅에서 핀다. 꽃은 들과 숲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꽃이 자랄 수 있는 흙땅에 사람들이 시멘트를 들이부어 집을 짓는다. 도시를 세운다. 아스팔트를 더 얹어 찻길을 닦고, 찻길 위로 높다란 구름다리와 구름찻길을 드리운다. 도시에서는 흙땅이 따로 없기에 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흙밭을 돈을 들여 새삼스레 만든다. 그런데, 도시 공원은 엄청난 돈을 들여서 만든 데인 만큼 모든 풀과 꽃과 나무가 틀에 맞추어야 한다. 한 치도 벗어나서는 안 되고 조금도 어긋나서는 안 된다. 계획표에 적은 대로 나무를 심고, 행정예산에 맞추어 꽃씨를 사다가 뿌린다. 들꽃 씨앗이 바람에 날려 공원에서 자라는 일을 공원 지킴이가 그대로 두지 않는다. 들새가 나무열매를 따먹고 공원에 똥을 누어 ‘공원으로서는 뚱딴지 같은 나무’가 자라도록 그대로 두지 않는다. 공원에 느티나무를 심었다 하더라도, 느티나무가 맺은 느티꽃에서 느티열매 맺어 느티씨 떨어지더라도, 어느 느티나무가 큰 느티나무 둘레에서 곱게 자라도록 지켜보지 않는다. 모조리 베고 몽땅 농약을 쳐서 죽인다.
꽃은 어디에서 피어야 하는가.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데에서 피어야 한다. 꽃은 어디에서 보아야 하는가. 자동차도 버스도 경운기도 콤바인도 찾아가지 않는 곳에서 보아야 한다.
미나리꽝에 겨울에 새로 돋은 미나리가 찬바람 맞고 벌벌 떨면서 붉게 물든다. 곁에는 소리쟁이가 커다란 잎사귀 내밀고, 어느새 별꽃나물이 줄기를 그득 덮더니, 앙증맞은 하얀 꽃망울 활짝 편다.
새마을운동 바람이 불기 앞서까지 이 미나리꽝 둘레는 아이들로 부산했으리라. 나물 뜯는 마을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 나물 저 나물 바지런히 뜯었으리라. 이제 이 미나리꽝은 새마을운동 뒤로 엄청나게 뿌려대는 농약 때문에 아무도 미나리를 뜯으러 오지 않고, 소리쟁이도 별꽃나물도 안 뜯는다. 봄이 되어 깨어나는 풀벌레만 미나리랑 소리쟁이랑 별꽃을 조금씩 갉아먹을 뿐이다. 겨울 찬바람 휭휭 불지만, 별꽃 잎사귀는 가지런하다. 4346.12.2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