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엄마 잘 먹겠습니다 책놀이터 3
나가사키 나쓰미 글, 하세가와 도모코 그림, 주혜란 옮김 / 서울교육(와이즈아이북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42

 


아버지가 차리는 밥상
― 아빠 엄마 잘 먹겠습니다
 나가사키 나쓰미 글
 하세가와 토모코 그림
 주혜란 옮김
 와이즈아이 펴냄, 2009.5.20.

 


  느즈막한 낮잠을 자고 일어난 작은아이가 꽁꽁거립니다. 작은아이에 이어 낮잠에서 깨어난 큰아이가 “아버지, 빵?” 하고 묻습니다. 여섯 살 큰아이한테 “벼리야,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배고프니?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싶다고 말해야지. 밥을 먹고 나서 빵을 먹고 싶으면 그때에 빵을 달라고 하렴.” 하고 이야기합니다. 큰아이는 “응, 알았어. 배고파요. 밥 주세요.” 하고 얘기해 줍니다.


  밥은 있고 국을 덥히면 됩니다. 국을 덥히면서 곤약 한 덩이를 잘라 국에 넣습니다. 달걀 다섯 알을 삶습니다. 달걀이 익고 국이 끓는 사이 양배추를 썰고 나물을 헹구어 나물부침을 마련합니다. 오이와 무를 채 썰어 꽃접시에 얹습니다. 물고기묵을 네모낳게 잘라 보글보글 끓는 국에 꼬치로 꿰어 담가 놓습니다. 국냄비는 불을 끄고 가위로 김을 한 장 잘라 흰접시에 담습니다. 아이들을 부르고, 밥과 국을 퍼서 밥상에 척척 올립니다. 큰아이는 스스로 알아서 수저를 밥상에 놓습니다. 곤약을 토막토막 잘라 작은 질그릇에 담습니다. 국에 끓인 두부를 꺼내어 칼로 썰어 흰접시에 담습니다. 달걀 삶은 냄비는 아까 불을 껐습니다. 달걀은 조금 식은 뒤에 내주어야지요.


  천천히 저녁을 먹습니다. 작은아이는 부엌으로 오다가 문고리에 머리를 박아 징징 웁니다. 작은아이를 달래면서 수저로 밥과 반찬을 떠서 먹여 줍니다. 부아가 난 작은아이는 떠먹여 달라 합니다. 큰아이가 묻습니다. “아버지, 보라는 왜 먹여 달라고 해?” “응, 머리가 문고리에 부딪혀서 부아가 났나 봐.” “그래? 보라는 젓가락질 못 해?” “할 수 있는데, 아직 하고 싶지 않으니까, 조금 기다리면 할 테야.”


.. “나는 고양이가 밥 먹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 물 먹는 소리도 듣기 좋고.” 마리도 “맞아, 맞아” 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참 포근해지는 느낌이야.” “맞아. 그런데 왜 그런 느낌이 들까?” ..  (8쪽)


  아이들이 밥그릇을 4/5쯤 비웠다 싶을 즈음, 달걀을 꺼내기로 합니다. 아직 뜨거운 물은 설거지를 기다리는 그릇에 찬찬히 붓습니다. 찬물에 두 차례 삶은달걀을 헹굽니다. 그러고는 큰아이와 작은아이한테 따로 작은 접시를 내주면서 삶은달걀을 통째로 줍니다. 스스로 껍질을 벗기도록 합니다.


  알맞게 잘 삶았기에 껍질이 아주 잘 벗겨집니다. 두 아이 모두 예쁘게 벗깁니다. 노른자도 맑은 노랑 빛깔이 곱습니다. 달걀 한 알로 남은 밥을 말끔히 비웁니다. 나물무침도 그릇을 싹싹 비웁니다. 그야말로 배부르게 잘 먹었지?


  저녁을 다 먹은 두 아이는 빵 달라는 소리를 더 하지 않습니다. 다른 무언가 먹고 싶다는 말도 없습니다. 꼭 알맞춤하게 배가 고플 즈음 밥을 차려서 즐겁게 함께 먹으면 됩니다.


  이런 밥차림은 힘들까요? 힘들다면 힘들는지 모르지만, 수월하다면 수월하다고 느껴요. 우리 어머니도 내가 어릴 적에 퍽 수월하게 밥상을 차려서 주셨어요. 뚝딱뚝딱 아주 빠르게 밥을 내어주셨어요.


  미리 갖추거나 마련한 먹을거리는 없어도, 몇 차례 손길을 타면 어느새 보기에도 예쁘고 먹기에서 고소한 밥이 되어요. 어릴 적부터 이런 어머니 손길을 돌아보면서 ‘나도 이렇게 사랑스레 밥을 차리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내 어릴 적이나 오늘날이나 아직도 ‘밥은 가시내(어머니나 할머니)가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짙은 우리 사회이지만, 아버지이든 어머니이든 가장 따사로운 넋을 담아 밥을 차리면 즐거운 살림이 되리라 느꼈어요. 성평등이나 일나눔을 떠나, 서로 즐겁게 노래하는 삶이 되기를 바랐어요.


.. 집 밖까지 들리는 우렁찬 목소리의 주인공은 옆집 시미즈 아저씨네 할머니. 누구와 이야기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재미있는 모양이다. 오늘 나는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았다. 늦잠만 안 잤어도 엄마랑 말했을 텐데 ..  (26쪽)


  어린이책 《나가사키 나쓰미/주혜란 옮김-아빠 엄마 잘 먹겠습니다》(와이즈아이,2009) 를 읽습니다. 책이름을 보고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이한테 밥을 곱게 차려 주는 이야기가 흐르는가 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책을 읽고 보니 ‘밥 먹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아요.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바깥일을 하느라 집을 으레 비우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바깥일을 하면서 커다란 주먹밥을 싸 주기만 할 뿐, ‘책에 나오는 주인공 아이’하고 함께 놀 겨를이 얼마 없습니다.


  그러면 책이름이 왜 “아빠 엄마 잘 먹겠습니다”일까 갸우뚱하면서 책을 읽습니다. 주인공 아이는 아버지나 어머니하고 함께 지내는 때보다 혼자 지내는 때가 깁니다. 때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 한 마디 할 겨를이 없기도 합니다. 홀로 생각에 잠기는 때가 길고, 어머니가 싸 주는 주먹밥도 그리 예쁘지 않습니다. 그저 커다랗고 투박하기만 합니다.


  이러던 어느 날, 바깥일 때문에 퍽 오래 집을 비운 아버지가 깜짝잔치를 하듯이 집에 왔어요. 그러고는 주인공 아이와 함께 기차를 타고 바다로 갑니다.


.. 드넓은 우주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별들. 나는 그 많은 별들 중 하나에 살고 있다. 아빠 엄마는 물론, 마리도 함께 있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그런 느낌 ..  (38쪽)


  주인공 아이 아버지는 ‘돌을 살피는 사람’이에요. 돌마다 어떤 무늬이고 빛깔이며, 이 돌을 사람들이 어떻게 쓸는지 살피는 일을 합니다. 아이와 함께 바다로 왔으면서도 이곳에서까지 돌을 들여다봅니다. 이러다가 문득 아이한테 이야기를 해요. “두 손 가득 움켜쥐고서, 볼이 미어터지게 먹다 보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단다(54쪽).” 아버지가 들려준 말 한 마디로 아이는 마음을 살짝 풀었을까요. 두 사람은 바닷가에서 나긋나긋 이야기를 주고받아요.


.. “돌멩이가 재미있어요?” “돌멩이에는 지구의 역사가 오롯이 새겨 있단다.” 지구의 역사? 나는 돌멩이 하나를 손에 들고서 쳐다보았다. 하얗고 평범하게 생긴 돌멩이였다 ..  (66쪽)


  커다랗고 투박하기만 한 주먹밥은 무엇일까요. 말 그대로 커다랗고 투박한 주먹밥일 테지요. 그런데 이 못생겼다는 주먹밥에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온 발자국’이 깃들어요. 두 어버이가 바쁘다면서 얼렁뚱땅 크고 투박한 주먹밥을 도시락으로 싸 줄 수 있지만, 두 어버이가 처음 만나서 사귈 무렵, 이런 모양 주먹밥하고 얽힌 애틋한 이야기 있을 수 있어요. 아직 아이한테는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뿐이지만, 서로 살가이 나눈 이야기 있으니, 오래오래 크고 투박한 주먹밥을 즐길 수 있어요.


  돌멩이 하나에 지구 역사가 깃들고, 풀씨 한 톨에 우주 역사가 깃들어요. 눈물 한 방울에 수많은 이야기 서리고, 노래 한 가락에 온갖 꿈 서립니다. 눈짓 하나에 깊은 사랑 감돌고, 손길 한 번에 너른 빛 감돌아요.


  즐겁게 차려서 즐겁게 먹는 밥입니다. 즐겁게 꾸리면서 즐겁게 가꾸는 살림입니다. 즐겁게 배우고 즐겁게 가르칩니다.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놀아요. 아름답게 빛내는 우리 이야기이고 꿈이며 삶입니다. 4346.12.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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