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에 책을 놓아
아이들이 마룻바닥이나 평상이나 방바닥이나 어디에서나 가만히 앉아 무릎에 책을 얹은 모습을 바라보면, 더할 나위 없이 따사롭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이러한 모습이 무척 포근하다. 책상맡에 앉아서 책을 읽는 모습도 사랑스럽고, 엎드리거나 누워서 책을 펼친 모습도 애틋하다.
책을 읽는다 할 적에는 내가 이제껏 살아오며 겪거나 누리거나 헤아리거나 살피거나 받아들이거나 익힌 모두를 내려놓는다. 왜냐하면, 새롭게 배우고 싶어 책을 읽지, 하나도 안 배우고 싶어 책을 읽지는 않는다. 내가 가진 것이 많다 여기는 사람이 굳이 책을 읽을 까닭은 없다. 내 지식이 대단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뭐 하러 책을 읽겠는가.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인다. 무르익은 열매는 저절로 터진다. 익은 벼와 무르익은 열매는 고소하거나 달콤한 내음으로 온 마을 너그럽게 감싼다. 슬기로운 빛이 사람들 사이에서 맑게 흐르며 이야기씨앗 된다. 책 하나 마주하면서 빙그레 웃을 줄 아는 사람들이 스스로 새로 거듭나면서 지구별에 푸른 바람 흐르도록 북돋운다.
자그마한 아이들 자그마한 손길이 자그마한 집살림 살리고, 자그마한 마을살림 살찌우며, 자그마한 지구별 사랑스레 품는다. 오늘도 어제도 모레도 따스한 눈빛으로 신나게 뛰놀고 기쁘게 책을 펼칠 수 있기를 빈다. 4346.12.1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