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안 보는 책읽기

 


  엊그제 문득 곁님이 이야기한다. 인터넷으로 밤에 ‘코미디 프로’를 조금 보는데, 사람들을 웃기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모두 ‘자기 깎아내리기’와 ‘상대 깎아내리기’로 흐른다며, 볼수록 마음이 힘들고 재미없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곰곰이 돌아본다. 내가 텔레비전을 집에 두지 않고 스무 해 넘게 지내는 까닭 한 가지를 천천히 깨닫는다. 방송에서 흐르는 연속극이나 우스개를 보면, 날이 갈수록 참말 ‘억지로 웃기려고 웃기는’ 흐름과 ‘억지로 울리려고 울리는’ 모습이 된다. 연속극이든 우스개이든 하나같이 사랑노래이지만, 여기에서 나오는 사랑은 아름답게 빛나는 사랑이 아니라, 돈·얼굴·몸매·집안·가방끈·이름값에 휘둘리는 겉치레이기 일쑤이다. 도시에서 조용하며 차분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시골에서 즐겁게 흙과 풀과 숲하고 벗삼는 사람들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와 모습을 하나도 모르고 겪은 적 없기에, 연속극이나 우스개에서 못 그릴는지 모른다. 영화도 이와 똑같다. 아름답게 빛나는 눈부신 사랑과 삶을 겪거나 보거나 느낀 적 없으니, 참말 연속극이나 우스개나 영화나, 여기에 시나 소설이나, 또 어린이문학이나 그림책이나, 아름답게 빛나는 눈부신 사랑과 삶을 못 그릴는지 모른다.


  스웨덴 린드그렌 할머님이 아름답고 눈부신 어린이문학을 일군 밑힘은 바로 이녁이 어린 나날 누린 아름답고 눈부신 놀이와 꿈과 시골살이였다. 언제나 아름다운 이웃과 동무하고 어울리면서 놀고 일하고 자랐으니, 이런 밑힘이 고운 빛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와 달리,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새마을운동 언저리부터, 또 일제강점기부터, 또 해방 뒤부터, 조선 봉건사회부터, 참다운 삶하고는 등진 채 권력바라기와 돈바라기와 힘바라기와 이름바라기로 치닫는다. 어른도 아이도 아름다운 꿈이나 사랑하고는 동떨어진다. 그러니, 만들거나 꾸미느나 치고받고 다투며 싸우면서 겉치레로 흐르는 연속극과 우스개와 영화와 문학만 쏟아진다. 사람들도 이런 것에 익숙해 이런 이야기 아니라면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어쩌다가 들여다보더라도 가슴으로 느끼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기 일쑤이다.


  앞으로도 이 흐름이 그대로 가야 할까. 언제까지나 이 모습이 그대로 이어져야 할까.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영화나 방송을 빚는 사람들은 앞으로 이렇게 ‘자기 깎아내리기’와 ‘상대 깎아내리기’에다가 ‘아름다운 사람과 꿈’하고는 등진 채 재미없이 살아야 할까. 4346.12.1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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