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맞자 (도서관일기 2013.12.10.)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겨울눈 아닌 겨울비 내리는 고흥집에서 아이들이 춥다고 집안에서만 꽁꽁거리며 논다. ‘벼리야, 보라야, 우리 고흥은 한국에서 아주 따스한 곳이야. 한겨울에 0도 밑으로 거의 안 떨어지는 날씨잖아. 다른 데에서 눈이 와도 이곳은 싸라기 한 번 휘 불다가 그치곤 하잖아. 바다와 가깝기에 바닷바람은 제법 세지만, 시골아이답게 시골바람 신나게 쐬며 놀아야지.’ 하고 이야기한다. 자, 겉옷 단단히 입고 바깥바람 쐬러 나가자, 하고는 서재도서관으로 간다. 도서관 가는 길에 아이들은 마을빨래터 언저리에서 논다. 마을빨래터를 며칠 사이에 누군가 치웠다. 우리가 치우려고 애를 쓰지만, 때를 놓치면 마을 다른 할매가 치우시곤 한다.


  겨울바람 차다 하는 아이들더러 아직 한겨울조차 아니고, 이런 바람은 시원하다 시원하다 말해야 시원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옷깃을 여미어 주고 모자를 씌워 준다. 씩씩하게 천천히 걷는다. 도서관 들어가는 길목은 풀밭길. 즐겁고 고맙게 풀과 흙을 밟는다. 찬비 내려 풀잎이 조금 미끄럽지만 아이들은 잘 걷는다. 도서관 문을 딴다. 집에서 다 읽은 책을 도서관으로 옮겨 내려놓는다. 두 아이는 도서관에 들어와 골마루를 달리면서 몸을 달군다.


  며칠 앞서 서울로 볼일 보러 다녀오는 길에 노순택 님 사진책 《망각기계》(청어람미디어,2012)와 박노해 님 《나 거기에 그들처럼》(느린걸음,2010)을 비롯해 사진책을 한 짐 장만했다. 오늘은 이 두 권을 도서관으로 옮기면서 문득 생각이 나서 박용수 님 사진책 《민중의 길》(분도출판사,1989)을 오랜만에 꺼내어 넘긴다. 한동안 이 사진책을 들추지 않은 탓인지 종이가 잘 안 떨어진다. 도서관에 둔 모든 책들을 한 해에 한두 차례쯤 모두 주루룩 훑어야겠다고 느낀다. 몇 해쯤 넘기지 않고 두기만 한 책은 종이가 달라붙기도 하는구나. 곧 《민중의 길》을 이야기하는 느낌글 하나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1946년에 처음 나왔고, 한국에서는 1982년에 처음 옮겨 나온 《나는 곰이란 말이에요》라는 그림책도 찾아본다. 이 그림책도 문득 떠올랐다. 새로운 판으로 두 군데 출판사에서 다시 나오기도 했는데,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참 꾸준히 찬찬히 사랑받는다. 요즈음 경상도 밀양에서 벌어지는 일을 떠올리면, 꼭 이 작은 그림책 《나는 곰이란 말이에요》가 눈에 겹친다.


  그림책 《나는 곰이란 말이에요》는 겨울잠을 자고 일어난 곰이 깜짝 놀라는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곰이 살던 숲을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큰 공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사람들은 곰한테 아무 말도 없이 숲을 밀어 없앴다. 아마, 사람들은 ‘숲 소유권’은 ‘사람한테 있다’고 여겼을 테지. 어느 누가 곰한테 ‘숲이 네 보금자리이니?’ 하고 묻겠는가. 범한테도 이리한테도 늑대한테도 토끼한테도, 아무도 ‘네 살 곳을 빼앗아 미안하구나.’ 하고 묻지 않는다. 고속도로를 내거나 발전소를 지을 적에 숲한테 묻는 일이 없다. 전쟁무기 만들어 탱크로 시골마을 가로지르고 폭탄과 총알을 숲에 쏘며 수류탄을 깊은 골짜기에 던지면서 어떤 숲짐승이 죽거나 풀하고 나무가 다치는가를 헤아리지 않는다.


  숲이 없으면 숨이 막혀 죽을 사람들이, 논밭이 없으면 굶어서 죽을 사람들이, 냇물이 더러워지면 목이 말라 죽을 사람들이, 정작 숲이나 들이나 흙이나 풀한테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가만히 따지면, 사람들은 이웃에 있는 사람한테도 묻지 않는다. 도시에서 재개발을 하거나 자동차로 시끄럽게 내달릴 적에 묻지 않는다. 도시 골목길과 시골 고샅길에서도 자동차는 빵빵거릴 뿐,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이런 땅 한국에 어떤 문화가 자랄 수 있을까. 이런 나라 한국에서 어떤 책이 제대로 읽힐 수 있을까.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