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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생일이야 ㅣ 즐거운 유치원 2
나카가와 히로타카 지음, 이정원 옮김, 하세가와 요시후미 그림 / 보물상자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20
나 스스로 기리는 삶
― 오늘은 내 생일이야
하세가와 요시후미 그림
나카가와 히로타카 글
이정원 옮김
보물상자 펴냄, 2010.5.20.
어머니들은 으레 물고기 몸통을 아이들한테 내주고 이녁은 머리나 꼬리만 먹는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철없는 사람들은 어머니는 머리와 꼬리만 좋아하는구나 하고 잘못 알기도 한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쩜 그리 모를까?’ 하고 느낍니다. 나는 어릴 적에도 우리 어머니가 물고기 몸통을 발라서 내 밥그릇에 얹으실 적에도 ‘어머니는 왜 안 드실까?’ 하고 생각하며, 어머니가 안 볼 적에 넌지시 어머니 밥그릇으로 옮겨 놓기도 했어요. 어머니는 나중에 알아채기 마련이라, 어머니 밥그릇으로 옮긴 물고기 살점을 다시 내 밥그릇으로 옮기셨어요.
.. 누구나 생일이 있어요. 여러분은 갓 태어났을 때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 (3쪽)
어머니와 아버지 보살핌을 받으며 무럭무럭 큰 아이는 어느덧 고운 짝을 만나 새로운 살림을 꾸리면서 어여쁜 아이들 낳습니다.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새롭게 어버이 노릇을 하면서 새롭게 태어난 아이들을 보살피고 사랑합니다. 이 아이들 씩씩하고 튼튼하게 살아가기를 빌면서 물고기 살점을 밥그릇에 바지런히 발라 주고, 풀과 밥을 알뜰히 먹도록 거듭니다. 다 같이 즐겁게 먹기를 바라며 풀을 뜯습니다. 서로서로 아끼고 사랑하기를 바라며, 도시를 떠나 시골에 조그마한 보금자리 가꿉니다. 여름에는 그늘이 짙푸르고 겨울에는 푸른 잎사귀 사랑스러운 후박나무 있는 마당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놉니다.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댁으로 찾아가기도 하고, 우리 시골마을에서 놀기도 합니다. 이 아이들은 무럭무럭 커서 이 시골마을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고, 다른 마을이나 도시로 나가서 지낼 수 있는데, 우리 식구한테는 이 시골집 있어 언제라도 이 품에 안길 만해요. 풀바람 쐬고 풀내음 먹으며 풀빛 누릴 시골살이가 사랑스럽습니다.
.. 넌 밤마다 잘 안 자고, 잘 우는 아기였어. 젖을 물려도, 안고 얼러도 응애응애 울기만 했지 .. (16쪽)
생일잔치라고 따로 복닥복닥 차리지는 않습니다. 네 식구 살림이면 한 해에 생일잔치 네 차례 있는데, 네 차례 모두 밥상을 조금 더 꾸밀 뿐, 딱히 남다르지는 않습니다. 생일을 맞이해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 전화를 겁니다. 생일을 맞이해 그동안 걸어온 나날을 돌아봅니다. 생일을 맞이해 앞으로 누릴 삶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하루하루 즐겁게 누리는 삶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즐기는 삶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활짝 웃을 적에 기쁩니다. 어른도 아이도 기운내어 일하고 땀내어 놀 적에 재미있습니다.
생일떡이나 생일빵이나 생일케익이 꼭 있어야 하지 않아요.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있으면 돼요. 서로를 사랑하는 넋이 있으면 돼요. 다 함께 살아가는 이 조그마한 집과 마을 보듬는 눈길 있으면 돼요.
먼먼 옛날부터 바람을 마시고 물을 들이켜며 밥을 먹는 사람이에요. 자동차는 없어도 되고, 아파트는 없어도 됩니다. 학교 졸업장은 없어도 되고, 이런저런 자격증은 없어도 됩니다. 돈이 넉넉하대서 살림을 잘 꾸리지 않아요. 학교를 오래 다녔대서 교사가 될 수 있지 않아요. 사랑이 있을 때에 짝을 지어 살림을 꾸리고는 아이를 낳아요. 사랑이 있을 때에 밥을 맛있게 짓고 빨래를 정갈하게 해요. 사랑이 있을 때에 마을이 이루어지고 지구별이 포근해요.
사랑이 없으면? 사랑이 없으면 전쟁이나 미움이나 따돌림 같은 슬픈 굴레가 찾아들 테지요. 사랑이 없으면 돈이 넉넉하더라도 나눌 줄 모를 테지요. 사랑이 없으면 학력차별이나 계급차별처럼 안쓰러운 바보짓이 넘실거릴 테지요.
.. 배가 아파서 아기를 낳을 때 도와주는 산파 할머니네까지 걸어가다가 그만 미끄러져서 엉덩방아를 쿵 찧고 말았단다 .. (29쪽)
하세가와 요시후미 님 그림이랑 나카가와 히로타카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오늘은 내 생일이야》(보물상자,2010)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어린이집에서 생일잔치를 하기 앞서 ‘저마다 어떻게 태어나 사랑받으며 자랐는가’ 하는 이야기를 어버이한테서 듣자고 합니다. 그래요, 생일잔치란 케익을 앞에 놓고 선물을 받는 자리가 아니에요. 나를 낳은 사랑을 돌아보는 자리예요. 나를 낳은 사랑이 어떤 웃음과 눈물로 고운 빛을 노래했는가 되새기는 자리예요.
생일 맞이한 밥상이 여느 날과 똑같대서 서운하거나 아쉬울 일 없어요. 무엇을 먹든 입이 아닌 마음으로 먹을 줄 알면 돼요. 밥 한 그릇 어떤 사랑과 숨결 담아 지어서 차리는가 읽을 줄 알면 돼요.
숨을 쉴 수 있어 얼마나 고마운가요. 숨을 쉴 수 있도록 풀과 나무가 우리 곁에 있어 얼마나 고마운가요. 물을 마실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가요.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냇물과 골짝물 흐르고 바다가 드넓게 펼쳐지니 얼마나 고마운가요. 밥을 먹을 수 있어 얼마나 고마운가요.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시골이 넓고 푸르며, 논과 밭뿐 아니라 숲과 들이 싱그러이 춤추니 얼마나 고마운가요.
나를 낳은 어버이와, 우리 어버이를 낳은 어버이, 또 이 어버이를 낳은 어버이를 차근차근 되새깁니다. 모두들 같은 지구별에서 같은 바람과 물과 풀을 먹으면서 숨결을 이었어요. 내 핏줄기에는 먼먼 옛날부터 흐르던 바람과 물과 풀이 고스란히 흘러요. 아름다운 빛이 아름다운 사랑 되어 내 몸을 이루고 내 마음을 밝힙니다. 내가 내 나이 한 살 보태어 빙그레 웃음지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우리 어버이와 우리 아이들 삶을 한결 따사롭게 보듬는 사랑으로 즐거운 하루 됩니다. 4346.12.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