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랑 나누는 벗

 


  저녁에 인천에 닿아 배다리 헌책방거리로 걸어간다. 가방에 짊어진 책짐 몹시 무거워 이대로 안 되겠다고 느낀다. 헌책방에 들어 책짐을 택배로 시골집으로 부쳐 달라 말씀을 여쭈어야겠다. 터덜터덜 천천히 골목길 걷는다. 동네 아이 몇 빈터에 앉아서 논다. 조용하고 한갓진 인천 골목길을 걷는다. 땀이 비질비질 흐른다. 헌책방거리에 닿는다. 어두움 내린 헌책방거리에 사람 발길 없다. 단골로 스물두 해째 드나든 책방에 들어간다. 짐을 내려놓는다. 어깨와 등허리와 무릎을 편다. 시큰시큰하다. 숨을 돌린다. 무릎과 다리를 풀며 골마루를 천천히 돌아본다. 책손은 나 혼자이다. 책방지기 한 사람과 책손 한 사람이 책방에서 발소리 내지 않고 서로서로 일을 한다. 책방지기는 책을 손질해서 꽂고, 책손은 마음에 담을 책을 살핀다. 이윽고 다른 책손 들어온다. 다른 책손 더 들어온다. 조용한 책방에 발소리 늘고, 숨소리와 책종이 넘기는 소리 퍼진다.


  인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이백만을 웃돈다 하는데 이 작은 헌책방에 깃든 책손은 몇일까. 모두들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 택배로 맡길 책을 내려놓고는, 이곳에서 책을 몇 권 더 골라서 함께 묶는다. 이제 이 책들은 이튿날 아침에 책방지기 손을 거쳐 우리 시골집으로 즐겁게 날아갈 테지.


  아이들 그림책은 택배꾸러미에 넣지 않는다. 아이들 그림책은 가방이 좀 무겁더라도 씩씩하게 짊어지고 들고 가서, 시골집 대문 열고 대청마루에 짠 하고 풀어놓아 아이들 선물로 보여주고 싶다.


  책방에서 오랜 동무들 만나 이야기꽃 피우면 더없이 즐거울 텐데, 마흔 고개 넘어서는 내 동무들 가운데 책방마실을 누리는 아이는 거의 없다. 그래도, 뭐, 나쁘지 않아. 종이책을 읽지 않더라도 내 동무들이 저희 아이를 낳아 그 아이들 무럭무럭 자라는 웃음빛 마주하면서 삶을 읽을 줄 안다면, 책방마실을 안 하더라도 내가 책빛을 살포시 나누어 주면 될 테니까. 4346.1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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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3-12-05 12:06   좋아요 0 | URL
책빛- 소리내어 말하니까 더 아름답네요.

숲노래 2013-12-05 21:07   좋아요 0 | URL
더없이 아름답기에
자꾸자꾸 '책빛' 이야기를 써서
예쁜 이웃들하고 나누고 싶어요.

앤님 가슴에 아름다운 책빛 언제나 드리우기를 빌어요~

양철나무꾼 2013-12-05 17:50   좋아요 0 | URL
전에 방송에 출연하신 모습, 링크 거신거 트랙백해서 봤어요.
말씀은 조근조근 차분하게 하시는데,
자전거 페달을 밟는 근육이 발달한 것을 보고,
몸도 마음도 참 건강한 분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벼리와 보라는 아빠를 더 기다릴까요, 아빠 손에 들린 그림책을 더 기다릴까요?


숲노래 2013-12-05 21:06   좋아요 0 | URL
아이들은 아버지가 사올 '맛난 먹을거리'를 기다린답니다 ㅋㅋㅋㅋ

그리고, 아버지가 꼬옥 안아 주기를 기다리고요~ ^^

아이들은 "집에 책 많으니 책 더 사지 말아요." 하고 얘기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