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의 325번째 말썽 - 개구쟁이 에밀 이야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비에른 베리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39

 


놀고 뛰니 좋아라
― 에밀의 325번째 말썽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비에른 베리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펴냄, 2003.1.25.

 


  아침에 꽁치를 굽습니다. 얼마만에 집에서 물고기를 굽나 헤아려 봅니다. 여러 달 된 듯합니다. 먼저 스텐팬을 여린 불로 한참 달굽니다. 국 끓이는 냄비에 함께 불을 넣습니다. 국냄비에서 물이 보글보글 끓을 무렵 비로소 꽁치를 물로 헹구고 행주로 물기를 훔친 뒤에 반 토막으로 잘라서 얹습니다. 스탠팬 뚜껑을 덮습니다.


  여섯 살 아이가 “물고기는 어디에서 살아?” 하고 묻습니다. “물고기는 물에 살지.” “물고기에도 뼈가 있어?” “산 목숨은 모두 뼈가 있어.” “물고기도 눈 있어?” “물고기도 눈이 있지.” 함께 밥상맡에 앉은 세 살 아이가 누나 말을 하나하나 따라합니다. “물고기는 어디에서 살아?”부터 “물고기도 눈이 있어?”까지 똑같이 묻습니다. 나는 작은아이한테 똑같은 말로 이야기를 건넵니다.


  이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해 내어 이것저것 놀이를 즐기곤 합니다. 나무막대기 하나가 놀잇감 되고, 호미가 좋은 장난감 됩니다. 이 아이들은 나무막대기와 호미로 노는 삶을 어디에서 배웠을까요. 어른들 일하는 모습을 보고서 따라할까요. 오랜 옛날부터 몸에 배어 이어온 놀이일까요.


  아이들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노라면, 나도 어릴 적에 저렇게 놀았지 하고 떠오릅니다. 내가 미처 떠올리지 못하는 아주 어린 나날 이렇게 놀았을까 하고 돌이키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어머니 아버지 어릴 적 놀던 모습이 우리 아이들 어린 나날 노는 모습이 될 테지요. 이 아이들 어릴 적 노는 모습은 앞으로 한 해 두 해 흘러 새 아이들 태어날 적에 고스란히 이어갈 테고요.

 


.. 엄마는 에밀이 말썽꾸러기라느니 사고뭉치라느니 하는 얘기는 별로 듣고 싶지 않았거든요. 물론 엄마도 말썽꾸러기 에밀 때문에 골치가 지끈거리긴 했지만, 리나 누나까지 이러쿵저러쿵 흉을 볼 건 없잖아요 ..  (8쪽)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이 글을 쓰고 비에른 베리 님이 그림을 넣은 《에밀의 325번째 말썽》(논장,2003)이라는 책을 읽으며 빙그레 웃습니다. 이 이야기책에 나오는 장난꾸러기 또는 말썽꾸러기 에밀은, 바로 에밀네 어머니 모습이요 아버지 모습입니다. 에밀네 어머니와 아버지도 어릴 적에 에밀 못지않게, 또는 에밀보다 더 짓궂게, 또는 에밀보다 살짝 덜 짓궂게 놀았으리라 생각해요. 그러니, 에밀네 누나가 에밀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을 할 적에 썩 듣고 싶지 않을 만해요. 에밀네 누나도 에밀만 한 아이였을 적에 똑같이 말썽꾸러기에 장난꾸러기였을 테고요.


.. 에밀과 이다는 땔나무를 넣어 두는 궤짝 위에 앉아 눈을 반짝이며 구경하고 있었어요. 아빠가 파리를 쫓아다니는 모습은 무지무지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답니다 ..  (13쪽)

 

 


  즐겁게 뛰놀던 이야기는 오래도록 몸에 남습니다. 신나게 뛰놀던 하루는 두고두고 마음에 깃듭니다. 즐겁게 뛰놀지 못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도 놀 줄 몰라요. 신나게 뛰놀지 않은 아이는 어른이 된 뒤에 다른 어른들과 어깨동무하는 기쁨을 좀처럼 누리지 못해요.


  모르는 일을 모르지요. 혼자서 놀든 형제랑 놀든 동무랑 놀든, 즐겁게 놀던 어린 삶이 있을 때에 즐겁게 일하는 어른으로 씩씩하게 살아요. 신나게 놀던 어린 나날있을 적에 신나게 일하며 어깨동무하는 어른으로 야무지게 삽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아이들은 어른들 말을 차곡차곡 물려받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넋을 하나둘 이어받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삶을 고이 내려받습니다. 어른들이 맑고 착하게 말할 적에 아이들도 맑고 착하게 말해요. 어른들이 참답고 아름답게 일할 적에 아이들도 참답고 아름답게 놀아요. 어른들이 슬기롭고 올바르게 삶을 일굴 적에 아이들도 슬기로운 눈빛 밝히며 올바른 마음 다스려요.


.. 에밀은 조각칼 다루는 솜씨가 무척 뛰어났어요. 에밀은 나무 깎기가 특기였답니다. 말썽을 부려서 목공실에 갇힐 때마다 나무 인형을 깎았으니까요. 목공실 선반 위에는 지금까지 에밀이 깎은 나무 인형 324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답니다 ..  (24쪽)


  에밀은 앞으로 조각꾼이 될까요? 어쩌면 그럴는지 모르지요. 그러나,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살자면 누구나 조각꾼이에요. 누구나 목수요 누구나 대장장이입니다. 스스로 집을 짓고 스스로 흙을 일구어요. 스스로 씨앗을 갈무리하고 스스로 열매를 땁니다.


  에밀은 개구진 장난꾸러기입니다만 재미나게 놀 줄 알아요. 에밀은 못 말리는 말썽꾸러기입니다만 아름답게 꿈꿀 줄 알아요.


  아이한테 무엇을 바라나요. 아이가 고작 대여섯 살밖에 안 되었는데, 영어노래 줄줄 외기를 바라나요. 아이가 기껏 초등학교 다니는데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을 몽땅 100점 받기를 바라나요. 아이가 한껏 푸르게 빛나는 열대여섯 열예닐곱 고운 나이인데 시멘트교실에 새벽부터 밤까지 갇힌 채 입시지옥에서 허덕이기를 바라나요.


  어른으로서 아이한테 무엇을 물려주고 싶은가요.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어떤 사랑과 꿈을 보여주고 싶은가요. 우리는 어른과 아이로서 이 땅에서 어떤 삶 가꾸고 돌볼 때에 즐거운 하루가 될까요. 4346.11.2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3-11-25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은 어른들 말을 차곡차곡 물려받습니다. "
- 이 말이 사실 제일 겁나지요. 그래서 더욱 조심해야겠지요.^^

뛰노는 아이들이 성격도 좋고 우울증에 걸릴 확률도 적다고 합니다.
놀지 못하게 하고 공부만 시키려는 학부모들이 이런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어요...

숲노래 2013-11-26 04:21   좋아요 0 | URL
누구나 이런 대목 잘 헤아리면
이 나라에는 오로지 평화와 사랑만 있을 텐데,
막상... 이런 대목을 헤아리지 못하도록 스스로 옭아매는 분들이
너무 많은 듯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