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여행법 - 사진편 - <하루키의 여행법> 에세이편의 별책 사진집, 개정판 하루키의 여행법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마스무라 에이조 사진 / 문학사상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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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70

 


우리 이웃을 느끼는 사진마실
― 하루키의 여행법 : 사진편
 마스무라 에이조 사진
 무라카미 하루키 글
 문학사상사 펴냄, 1999.2.20.

 


  마스무라 에이조 님이 찍은 사진에 무라카미 하루키 님이 글일 붙인 《하루키의 여행법 : 사진편》(문학사상사,1999)은 사진책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님이 이녁이 여행을 하며 누린 삶을 글책으로 하나 내면서 사진책으로 하나 내는데, 손수 사진을 찍지 않고, 살가운 여행벗인 마스무라 에이조 님 손을 빌어 사진책을 선보입니다.


  왜 스스로 사진을 찍지 않고 다른 사람 손을 빌어 사진책을 내놓을까요? 스스로 얼마든지 사진을 찍을 만한데 왜 다른 사람 손으로 사진을 찍고 책을 내놓을까요?


  가만히 생각하면, 여행을 다니며 보고 듣고 겪고 마주하는 모든 이야기는 ‘내 삶’이면서 ‘네 삶’입니다. 나들이를 다니면서 지나가는 골목이나 마을은 ‘이웃이 살아가는 집’입니다. 우리는 나들이길이나 마실길에 언제나 ‘이웃집 구경’을 하는 셈입니다. 누군가 내 이웃이나 동무가 우리 집 앞을 지나간다면 이녁도 ‘이웃집 구경’을 하는 셈입니다.


  나들이를 다니며 아름답구나 싶은 마을을 지나간다면, 이 마을이 왜 아름다울까요? 바로 이 마을에서 보금자리 이루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일구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다운 집을 지어 아름다운 살림을 누리니, 이런 집들 모인 마을은 아름다울밖에 없어요.


  먼길 나들이를 다니든 가까운 마실을 다니든, 여행길에 선 사람들은 ‘이웃 사귀기’를 하는 셈입니다. 내 이웃이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고 돌아보는 셈입니다. 여행길에 어느 밥집에 들러 밥 한 그릇 먹는다 할 적에, ‘나는 손님’일 테지만, 또 ‘나는 길손’일 테지만, 이 밥집이 있는 마을에서 살아가며 이 밥집을 으레 들르는 사람은 ‘마을사람’이에요. 내가 밥 한 그릇 맛있게 먹건 맛없다고 느끼며 먹건, 이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늘 이 밥을 먹을 테지요.

 

 


.. 그때까지 그는 어느 사진 주간지의 일을 하고 있었다. 상당히 능력 있는 파파라치(프리랜서 사진가)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을 계속하느라 스트레스가 쌓이고 녹초가 되어 버린 그는 과감히 그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작은 라이카 카메라를 손에 들고 혼자 만주까지 가서 자신이 찍고 싶은 사진을 찍어 온 것이다. 솔직히 말한다면, 에이조 군은 결코 재능 있는 사진작가는 아니다. 칼날에 비유하자면 에이조 군의 작품은 날이 잘 선 예리한 나이프나 면도날 같은 느낌보다는 시골 뒷마당에서 장작을 쪼개는 데 쓰이는 손도끼 같은 투박한 느낌을 준다 ..  (5쪽)


  사진여행일까요, 여행사진일까요. 어느 쪽이 되어도 됩니다. 사진을 찍는 여행이 되어도 되고, 여행을 하며 찍는 사진이 되어도 됩니다. 스스로 즐거운 길을 걸어갈 때에 즐겁습니다. 참말 사진을 찍는 여행을 다닐 수 있고, 여행을 누리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누군가는 ‘여행을 하면 사진만 남는다’고 여길 만합니다. 누군가는 ‘여행을 하면 마음속에 이야기가 남으니 사진은 없어도 된다’고 여길 만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님은 ‘사진을 남기지 않고 마음속에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고, 사진길 걷는 벗님을 불러 함께 나들이 누리면서 사진벗한테는 ‘여행을 하며 남기는 사진’을 찍도록 했다고 할 만합니다. 둘이 서로 다른 눈길로 함께 다니고, 둘이 서로 다른 눈빛으로 삶과 이웃과 사람을 마주한다고 하겠습니다.


  한 집안에서 살아가는 아이와 어른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아이 눈높이와 어른 눈높이는 달라요. 아이 눈썰미와 어른 눈썰미도 다르지요. 그렇지만 아이와 어른은 서로 즐겁게 가르치고 배우면서 살아갑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살아가요.


  마음으로 담는 여행과 사진으로 담는 여행은 어떤 빛이 될까요. 마음빛과 사진빛이 만나면 서로 어떠한 이야기가 태어날까요.

 


.. 여기에 담긴 사진들은,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한 여행의 기록인 셈인데, 단지 고베 지역만 따로 행동했다. 나는 내 고향인 니시노미야로부터 고베까지의 길을 혼자서 걸어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에이조 군은 그로부터 반 년쯤 훕, 내가 걸었던 길을 혼자서 걸어가며 여기에 담긴 사진들을 찍어 주었다. 이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똑같은 풍경을 똑같은 각도에서 봤는데도 우리는 정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구나 하고 새삼스레 감탄하게 된다 ..  (8쪽)


  혼자서 두 가지 길을 걸을 수 있어요. 혼자서 신나게 마음빛 살찌우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 또 바지런히 사진빛 북돋울 수 있어요. 하려고 하면 하지요. 하려고 안 하기에 못 합니다.


  아이가 자라나는 흐름을 사진으로 담는 사람은 아무리 일이 바쁘고 벅차거나 힘겨워도 ‘아이가 자라나는 흐름’을 붙잡아 사진으로 담습니다. 아이가 자라나는 흐름을 사진으로 담을 뜻이 굳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일이 적거나 느긋하거나 수월한 삶이어도 ‘아이가 자라나는 흐름’을 으레 놓치거나 사진으로 못 담습니다.


  마음을 먹는 결에 따라 사진이 달라요. 마음을 즐겁게 다스리지 못하면 사진장비가 대단하더라도 사진을 못 찍어요. 마음을 즐겁게 다스리면 사진장비가 몹시 허술하더라도 사진을 잘 찍어요.


  비싼 만년필이 있어야 글을 잘 쓰지 않습니다. 값진 붓이 있어야 글을 잘 쓰지 않습니다. 비싼 공책이나 수첩이 있어야 글을 잘 쓸까요. 성능 빼어난 컴퓨터를 들여야 글을 잘 쓰나요.


  몽당연필로도 글을 얼마든지 씁니다. 낡은 컴퓨터로도 글을 신나게 씁니다. 헌 공책에도 글을 쓰지요. 한쪽은 빈 광고종이에도 아름다운 시와 노래를 적을 수 있습니다.

 

 


.. 오아하카 교외에서. 비가 그친 저녁이 되면 멕시코는 넓어 보이는 나라이다. 어디까지나 이런 도로와 도시, 하늘이 계속된다. 이따금 도대체 인간은 무엇 때문에 여행 따위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루함의 형태를 다른 모양으로 바꿔 놓고 있을 뿐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 치아파스는 역사에 짓밟혀지고 무력에 상처입은 고장이다. 그곳은 가난하고, 온통 모순과 슬픔이 배어나는 고장이다. 한 발만 들여놓아도 여행자는 그 분위기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심각한 문제를 초월하여, 이 고장에는 어쩐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다. 거기에는 슬픔 속에 아름다움이 있고, 치열함 속에 조용함이 있으며, 가난함 속에 어떤 종류의 생각이 있었다 ..  (40, 48쪽)


  아침볕이 따스합니다. 봄날 아침볕과 여름날 아침볕과 가을날 아침볕이 사뭇 다르지만, 언제나 아침볕이 따스합니다. 겨울날에도 아침볕은 따스해요. 꽁꽁 얼어붙은 들과 숲과 마을에 보드라운 기운이 퍼집니다. 푹푹 찌는 한여름이라 하더라도 아침볕은 보드라운 기운으로 찾아옵니다.


  아침마다 사진을 찍는 누군가 있으면, 이 보드라운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며 한 장 두 장 담으리라 생각합니다. 새벽빛과 낮빛과 저녁빛과 밤빛이 사뭇 다른 기운 또한 하나하나 느끼며 사진으로 알뜰살뜰 엮으리라 생각합니다. 빛이란 삶을 밝히는 빛이요, 빛이란 삶을 살리는 빛이고, 빛이란 삶을 사랑하는 빛이며, 빛이란 삶을 노래하는 빛입니다.


  사진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언제나 다른 빛을 다 다르게 맞아들여 그때그때 갈무리할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재미난 예술입니까. 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삶입니까. 참말, 본 대로 그때그때 이야기로 빚어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참으로, 느낀 대로 그곳에서 곧바로 이야기 하나 빚는 사진입니다.


  1/100초, 또는 1/1000초, 때로는 1/10초, 어느 때에는 1/5초 사이에 찰칵 하고 움직이면서 빛과 삶과 이야기가 흐릅니다. 눈을 살짝 감았다가 뜨는 사이에 내 머릿속에 이야기 한 자락 아로새기듯, 사진기도 찰칵 하고 셔터막을 내렸다 올리면서 필름이나 디지털파일에 이야기 한 타래 돋을새김합니다.

 

 


.. 노몬한 앞쪽에서 촬영한 하루하 강. 직접 눈으로 보면 정말 멍해질 만큼 광활한 풍경이다. 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희미하게 흐려져 있는 아침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나’라는 인간을 만들어 온 이 땅에 대해 생각하고, 이 땅에 의해 만들어진 ‘나’라는 한 인간에 대해 생각한다. 스스로 선택할 길이 없는 일들에 대하여..  (80, 146쪽)


  사진으로 빛을 찍을 적에는 삶을 찍습니다. 빛이란 삶이기 때문입니다. 사진으로 빛을 찍으면서 이야기를 남깁니다. 빛이란 이야기이기 때문이에요. 햇빛을 받아 온누리에 무지개빛이 흐릅니다. 햇볕을 쬐며 온누리 목숨이 살아납니다. 햇살을 드리우면 온누리에 푸른 숨결 넘실거립니다.


  사람은 글과 그림과 사진, 이렇게 세 갈래로 이야기를 남깁니다. 사람은 춤과 노래와 몸짓, 이렇게 세 가지로 이야기를 엮습니다. 사람은 밥과 옷과 집, 이렇게 세 살림으로 이야기를 꾸립니다. 사람은 꿈과 사랑과 마음, 이렇게 세 빛으로 이야기를 빚습니다.


  이웃을 느끼면서 내 모습을 더 살가이 느낍니다. 이웃을 만나면서 내 속모습을 새롭게 만납니다. 이웃과 도란도란 말을 섞으면서 내 넋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이웃과 밥을 나누고 꿈을 나누며 사랑을 나누는 사이, 어느새 내 길이 어디인지 알아차립니다.


  나는 너한테 찾아갑니다. 너는 나한테 찾아옵니다. 나는 내 사랑을 담아 너한테 띄웁니다. 너는 네 사랑을 실어 나한테 보냅니다. 이야기가 흐르고 생각이 흐릅니다. 삶이 흐르고 사랑이 흐릅니다.


  즐겁게 노래하니 즐겁고, 즐겁게 사진을 찍으니 즐겁습니다. 삶을 이루는 바탕이란 즐거움입니다. 사랑을 이루는 바탕이란 즐거움이에요. 그리고, 사진을 이루는 바탕이란 즐거움이지요. 즐겁지 않다면 노래하지 못하고, 즐겁지 않으면 사랑하지 못해요. 즐겁지 않은데 살아갈 수 없어요. 즐겁지 않은데 사진기를 손에 쥐지 못해요.

 


.. 캐나다에서 국경을 다시 넘어 디트로이트로 향했다. 그리고 오하이오, 인디애나를 거쳐 시카고로 갔다. 여기까지는 그다지 재미있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지루하기 그지없는 여행이었다. 그냥 차를 몰고 가면서 차창에 비치는 그저 그렇고 그런 풍경을 볼 따름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루하지만은 않았다. 지루하다고 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꽤 자주 경찰이 차를 정차시켰기 때문이다 ..  (106쪽)


  여행을 나서는 사람은 즐거움을 찾고 싶습니다. 즐겁고 싶어 나들이를 갑니다. 즐겁지 않으려고 여행을 나서는 사람이 있을까요. 즐겁기 싫어 나들이를 가는 사람이 있나요.


  차근차근 삶을 돌아보셔요. 즐겁기 싫어 밥을 먹을까요? 즐겁기 싫어 잠을 잘까요? 즐거기 싫어 일을 할까요? 즐겁기 싫어 놀까요? 즐겁기 싫어 사랑을 하거나 꿈을 꿀까요?


  즐겁고 싶으니 꽃을 바라보며 꽃내음 맡아요. 즐겁고 싶기에 아름드리나무를 포근히 껴안으면서 나무숨을 쉽니다. 즐겁고 싶어 숲에 깃들어 풀밭에 드러누워 나무그늘 누립니다. 즐겁고 싶어 노래를 지어 불러요. 즐겁고 싶으니 피아노를 치고 피리를 불며 악기를 탑니다. 즐겁고 싶어 밥을 짓지요. 즐겁고 싶으니 밥을 차려 동무나 이웃을 불러 함께 먹어요. 즐겁고 싶기에 빨래를 하고, 옷을 개며, 바느질을 합니다.


  그렇다면, 전쟁을 일으키는 정치꾼이나 부자는? 밥그릇 채우기에 바쁜 사람들은? 대학입시에 목을 매달며 동무를 짓밟고 올라서야 하는 아이들은? 아이들을 입시지옥에 내몰매 채찍질을 하는 교사와 어버이는? 이들도 즐거움을 찾는가요? 이들도 즐거움을 아는가요? 이들도 즐거운 길에 서나요?


  즐거운 사람은 웃으며 노래합니다. 즐거운 사람은 어깨동무를 합니다. 즐거운 사람은 바쁘지 않습니다. 즐거운 사람은 서두르지 않습니다. 즐거운 사람은 농약을 뿌리거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습니다. 즐거운 사람은 총칼을 내밀지 않습니다. 즐거운 사람은 쳇바퀴질을 하지 않습니다. 즐거운 사람은 홀가분하게 여행길에 나서요. 즐거운 사람은 보금자리를 곱게 가꿉니다.

 


.. 그것은 오래된 옛날 이야기이다. 이곳에 바다가 있고, 산이 있었던 무렵의 이야기이다. 아니, 바다나 산은 지금도 분명히 있다. 물론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지금 여기에 있는 것과는 다른 바다와 산의 이야기인 것이다 ..  (150쪽)


  아침입니다. 아이들이 잠에서 깹니다. 조잘조잘 떠들면서 아침을 엽니다. 이 아이들은 아침마다 딱새처럼 딱딱거리며 노래합니다. 이 아이들은 아침마다 제비처럼 재재재재 노래합니다.


  얼마나 즐거울까요. 새롭게 맞이하는 아침이란 얼마나 즐거울까요. 참으로 즐겁겠지요. 새 하루 다시 열려 새롭게 놀 수 있어요. 아주 즐거울 테지요. 개운하게 자고 일어났으니 기운이 넘쳐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즐거운 삶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사진을 읽는 사람은 즐거운 삶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즐거운 사랑을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사진을 읽는 사람은 즐거운 꿈을 천천히 짓는 사람입니다.


  사진여행 함께 해요. 여행사진 함께 찍어요. 사진삶 함께 즐겨요. 삶사진 함께 찍어요. 사랑하는 삶을 사진으로 찍고, 삶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사진을 읽어요. 4346.11.2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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