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태어나는 곳

 


  책은 가슴에서 태어납니다. 스스로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 가슴에서 책이 태어납니다. 이름난 작가 손에서 책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뛰어난 사람들 손으로 책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이름이 안 났거나 뛰어나지 않아도 됩니다. 조용히 시골에서 살아가든, 말없이 비질을 하거나 밥을 끓이건, 공장 기계를 돌리거나 분필을 쥐든, 스스로 삶을 사랑하면서 가슴속으로 꿈을 키우는 사람들이 시나브로 책을 낳습니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일굽니다. 텔레비전에서 본 이야기 아닌, 책에서 본 이야기 아닌, 누구한테서 들은 이야기 아닌, 바로 스스로 살아냈고 스스로 살아오며 스스로 살아갈 이야기가 책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책으로 태어나는 이야기란 내 이야기입니다. 책에 담는 이야기는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책으로 엮어 나누는 이야기란 내가 삶을 사랑한 이야기입니다.


  서울과 진주, 진주와 서울, 이렇게 오랜 나날 오가며 차곡차곡 모은 버스표를 고무줄로 묶습니다. 오랜 나날 아로새긴 버스표꾸러미는 고스란히 이야기샘입니다.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해도, 가만히 쓰다듬기만 해도, 이 버스표꾸러미에서 이야기꽃이 피어납니다. 다른 사람들 여행책을 읽지 않아도 돼요. 내가 다니는 길을 곰곰이 돌아볼 수 있으면 돼요. 버스를 타거나 전철을 타며 집과 일터를 오갔어도, 스스로 삶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버스표와 전철표 하나가 바로 이야기밭 됩니다. 버스도 전철도 아닌 두 다리로 걸어다녔으면, 종아리에 붙은 힘살과 발바닥에 박힌 굳은살이 바로 이야기나무 됩니다. 자전거로 찬찬히 달리며 일터나 학교를 다닌다면, 천천히 낡고 닳는 자전거가 바로 이야기숲 됩니다.


  삶에서 이야기 자랍니다. 이야기 자라 책이 태어납니다. 책이 태어나 책방이 생깁니다. 책방이 생겨 책빛 찾는 책마실꾼 하나둘 나타납니다. 아주 조그마한 곳에 따사로운 볕 깃들면서 싹이 트고 줄기가 오르며 꽃이 피어요. 아주 조그마한 꽃이 맺는 씨앗이 새로운 꽃을 낱아 이윽고 꽃밭이 되어요.


  눈을 크게 뜨지 않아도 돼요. 눈을 살가이 떠요. 눈을 사랑스레 떠요. 눈을 따사롭게 떠요. 그러면, 바로 내 삶자리에서 작은 책 하나 태어납니다. 4346.11.1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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