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빛
도시는 나무를 밀어 없앤다. 도시는 시멘트집을 짓고 아스팔트길을 닦는다. 쇠붙이와 시멘트를 써서 전봇대를 세우고, 전깃줄이 길고 어지러이 늘어지며, 쇳덩이로 만든 자동차가 구른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물건이 그득하며, 청소 일꾼이 쉴새없이 돌아다녀도 쓰레기를 미처 치우지 못한다. 군데군데 나무를 심기는 하지만, 도시에서 나무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몹시 드물다. 아니,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나무를 볼 겨를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높다란 건물에 가리고, 자동차에 치인다. 자가용을 몰거나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는 동안 나무를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아예 없다 할 만하다.
시골에서는 흙집을 시멘트집으로 바꾼다. 흙과 짚으로 얹던 지붕을 슬레트(석면)로 갈아치우지 않으면 독재정권과 읍·면 공무원과 이장들이 닦달했으며, 이제는 양철조각이나 시멘트기와로 바꾸라고 새삼스레 들볶는다. 나무가 거추장스러워 뽑거나 베어 찻길을 닦고, 흙바닥 고샅길에 시멘트를 덮는다. 흙바닥 마당도 시멘트로 덮고, 도시에서 놀러올 관광객을 기다리며 숲과 멧골에 새 찻길 낸다며 나무를 잔뜩 베어 넘긴다. 탱자나무와 찔레나무로 이루어지던, 또 싸리나무로 이루어지던 울타리는 시멘트블록담에 밀린다. 텃밭도 무논도 모두 농약투성이 된다. 논둑도 밭둑도 농약바람을 맞으며 모조리 타죽는다. 개구리도 풀벌레도 멧새도 농약을 마시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자취를 감춘다.
나무가 있기에 종이를 쓰지만, 종이를 쓰는 어느 누구도 나무를 떠올리지 않는다.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들기에 광고종이도 책도 참고서도 교과서도 태어나지만, 종이로 된 광고전단이나 책을 손에 쥔 이들 가운데 나무를 헤아리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한국에서 자라던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들었을까? 이웃나라 숲사람 삶터를 밀며 나무를 베었기에 한국사람이 종이를 쓰고 책을 펴낼 수 있는 줄 얼마나 깨달을까? 도시사람이 숨을 쉴 수 있는 까닭은 도시에 공기정화기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도시가 커지고 늘어나더라도, 아직 도시를 크게 품고 껴안으며 어루만질 만큼 드넓은 숲과 들과 멧자락과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도시에서 일자리 찾고 대학교 다니며 돈을 벌더라도, 시골이 있어야 밥을 먹고 물을 들이켜며 바람을 마신다. 사람들이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뒤 다시 도시에서 아이를 낳더라도, 시골이 있어야 삶과 사랑과 꿈을 일굴 수 있다. 그런데, 시골은 시골스러움을 잃는다. 시골에서 풀과 나무와 꽃을 힘을 잃는다. 빛은 어디에 있을까. 빛은 어디로 갔을까. 빛은 어떤 모습과 무늬일까. 4346.11.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