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빚는 무늬

 


  새책방에서는 ‘잘 팔리는 책’ 몇 가지를 잔뜩 쌓아 놓지만, 헌책방에서는 ‘잘 팔리는 책’ 몇 가지를 잔뜩 쌓지 못한다. 아무리 잘 팔리는 책이라 하더라도 헌책방에서는 똑같은 책을 잔뜩 쌓으면 빛을 읽는다. 헌책방에서 잘 팔리는 책은 잔뜩 들어오지 않기도 한다.


  헌책방에서는 온갖 책을 골고루 쌓아 놓는다. 이 책과 저 책을 섞어 쌓아 놓는다. 사람들이 곧 사 갈 만한 책과 사람들이 쉬 사 가지 않을 만한 책을 나란히 쌓아 놓는다. 사람들이 이내 알아볼 만한 책과 사람들이 좀처럼 못 알아보는 책을 사이좋게 쌓아 놓는다.


  ‘잘 팔리는 책’이 수북히 쌓인 새책방이 언뜻 보기에는 한결 깔끔해 보인다 할 수 있다. 헌책방은 다 다른 책이 다 다른 모양새이기에 뒤죽박죽 울퉁불퉁 알록달록한 무늬가 된다. 그런데, 다 다른 책이 함께 놓이는 헌책방 무늬가 외려 재미나기 일쑤요, 새로운 빛이 나기 마련이다. 마치 온 마을 아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은 무늬와 빛이라고 할까.


  얌전한 아이도 있겠지. 개구진 아이도 있겠지. 웃는 아이 얼떨떨한 아이 있겠지. 마구 뛰는 아이와 춤을 추는 아이 있겠지. 헌책방 책시렁 책들을 바라볼 때면, 온갖 아이들이 저마다 다른 기운으로 저마다 다른 빛을 뽐내며 뛰어노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서로 다르다 할 책이 뜻밖에 참으로 잘 어울리는구나 하고 느낀다. 갈래가 다르고, 태어난 해가 다른데, 이런 책 저런 책이 생각보다 훨씬 잘 어울리는구나 하고 느낀다.


  새책방은 서로 엇비슷한 또래 아이만 모은 곳이요, 헌책방은 나이도 삶도 마음도 고향도 모두 다른 아이와 어른을 모은 곳이라 할 만하다고 느낀다.


  헌책방 책을 살피면, 먼 나라 할매와 먼 옛날 할배가 한 자리에 있다. 갓 태어난 아기와 시골 젊은이와 국수집 아재가 한 곳에 있다. 하는 일과 걸어가는 길이 모두 다른 사람들이 한 마을에서 어깨동무하며 살아간다고 느낀다. 삶으로 빚는 무늬가 책으로 빚는 무늬가 된다. 4346.11.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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