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크레이터 The Crater 3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72

 


살고 싶은가, 죽고 싶은가
― The crater 3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
 도영명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1.9.25. 9000원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The crater》(학산문화사,2011)는 셋째 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짓습니다. 셋째 권 마지막 꼭지에서 책이름 ‘더 크레이터’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달을 살펴보려는 과학자이자 우주비행사가 달까지 가서 잘 내려앉지만, 그만 말썽이 생겨 우주선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홀로 달에 남습니다. 그런데 달에 있는 분화구에서 나오는 김이 홀로 남은 우주비행사 몸에 닿으니 다시 살아나요. 이 우주비행사는 홀로 달에 남아 죽고 살기를 되풀이합니다.


  이동안 지구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지구사람은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요.


- “하지만 말이다. 만약 도중에 어떻게든 자신의 직업에 의문이 생긴다면, 만화가의 길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는, 팔각형의 저택으로 오거라. 그러면 딱 한 번 너는 다른 운명으로 바꿀 수 있다.” “다른 운명?” ”그래, 만약 네가 만화가가 되지 않았다면 무엇이 되었을지, 또 하나의 세계에 있는 자신으로 바꿀 수가 있는 거란다. 단 한 번뿐이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을 리가 있나요. SF도 아니고.” “류이치, 이 우주는 말이다, 네가 모르는 무한의 세계가 있단다. 모두가 조금씩 다른 세계이지.” (12∼13쪽)


  지구사람은 무기를 만드느라 바쁩니다. 무기를 만든 지구사람은 엄청나게 만든 무기로 전쟁을 하느라 바쁩니다. 전쟁을 하는 지구사람은 서로를 죽이면서 스스로 죽느라 바쁩니다. 서로 죽이고 죽으면서 지구사람은 지구별을 아주 망가뜨려 숲도 들도 바다도 땅도 모조리 무너뜨립니다.

  달에서 홀로 남은 우주비행사는 이 모든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봅니다. 지구사람 아닌 달사람이 되고 만 우주비행사는 지구별에 살아남을 사람이 아무도 없겠다고 깨닫습니다. 무기를 만들어 전쟁을 해대며 서로 죽이고 죽는 통에 어느 누구도 지구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서로 죽이고 죽는 사이에 어느 누구도 숨을 곳이 없으며, 애써 숨는다 하더라도 핵폭탄이 터져 흐르는 방사능 때문에 살아남을 길이 없습니다. 방사능이 안 닿는 곳에 숨더라도 먹을 밥이나 마실 물이나 바람이 없습니다.

  지구사람은 왜 어리석은 길을 가고야 말까요. 지구사람은 왜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를 안 깨달을까요.


  무기를 만들면 전쟁을 할밖에 없습니다. 군대를 만들면 전쟁하는 데에 쓸밖에 없습니다. 군인을 키워 어디에 쓰나요. 전투경찰도 경찰도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예전 안기부나 오늘날 국가정보원은 어떤 구실을 하는가요. 참으로 나라를 지키려 한다면 국방부나 국가정보원이 아닌 평화부가 있어야 하고, 사랑을 나눌 일꾼이 있어야 합니다. 평화부란 스스로 흙을 일구어 밥과 옷과 집을 낳는 사람을 키우는 곳입니다. 사랑을 나눌 일꾼이란 남한테 일을 시키는 사람이 아닌, 스스로 흙을 일굴 줄 아는 사람입니다.


  무기 만들기를 그치지 않으면 전쟁이 그치지 않습니다. 군대를 하루빨리 없애지 않으면 평화가 찾아오지 않습니다. 온통 전쟁 이야기만 있는 역사책을 들여다보셔요. 제아무리 잘났다 하는 권력자라 하더라도 전쟁으로는 평화를 거두지 못합니다. 전쟁을 일으켜 땅을 아무리 넓혀 본들 백 해를 잇지 못합니다. 전쟁은 새로운 전쟁을 부를 뿐입니다. 전쟁은 새로운 전쟁을 낳을 뿐입니다. 전쟁은 사람들 등허리를 휘게 할 뿐입니다. 전쟁은 이 나라뿐 아니라 이웃 여러 나라 땅과 숲과 물과 바람을 더럽힐 뿐입니다.

 


- “아아, 출구인가! 바깥 바람이.” “조금만 더 힘을 내. 별이야! 저것 봐! 너랑 이렇게 단둘이 있을 수 있는 날을 기다렸어. 지금은 단둘뿐이야.” ‘이제 나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사카이의 말을 멍하니 듣고 있었다.’ (67쪽)
- “너,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라거나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아 줄래? 그리고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얘기해서도 안 돼. 약속할 수 있겠니?” “약속이야 하겠지만 대체 무슨 일인지 가르쳐 주시겠어요?” “실은, 믿어지지 않겠지만, 미도리는 인간이 아니야.” “인간이 아니라뇨? 아하, 아하하, 농담하지 마세요. 이 가게에서 일하고 있잖아요, 지금도.” “미도리는 말이지, 저 샘에서 사는 님프란다. 님프란 존재를 아니? 님프란, 물 주변에 사는 요정이야.” (87쪽)


  사람이 살아갈 길은 오로지 하나입니다. 평화요 사랑입니다. 평화로운 사랑과 사랑스러운 평화, 이 길 하나가 바로 사람이 살아갈 길입니다. 평화로운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평화를 누려야 살아갈 수 있어요. 이밖에 다른 삶길은 없습니다.

  무기를 만드느라 돈과 품과 겨를을 쓰지 말아야 합니다. 저마다 밭을 일구고 숲을 돌보는 데에 온마음과 온힘을 기울일 노릇입니다. 전쟁준비나 전쟁훈련에 돈과 품과 겨를을 바치지 말아야 합니다. 삶을 짓고 사랑을 가꾸는 데에 모든 꿈과 사랑을 들일 노릇입니다.


  아이들은 시험기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린 아이들과 푸른 아이들은 마음을 살찌우고 생각을 빛내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대학교 입학시험 치르는 일에 온 마음이 빼앗긴 채 꿈과 사랑하고 동떨어진 길을 자꾸 걸어가고 말면, 이 나라에는 아무런 빛이 태어나지 못합니다. 대학교가 아닌 삶을 보아야 하고, 시험문제가 아닌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어른들 또한 아이들한테 돈과 학력과 아파트를 물려줄 생각은 접고, 어른들부터 사랑스러운 삶을 누리고 아름다운 평화를 꽃피우는 길을 즐겁게 걸어가야 합니다.


- “원시림에 들러싸여, 정말로 고요하게 숨겨져 있는 샘을 발견했지. 물론 그곳은 누구 하나 발을 들인 적이 없어 보였어. 내가 그 샘을 처음 봤듯이, 샘도 인간을 처음 봤을 거야. 나는 그 샘의 아름다움에 취해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지. 그러자, 무슨 일인지 샘물에 물결이 일더니, 갑자기 한 소녀가 나타난 거야.” (88∼89쪽)

 

 


  데즈카 오사무 님은 만화책 《The crater》 세 권을 빌어 우리한테 묻습니다. 여보시오, 이녁은 살고 싶소, 아니면 죽고 싶소? 어떻게 하고 싶은가요. 살고 싶은가요, 죽고 싶은가요? 삶길을 가고 싶은가요, 죽음길을 가고 싶은가요? 우리가 나아갈 길은 삶길인가요, 죽음길인가요?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사랑길인가요, 전쟁길인가요? 우리는 어느 길에 설 때에 서로 아름답게 어깨동무하면서 즐겁게 웃을 수 있는가요.


  모든 길은 나 스스로 걷습니다. 남한테 이끌려 걷는 길은 없습니다. 어느 길이든 나 스스로 걷습니다. 아름다운 길도 스스로 찾아서 걷습니다. 안 아름다운 길도 스스로 찾아서 걷습니다.


  사랑은 누가 따로 가르쳐 주지 못합니다. 스스로 찾는 사랑이고, 스스로 가꾸는 사랑이며, 스스로 나누는 사랑입니다. 착한 마음이 되어 참다운 생각을 밝힐 때에 사랑이 시나브로 깨어납니다. 맑은 넋이 되어 밝은 꿈을 키우려 할 때에 사랑이 가만히 눈을 뜹니다.


  전쟁은 누가 따로 가르칩니다. 남한테 이끌리거나 제도권에 휩싸일 때에는 전쟁 톱니바퀴 되고 맙니다. 내 마음이 없거나 내 넋을 세우지 못하면, 다른 사람 손에 휘둘리면서 전쟁 허수아비가 되지요. 내 꿈이 없거나 내 사랑을 빛내지 못하면, 어처구니없는 짓을 함부로 저지르는 바보가 되어요.


- “아주머니, TV에서 한 발표 들었어요?” “네에, 들었어요. 류이치 소식 말이죠?” “전사했다면서요. 정말 멋져요.” “오쿠노 씨의 어머님이죠? 아드님의 전사통지서입니다. 훌륭한 공적을 세우고 옥쇄하셨습니다.” (111쪽)
- “류이치, 네가 죽는 걸 바라지 않았단다. 정말은 군신 따위가 되는 걸 바라지 않았어.” (119쪽)
- “너는 빈사의 중상을 입으면서도 적 기지로 돌진해 사령탑과 폭사했단 말이다. 용사의 날까지 제정하고, 충령탑까지 만들어서 영웅 취급을 받고 있단 말이다. 왜, 왜, 왜 돌아온 거냐?” “그런 말씀을 하셔도 저는 몰랐던 일입니다. 어쨌든 저는 살아 있습니다. 기뻐해 주십시오.”“너 이 자식, 한 번 더 죽어라!” “네에? 겨우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죽으라니, 그건 너무합니다. 너무하다고요.” “이 멍청아! 살아서 뻔뻔하게 기지 안을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으냐. 군 사령부나 정부가 국민을 속인 게 된단 말이야. 너를 명예로운 전사자로 발표했단 말이야.” (122∼123쪽)
- “오쿠노, 귀관은 한 번 적의 기지로 날아가라! 그리고, 전사해라. 그렇다. 군의 공표대로다! 우선 적기의 공격을 받아서 가슴에 적탄을 맞고 이를 악물면서 적의 기지로 돌진하는 거다! 그대로 실행해라. 그러면 영웅이 될 수 있다.” “그런 건 불가능합니다. 누군가 다른 전우를.” “안 돼! 귀관이 해야 한다.” “저는 영웅 같은 건 되고 싶지 않습니다.” (124쪽)

 

 


  전쟁을 벌이는 사람은 영웅을 만듭니다. 영웅이란 언제나 전쟁영웅입니다.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영웅이 없습니다. 평화영웅은 없어요. 사랑영웅도 없어요. 왜냐하면, 평화와 사랑이란 어깨동무요 두레이며 품앗이입니다. 서로 어깨를 겯거나 손을 맞잡으면서 노래를 부르는 평화요 사랑입니다. 평화와 사랑에 영웅이 끼어들 자리 없습니다.


  평화와 사랑은 그예 일꾼입니다. 평화와 사랑은 그예 사람입니다. 오롯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길이 평화와 사랑입니다. 오롯이 슬픈 영웅이 되는 길이 전쟁입니다.


  전쟁영웅이 된다는 뜻은 ‘내 이웃이나 동무를 많이 죽였다’는 소리입니다. 싸움터에서 적군을 많이 죽이니 전쟁영웅 된다는데, 적군은 누구일까요. 적군은 어떤 사람일까요. 아군과 적군은 똑같습니다. 바보스러운 권력자한테 휘둘려 덧없이 끌려나와 부들부들 떨며 ‘너를 안 죽이면 내가 죽는다’고 두려워 하는 여느 사람들이 아군이요 적군입니다. 서로를 왜 죽여야 하는지 모르는 채, 그동안 조용한 마을에서 조용한 사람으로 조용한 삶 일구다가 갑작스레 싸움터에 총칼을 거머쥐고 서서는, 서로를 ‘얼른 죽이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고 바라는 허수아비요 바보입니다.


- “할머니, 기운을 잃으시면 안 됩니다. 자, 보세요. 그 거미가 저렇게 큰 집을 만들었어요. 멀고 먼 이 낯선 땅에 와서도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고 있어요.” (163쪽)
- “그 가스를 믿지 않는단 거야? 그 기적의 가스를?” “그게 어쨌단 거야? 잘 들어, 좀비. 지구는 지금 세계가 둘로 나뉘어서 서로 한창 대립하고 있는 중이라고.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것보다, 어떻게 빨리 적에게 이길까가 더 중요하단 말이야.” (188∼189쪽)
- 며칠이 지났을까. 문득 나는 지구를 보고, 뭔가 무서운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저건 핵폭발이야. 전 세계에 핵폭발의 빛이. 이제 다 끝나 버렸군. 아마도 핵전쟁이 전 세계에서 일어난 거겠지. 그리고 이제 인간은 누구 하나 살아 있지 않을 거야.” (192∼193쪽)


  살아가려면 사랑을 합니다. 죽으려면 전쟁을 합니다. 살아가려면 숲을 보듬으면서 사랑을 합니다. 죽으려면 무기를 만들어 전쟁을 합니다. 살아가려면 숲바람 마시며 숲노래를 부릅니다. 죽으려면 총칼을 들어 이웃과 동무를 찔러 죽이거나 쏘아 죽입니다. 살아가려면 숲밥을 먹으면서 이웃과 나란히 숲집을 짓습니다. 죽으려면 탱크와 전투기와 미사일과 군함을 잔뜩 만들어 이웃 없이, 아니 이웃을 죽이고 나도 죽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역사책을 덮을 노릇입니다. 권력자 이야기와 전쟁 이야기만 가득한 역사책을 덮을 노릇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새로운 삶을 쓸 노릇입니다. 사랑 이야기와 꿈 이야기가 가득한 새 삶을 써서 새 역사책을 지을 노릇입니다.


  역사란 사람들이 살아온 발자취라 하는데, 싸우고 죽인 짓만 담는 책을 역사책이라 하기에는 참 부끄럽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일군 아름다운 빛을 담을 때에 비로소 제대로 된 참다운 역사책입니다. 여태껏 어른들은 서로 죽고 죽이면서 바보스러운 역사책만 썼지만, 앞으로 이 땅 이 나라 아이들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아름다운 역사책을 쓸 수 있기를 빕니다. 아이들이 씩씩하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 어른들도 부끄러움을 깨닫고 아이들과 함께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길로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6.11.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데즈카 오사무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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