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며 밥과 집과 옷, 이 세 가지를 늘 건사하고 돌본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밥과 집과 옷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다. 밥도 집도 스스로 장만하거나 돌보지 못하고, 옷조차 스스로 못 지을 뿐 아니라, 빨래마저 못 하기 일쑤이다. 곰곰이 돌아보면, 이제 어머니도 아버지도 빨래를 하지 않는다. 기계가 빨래 일감을 맡을 뿐이다. 빨래를 하는 보람과 고단함과 즐거움과 재미가 불현듯 사라졌다. 그림책 《빨래하는 날》은 손으로 빨래하던 삶을 아마 조선 무렵 즈음으로 맞추어 보여준다. 우리 겨레가 예부터 돌보던 빨래살이를 찬찬히 보여주는 예쁜 그림책이다. 진작에 나왔어야 하는 그림책인데, 막상 어른들은 이러한 그림책을 아이들한테 베풀지 않았다. 어른들 스스로 빨래살이와 동떨어진 채 살아온 탓이다. 나라밖 명작그림책만 읽힌들 삶을 어떻게 다스리겠는가. 먹고 자고 입는 삶을 제대로 보여주고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빨래하는 모습을 예쁘장하게 그리기는 하지만, 어딘가 어설픈 대목이 드러난다. 예부터 빨래는 ‘손빨래’이다. 빨래하는 ‘손길’이 제대로 드러나야 한다. 그림책에 나오는 사람들(캐릭터)을 예쁘게 그리기는 했으나, 정작 빨래를 주무르고 깁으며 손질하는 ‘손 모습’이 너무 작다. 여느 그림에서도 손과 발은 얼굴 크기만 하게 그려야 옳은데, 더욱이 빨래 그림책에서 손이 너무 작다. 이래서야 빨래가 무언지 제대로 밝힐 수 있겠는가. 게다가, 늦가을에 이불빨래를 하는데, 나뭇잎에 노란 물이 거의 안 들었다. 냇가에서도 나뭇가지에서 톡톡 떨어지는 잎이 노란잎 아닌 푸른잎이다. 냇둑에서 자라는 풀도 모두 푸른 잎일 뿐, 누렇게 시든 잎이 하나도 없다. 마당에서 피어나는 맨드라미가 구월께에 꽃이 벌어지는 하지만, 가랑잎이 지는 철에도 이렇게 꽃송이가 벌어질까. 기와집인데, 대청마루가 너무 낮다. 기둥을 받치는 돌보다 낮은 자리에 대청마루를 그리기까지 했다. 잘못 그린 그림을 따지면 너무 많다. 판화 기법을 쓰든 어떤 기법을 쓰든 좋다만, 시골집, 시골마을, 기와집, 가을날, 풀과 나무와 꽃, 일하는 사람 모습과 손놀림, 냇가와 냇둑, …… 제대로 살필 대목은 제대로 살피면서 예쁘게 그릴 수 있기를 바란다. 요즘 사람들은 빨래살이를 잊었으니 이렇게 손빨래 하던 삶을 새롭게 이 책에서 배울는지 모른다만, 막상 손발을 써서 이불빨래 할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본다. 아마, 이 그림책에 나오는 잘못된 그림을 알아차리는 이도 드물겠다고 느낀다. 이제는 시골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거의 없으니까. 4346.11.12.불.ㅎㄲㅅㄱ
| 빨래하는 날
홍진숙 글, 원혜영 그림 / 시공주니어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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